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한흠 목사가 오정현 목사에게 쓴 편지
옥한흠 목사가 오정현 목사에게 쓴 편지
  • 김종희
  • 승인 2013.02.20 12:57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2008년 6월 1일, 양심적인 결단 호소

2007년 7월에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평양 대부흥 100주년 기념 대회. 옥한흠 목사는 두 손을 높이 들고 울부짖으면서 한국교회와 목사들의 회개를 촉구하며 절규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 있는 한국교회와 그 주범인 목회자를 향한 질타와 참회의 설교였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날 설교를 기억하고 있다. 2006년 폐암 수술을 하고 1년 뒤였다.

2013년 2월 14일, 지금부터 꼭 일주일 전 메일을 하나 받았다. 이 메일은 그 전날 사랑의교회 당회원들에게도 전달되었다. 메일에는 2008년 6월 1일 주일에 옥한흠 목사가 오정현 목사에게 보낸 편지가 첨부되었다. 두 사람은 6월 3일 화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만나기 전에 대화할 내용을 옥 목사가 정리해서 미리 보낸 것이다. 만남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편지를 쓰고 2개월 뒤에 폐암 전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전에도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2006년 폐암 수술을 받은 옥한흠 목사의 육신은 암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같은 시기에 그의 마음은 교회 때문에 괴로웠다. 고통, 괴로움, 번민은 평양 대부흥 기념 대회 설교에 깊이 스며 있었다. 후임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안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육체의 질병, 마음의 고통

이 편지는 먼저, 여러 가까운 목사들이 오정현 목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자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오 목사를 후임으로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첫째, 제자 훈련 목회 철학으로 무장된 지도자이며, 그러므로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둘째, 달동네에서 평생 헌신하신 부친의 등을 바라보며 자랐기 때문에 절대 인간적인 야심을 비전이라는 화려한 포장지로 싸서 대형 교회의 힘을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않는 양심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셋째, 지금은 강해 설교가 약하지만 앞으로 놀라운 잠재력을 발휘해 탁월한 설교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래서 3년만 지나면 사랑의교회는 세상이 대적하지 못할, 말씀과 성령의 큰 능력으로 무장한 제자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옥한흠 목사는 이런 확신이 주님의 뜻이라고 여겼다. 그랬기에 걱정의 소리가 주위에 많아도 자기 마음만은 평안했다. 그러한 원로목사의 기대 속에서 오정현 목사는 2003년 8월 사랑의교회에 부임했다.

오 목사가 부임하고 3년만 지나면 사랑의교회가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한 제자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옥 목사는 확신했다. 3년이 지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교인 숫자만 풍선처럼 부풀어 갔을 뿐이었다. 오정현 목사가 부임하고 5년 뒤에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옥한흠 목사는 자신의 확신이 가끔 흔들리는 것 같아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처음 표현은 이처럼 완곡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강경했다.

원로 목사가 후임 목사의 발목을 잡아서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세간의 루머, '3년만 넘기면 내 마음대로 목회할 것이다'는 말을 오 목사가 하고 다닌다는 소리에 옥 목사는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오히려 자유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닌지 반문하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오만하고 분수도 모르는 무서운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혹독하게 표현했다.

3년 견디면 제자 공동체가 되나, 내 교회가 되나

오정현 목사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이 옥 목사에게 피력한 부정적인 견해의 핵심은 설교 수준이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옥한흠 목사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오 목사의 설교 원고를 사전에 검토하려고까지 했고, 그런 훈련을 거치면 자신을 능가하는 탁월한 설교자가 되리라 기대했다고 한다.

사람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신뢰. 바로 이 부분이 옥한흠 목사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들 옥성호 씨도 <아버지, 옥한흠>이라는 책에서 "아빠는 그게 문제에요. 왜 그렇게 사람을 볼 줄 몰라요?" 하고 쏘아붙였다. 가뜩이나 깊은 병세에 시달리던 중에 일본의 한 선교사가 저지른 불륜 사건을 접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고 시름에 빠진 아버지에게 '당신 탓'이라고 한 것이다. 나 역시 옥한흠 목사를 만날 때마다 그런 점을 느꼈는데, 아들의 반응을 보니 역시 그러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담임목사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부목사도 아니고 담임목사가 원로목사에게 설교 원고를 사전에 검토받는다? 어느 누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거나 견뎌낼 수 있을까. 게다가 오 목사는 설교를 가지고 박사 학위를 받은 신학 박사요, 제자 훈련의 메카 사랑의교회 담임목사가 아닌가. 오 목사는 설교 원고 사전 검토, 그것 하나만으로도 발목 잡힌 목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도 남을 것이다.

