"할머니, 이젠 편히 쉬세요"
"할머니, 이젠 편히 쉬세요"
  • 전현진
  • 승인 2012.04.17 03: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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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현재인 사모 장례예식 거행…"자기 부인하는 신앙의 롤 모델이었다"

예수원 공동 설립자 고 대천덕 신부의 아내 현재인(JANE MEBANE GREY TORREY) 사모의 장례예식이 4월 16일 오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렸다. 장례예식에는 고인을 기억하는 350여 명과 현 여사의 자녀들이 참석했다.

장례예식은 권희연 주교(대전교구장)가 집전을 맡고, 이대용 주교(전 부산교구장)가 설교를 맡았다. 이 주교는 요한복음 11장 17~27절을 인용하며 "나사로의 죽음에 자신을 원망하는 마르다를 보며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다"며 "그 눈물은 부활과 생명인 자신 앞에서조차 죽음에 쩔쩔매는 인간의 나약함을 향한 눈물이다"고 말했다. 그는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오늘 더 없이 슬퍼해야 한다"며 "하지만 부활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격려 하시기에, 이 자리는 슬픔이 아닌 현 사모의 믿음·사랑·순종이 승리한 축하의 자리다"고 말했다.

장례예식에 이어 현 여사를 기리는 추모 순서에서 서울모테트합창단과 CCM 가수 이무하 씨가 조가를 불렀고 김근상 주교(서울교구장), 석마가 신부(성직단 대표), 정애주 대표(홍성사), 현 사모의 아들 벤 토레이 신부와 작은 딸 버니 토레이가 추모사를 낭독했다. 정 대표는 고인을 자신의 롤 모델이었다며, 그에게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벤 토레이 신부는 "어머니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며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작은 딸인 버니 토레이는 현 사모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어머니가 그립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께서 소천하시기 전 미국에서 함께 지낸 시간은 가족들에게 귀중한 선물이었다"며 "가족들은 어머니 덕분에 더욱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참석자들에게 "여러분은 대가족의 일원"이라며 감사를 전했다.

장례위원인 최요한 형제(예수원)는 장례를 마무리하며 "할머니를 보내드리는 자리에 함께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현 사모의 유해는 장례예식 후 예수원으로 옮겨졌고, 4월 18일 봉안예식을 마친 뒤 고 대천덕 신부 묘소 옆에 묻힌다.

현 여사는 1921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났다. 1948년 대천덕 신부와 결혼해, 1957년 한국으로 왔다. 1965년 강원도 태백시에 예수원을 설립했고, 대 신부 소천 후에는 예수원 대표이사로 사역했다. 많은 기독교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예수원은 한국 기독교에 새로운 형태의 영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보여 주었고, 활발한 대사회적 발언으로 조화된 영성의 본보기가 되었다.

* 이 기사는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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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2012-04-19 04:46:25
제인 사모님, 1978년, 제가 처음 예수원에서 뵈었을 때 사모님은 지금의 저와 같은 나이셨습니다. 회갑을 앞두신 분이셨지만 사모님은 정말 꽃처럼, 소녀처럼 아름다우셨습니다. 그 후 삼십 수년간 사모님을 멀리서, 가까이서 뵈면서 사모님은 외모만이 아니라 정말 마음이 아름다운 분, 정말 예수님께 헌신된 분, 천국의 소망을 가진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모님, 대 신부님이 소천하시기 몇 달 전에는 신부님과 더불어 밴쿠버에 있는 저의 집을 방문하셨지요. 그리고 VIEW의 많은 원우들과 어린 자녀들을 일일이 축복해 주시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다만 두 손 드시고 한꺼번에 아이들을 축복해주시기를 기대했지만 신부님은 예수님처럼 일일이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 머리 위에 손을 얹으시고 기도하셨지요. 그 먼 거리를 달려오셔서 시차적응도 안 되셨는데...

사모님,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땅, 낯 설고 물 설은 남의 나라에 오셔서, 그것도 가장 불편한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반세기 이상 낮은 자들을 말없이 섬겨주셨습니다. 그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지울 수 없는 자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눈에도 잘 띄지 않으셨지만 사모님의 그 은은한 향기는 한국 교회를 덮고 있습니다.

사모님, 이제 편히 쉬세요. 태백의 매서운 추위와 싸우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서, 가파른 산비탈을 더 이상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서, 불편한 언어 때문에 답답해 하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한국 음식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서, 질병도, 고통도 없는 그곳에서 신부님을 만나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혹 대 신부님을 찾지 못하시면 도서관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대 신부님은 생전에 늘 천국가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시겠다고 하셨으니까요...

이제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립습니다.

밴쿠버에서 나그네 된
양승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