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박 씨 '창기 십자가론'에 영혼 멍들다
석산 박 씨 '창기 십자가론'에 영혼 멍들다
  • 정재원
  • 승인 2012.12.0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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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돌나라 탈퇴자 인터뷰…"십자가만 봐도 치가 떨린다"

강소영 씨(가명)는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사춘기 시절에는 가요를 듣지 못했고, 누구나 권장하는 위인전도 남몰래 읽어야 했다. 육식은 금지됐고 채식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강 씨는 외부와의 접촉이 단절된 채 18년을 살았다.

1983년, 당시 8살이었던 강 씨는 부모님을 따라 엘리야복음선교회(현 십계석국총회, 돌나라)에 입교했다. 엘리야복음선교회는 기존에 유명한 목사들이 자신의 양 떼들을 천국이 아닌 멸망의 길로 끌고 가는 환상을 본 석산 박 아무개 씨가 1984년에 설립한 단체다. 제칠일안식교 교인이었던 박 씨는 안식교가 썩었다며 자신을 따르는 교인들과 따로 모임을 가졌고, 1980년 1월부터 집회를 열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극단적 종말론에 빠진 십계석국총회

▲ 박 씨가 80년대 초반 비닐 하우스에서 소집회를 하는 모습. (안티 돌나라 카페 갈무리)
집회는 달마다 한 번씩 열흘에 걸쳐 진행됐다. 그 외에도 토요일에 소집회가 열렸고, 중간마다 기도회가 진행됐다. 박 씨는 집회에서 극단적 종말론을 설파했다. 예레미야서 25장 32절 "대풍이 땅끝에서 일어날 것이다"는 말씀 인용하며 '대풍'은 핵전쟁이고 '땅끝'은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그는 애도 낳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러한 가르침에 따라 재산 헌납과 학업 중단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이들은 의무교육도 악마 학교라고 해서 시키지 않았다. 신도들의 사회생활은 엉망이 됐다. 아내들은 살림을 내팽개치고 집회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남편들은 그런 아내를 찾으러 와 집회 장소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 없던 신도 대부분은 박 씨의 책을 팔거나 지하철 등에서 앵벌이 등을 해서 겨우 경제생활을 했다. 이에 대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1991년 엘리야복음선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문제가 커지는 가운데 대집회는 중단됐다. 교인들은 다시금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매주 토요일에만 모이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1994년, 박 씨는 엘리야복음선교회 명칭을 버리고 집단 귀농을 시작했다. 이름도 종교와 무관한 '돌나라'로 바꿔 달았다. 대외적으로는 도시화 때문에 텅 빈 농촌을 살리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또다시 왜곡된 종말론이 기승을 부렸다. 박 씨는 북한이 쳐들어올 거라고 성도들을 겁박했고, 자신들이 이주하는 곳에는 하나님이 핵우산을 씌워주어서 안전하다고 말했다.

돌나라 회원들은 전기가 끊길 것을 대비하여 발전기를 장기 할부로 사들였고, 드럼통에 휘발유와 석유를 가득 채워놓고 종말을 기다렸다. 호롱 등불도 준비하고 비상 양식도 가구당 일정 양씩 분배했다. 대부분의 교인은 집과 땅을 팔고 마치 출애굽 하듯이 돌나라로 들어왔다.

"유기농 단체를 하겠다고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피난을 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당시 사회도 북한의 남침설로 라면 사재기가 있던 때라서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죽어도 우리는 사는구나'라며 굉장히 기뻐했다. 재산 정리가 안 되어 아직 들어오지 못한 사람에게는 '빨리 들어와. 너만 죽으면 어떡하냐'고 염려했고, 그분들은 재산을 빨리 처분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수천 가구들이 돌나라로 들어왔는데, 마치 출애굽 하는 느낌이었다."

'창기 십자가' 주장하는 석산 박 씨를 떠나다
▲ 박 씨는 2000년 7월 2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창기 십자가' 교리의 모체가 되는 발언을 했다. (사진 제공 강소영)
집단 신앙촌을 이루고 살면서 박 씨에 대한 신격화가 노골화됐다. 처음에는 그저 '선생님'정도로 불렸던 박 씨는 점차 '하나님', '주님', '또 다른 보혜사'가 되었다. 교인들은 박 씨에게 절을 하기 시작했고, 집집이 그의 사진이 걸렸다. 심지어 그가 걷는 길에 옷을 깔아 마치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과 같은 장면도 연출했다.

교인들 사이에 신격화가 심화하던 중 박 씨는 2000년 7월 2일 충격적인 설교를 한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박 씨는 남편 있는 여인을 취해 하나님의 씨를 퍼뜨리라는 기별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는 옆집 남자에게 당신의 아내를 취해 하나님의 씨, 아기 예수를 낳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고까지 말했다.

설교를 듣던 강소영 씨는 큰 충격을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들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신앙을 통해 정신적 성취를 원했던 강 씨는 도무지 영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없는 설교 앞에 정신을 잃었다.

"이전부터 이상한 낌새는 있었다. 여자들이 박 씨를 찾아다닌다는 얘기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면 내가 너무 힘드니까, 그냥 '아닐 것이다', 아니, '아니어야 한다'고 넘겼다. 그런데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설교를 듣고 나서는 너무 기가 막혔다. 사이비도 이런 사이비가 없었다.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때 다들 충격을 받았다. 평소에는 박 씨의 설교에 손뼉도 치고 절도 했던 사람들이 아멘도 하지 않았다."

