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교회, 쪽방촌 사람들의 쉼터
등대교회, 쪽방촌 사람들의 쉼터
  • 전현진
  • 승인 2012.05.03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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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반찬·생필품 주고, 말동무 하고…김양옥 목사 "이웃이라면 함께 뒹굴어야"

▲ 매월 넷째 주 일요일은 남서울평촌교회 의료봉사팀이 등대교회를 찾는 날이다. 봉사팀장 임원철 집사는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방문한다"고 했다. ⓒ 뉴스앤조이 전현진
매월 넷째 주 일요일 등대교회(김양옥 목사)는 특별히 붐빈다. 남서울평촌교회 의료봉사팀이 찾는 날이라, 서울 동대문 쪽방촌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지난 4월 22일에도 의료봉사팀 여덟 사람이 찾아왔다. 봉사팀장 임원철 집사(임가정의원)는 "이곳 주민들은 평소 건강관리를 거의 못하시는 분들이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방문한다"고 했다.

"여긴 인생 막장이야." 진찰을 받고 대기 중인 이 씨는 알콜성 신경조직 파괴로 무릎이 아프다고 한다. 그는 '기가 막힌 인생'을 살았다며 쪽방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는 자신이 말 못할 일로 '사찰' 당하고 있다면서 "교회에 오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고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 씨는 "또 그 이상한 소리냐"고 핀잔을 주면서, 자기 인생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 김 목사는 이곳 주민들은 이야기 나눌 사람이 거의 없어 기회만 되면 하루 종일이라도 이야기할 거라고 했다. ⓒ 뉴스앤조이 전현진
김 씨는 앞니가 없다. 그가 쉴 새 없이 말을 건네자 김양옥 목사는 옆에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요" 한다. 최현용 전도사는 "저는 다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며 김 씨 편을 든다. 진료실은 사랑방으로 변하고, 한번 피어난 이야기꽃은 쉬이 꺼지지 않는다. 김 목사는 이곳 주민들은 이야기 나눌 사람이 거의 없어 기회만 되면 하루 종일도 이야기할 거란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가족도 없이 혼자 지낸다. 명절에는 술에 취해 싸움이 빈번하다.

쪽방 주민들과 더불어 살기

▲ 등대교회의 주된 사역은 반찬과 쌀 나눠 주기, 생필품 나눠 주기, 그리고 쪽방을 찾아 안부를 물으며 말동무가 되어 주는 일이다. (사진 제공 등대교회)
최하층 도시 빈민들이 모여 사는 이곳은 일명 '동대문 쪽방촌'. 번화한 쇼핑 타운을 등지고 있지만 이곳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루 5000원, 한 달 15만 원. 보증금은 없다. 0.5평짜리 쪽방에 400여 명 주민들이 살고 있다.

김 목사가 2006년 개척한 등대교회는 '일반 교회'와는 조금 다르다. 쪽방촌을 통하는 골목에 자리 잡은 등대교회에는 말끔히 차려입은 교인은 드물다. 헌금함을 향하는 손도 뜸하다. 퀴퀴한 냄새도 난다. 주된 사역은 반찬과 쌀 나눠 주기, 생필품 나눠 주기, 그리고 쪽방을 찾아 안부를 물으며 말동무가 되어 주는 일이다.
매주 한 번씩 나눠 주는 반찬은 네 곳의 교회에서 후원해 준다. 이번 주 반찬은 멸치 볶음, 감자조림, 어묵 볶음. 많은 주민들이 반찬을 받으려 교회를 찾는다. 김 목사는 "이 반찬은 이곳 주민들이 영혼과도 바꿀 정도로 귀한 것이다"고 말한다.

등대교회는 예배당 한쪽에 생활공간을 마련해 오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집으로 제공한다. '등대구역' 성도들이 생활하는 생활관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구 씨는 안국역 <빅이슈> 판매원이다. 그는 곧 까치산에 있는 임대주택에 입주할 계획이다. 등대교회 성도들에게 임대주택은 '꿈의 장소'라고 최현용 전도사가 귀띔했다. 꿈을 이룬 구 씨는 쪽방촌을 계속 찾고 등대교회에서도 예배를 드릴 것이다. 이곳에 구 씨의 형제·자매들이 있기 때문이다. 까치산과 동대문을 오가는 차비 걱정을 한참 늘어놓던 구 씨는 기자에게 "맛있는 거 사 줄게 안국역으로 놀러 와" 하고 말한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다양한 필요를 공급하는 만큼 사역자들의 일손도 바쁘다. 김 목사는 평일에도 샤워와 빨래를 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이들이 있어 교회를 비우기 어렵다. 몸이 불편한 교인들도 많아 매주 심방을 다닌다. 이소영 사모와 최현용 전도사(합신 3학년)가 함께 사역하고 있지만 쪽방촌 구석구석을 돌보기에는 힘에 부친다.

▲ 올해 3월 등대교회는 개척 7년 만에 처음으로 서리집사 네 사람을 임명했다. (사진 제공 등대교회)
삶을 바꾼 사람만이 집사가 된다

▲ 김 목사는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조금 씩 변하고 있다"며 "예수님이 이곳을 축복해 주신다"고 한다. ⓒ 뉴스앤조이 전현진
올해 3월 등대교회는 개척 7년 만에 처음으로 서리집사 네 사람을 임명했다. 김 목사는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에서 장로 세울 때보다 더 신중하게 제직 임명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등대교회 집사는 교인들에겐 변화된 삶의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집사님들은 삶의 변화를 경험한 분들"이라며 "안 좋은 습관을 모두 끊었다"고 한다. 그는 "집사님들은 십일조도 꼬박꼬박 한다"고 덧붙인다. 김 목사에 따르면, 이곳 주민들은 기초 생활 수당이나 막노동, 구걸 등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외하면 몇만 원 안 남는 이들에게 적은 돈이라도 헌금을 한다는 것은 큰 믿음이 필요하다.

김 목사는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며 "예수님이 이곳을 축복해 주신다"고 한다. 빈자·과부·병자·떠돌이…. 예수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금요 예배 시간, 김 목사는 교인들에게 가사를 바꿔 찬양하자고 제안한다. "쪽방이나 노숙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여전히 술에 취한 채 교회를 찾는 교인들도 있다. 김 목사도 여전히 이들과 함께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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