박 씨는 바로 다음날 '합격'이라는 제목으로 무마성 설교를 했다. 전날 설교에서 말한 '씨'는 육적인 의미가 아니라 영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강 씨는 반년 뒤 돌나라를 떠났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종교 울타리 밖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고, 모든 인간관계가 이곳 안에 있었다. 친척들도 여전히 그 안에 있었다.

강 씨는 돌나라를 나온 뒤에도 밖에 있는 예배 처소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갈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박 씨가 2003년 5월 '만군의 여호와'라는 설교에서 이성과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직접 자백한 것이다. 죄의 고백이 아니었다. 박 씨는 당당했고,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가 창녀에게 다가갔듯이, 자신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여성에게 다가갔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듯이, 그도 목숨 내놓고 여성을 사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의 가장 문제적 교리인 '창기 십자가'론이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이었다.

안티 돌나라 활동 개시하다
▲ 돌나라는 2009년부터 브라질로 이주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은 브라질을 마지막 가나안 땅이라고 부르며 그곳에서 모든 교인들이 승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안티 돌나라 카페 갈무리)
2009년에는 돌나라에 함께 있던 이수진(가명) 씨가 박 씨 씨에게 성적 유린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 씨가 블로그에 직접 글을 올려, 아기 예수를 낳아야 한다는 박 씨의 거짓에 넘어가 만 18세부터 수백 차례 걸쳐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강소영 씨는 또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주님을 위해 밤새 통곡하고 기도했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악마의 탈을 써도 이 정도는 아닐 거라며 비명을 질렀고 사흘간 잠도 못 잔 채 정신을 잃었다.

강 씨는 피해자 이수진 씨를 돕고자 블로그에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돌나라 측에서 귀신같이 알고 전화가 왔다. 당장 글을 지우라고 했다. 하지만 강 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 징역형을 살 것을 각오하고 이 씨를 도왔다. 돌나라 측은 친인척을 동원해 전화했다. 한 친척은 눈물로 호소하며 몇 차례 전화했다. 하지만 강 씨는 "말할 권리도 없느냐"며 "단지 화가 나서 하는 게 아니라 소신껏 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어느 날은 돌나라 사람들 4명이 찾아왔다. 하나님을 욕 먹이냐며 삿대질을 하고 심판을 받을 거라며 겁박했다.

강소영 씨는 이 씨에게 안티 돌나라 운동을 제안, 사이트를 개설했고 법적 싸움도 벌였다. 돌나라 측이 사이트를 폐쇄하기 위해 가처분 신청도 냈지만 법원의 기각을 받아냈다. 이 씨가 올린 글에 대한 법적 소송이 들어왔을 때는 강 씨가 직접 진정서에 도장을 찍어 제출했다. 마치 살생부에 명단을 올리는 것과 같았지만, 이 씨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에 힘을 보탰다. 강 씨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돌나라 사람들의 표정을 생각하니 오금이 저려 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재판은 결국 2심에서 승소했다. 재판부가 성관계 사실을 인정하고 이 씨의 글을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브라질 이주는 막아야 한다"

그런 뒤 강 씨는 돌나라 문제에 더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돌나라가 2009년부터 본격화한 브라질 해외 농장 사업 때문에 걱정이 크다. 농림부가 주관하는 해외농업개발사업의 융자 대상자로 선정된 돌나라는 자신들이 마지막 가나안 땅이라고 부르는 브라질로 교인들을 이주시키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세계적인 식량 위기 시대를 맞아 식량 자원을 안전하게 확보하여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브라질로 이주하여 보란 듯이 승천하겠다", "한국은 끝이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브라질 이주는 1994년 돌나라를 세워 귀농할 때와는 또 다르다. 국내에 있을 때는 이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탈퇴하여 산 넘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게 되면 사회로 복귀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들의 성향을 볼 때, 차후 발생할 문제는 생각 안 하고 일단 종말론을 내세워 일을 추진한다. 교인들이 탈퇴하고 싶다고 해서 비행기 표를 주거나 사회 정착금과 같은 사후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놓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탈퇴자를 저주하는 판에 그럴 일은 없다."

강 씨는 이미 결혼했고 아이도 낳아 보통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돌나라 생활 탓에 생긴 후유증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타인을 믿지 못해 대인관계가 어려웠고, 9.11 테러와 같이 큰 사건이 터지면 혹시나 종말이 오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20여 년간 영혼을 유린당한 강 씨는 교회를 나가거나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다. 십자가만 봐도 치가 떨리고, 성경책의 가죽 냄새만 맡아도 역겨웠다. 지금도 예배 형식으로 열리는 예식장을 들어가질 못하고, TV를 보다가 종교 관련 방송이 나오면 채널을 얼른 돌려야 했다.

강 씨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기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브라질 이주는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빨리 이단·사이비 특별법이 만들어져 종교 문제로 인권과 영혼이 유린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강 씨는 외롭고 힘들지만, 그날을 기대하며 묵묵히 자기 일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재원 기자 / 한국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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