옥한흠 목사가 일찌감치 은퇴한 가장 큰 이유는 설교 준비 때문이었다. 그는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고 쏟아내면서 겪는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다. 십자가의 고통과도 같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옥한흠 목사가 생전에 인터뷰하면서 설교 표절에 대해서 대화하던 중, 솔직히 그런 유혹을 느낄 때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스펄전의 설교가 너무 좋아서 그걸 베껴 설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설교를 베끼는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남의 설교를 베낀 적은 없다고 했다. 표절을 여사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 인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정현 목사는 어떨까. 우리에게는 오정현 목사가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외국 자료를 토대로 짜깁기한 설교 몇 편이 분류되어 있다. 물론 본인이 혼자 모든 과정을 작업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의교회 안에서 누가 어떻게 오정현 목사의 설교 생산 라인에 참여하는지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남가주사랑의교회에서 아랫사람들을 시켜서 잡지에 기고토록 하고 그걸 모아서 자기 이름으로 책을 냈다는 사실을 사랑의교회 당회원 중에서 알아내어 문제를 삼았고 오 목사도 시인했다는 이야기를 작년 7월에 들었다. 사안들이 너무 지질해서 보도하지 않았지만, 오정현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표절은 어쩌다가 저지른 단순 실수가 아니라는 말이다.

표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

옥한흠 목사의 편지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내가 옥한흠 목사의 가슴을 찢는 일을 저질렀다.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뉴스앤조이>를 평소 한 달에 한 번도 안 보는데 누군가의 권유로 내가 쓴 글을 읽고 만 것이다. 그 글은 2007년 12월 11일, 윌로우크릭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가 진솔한 자기 고백을 담은 책 내용을 <미주뉴스앤조이>에 소개한 것이다.

빌 하이벨스 목사, "우리가 잘못했다"

옥 목사가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 것은 아마 이 부분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제자 훈련에 목숨을 걸었다고 하는 목사들은 이 교회의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래도 빌 하이벨스 목사는 30년 동안 구도자들을 되찾겠다고 하는,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변함없이 지켜왔다. 하지만 그 정신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 성장의 수단으로 구도자에 민감한 열린 예배, 은사 개발을 통한 섬김 등의 프로그램만 열심히 베껴 왔던 목사들은 뭐라고 응답할까."

제자 훈련에 목숨 걸었다, 제자 훈련에 미쳤다고 입은 놀리지만, 사실은 명예와 허영과 탐욕에 미쳤고, 그걸 채우기 위해 이벤트에 목숨 건 짝퉁들을 겨냥해서 쓴 글이었다. 하지만 옥한흠 목사는 이 글을 읽고 마치 자기를 겨냥한 것처럼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옥한흠 목사는 며칠 뒤인 12월 16일 주일 예배 때 '적은 누룩과 하나님나라'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는 제자 훈련에 대한 소신을 이전과 똑같이 펼쳤다. 예수님이 3년 동안 열두 명에게 혼신의 힘을 다 쏟으신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목회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자 훈련을 위해서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절제했다고 설명했다. 교회 건물도 키우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도 교인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오정현 목사가 부임한 다음에도 교회 덩치가 계속 커지는 것을 걱정하면서, 제자 훈련 원리의 한계가 온 것이 아닌가 염려했다. 그러면서 목회자들과 장로들과 평신도 사역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제자 훈련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그 설교를 듣고 나는 글을 또 썼다.

"제자 훈련, 제대로 된 누룩 만들고 있는가?"

그 글에 이런 단락이 있다.

"옥한흠 목사도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제자 훈련에 목숨 걸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옥한흠 목사 한 사람만은 아니다. 그리고 옥한흠 목사가 이벤트에 목숨 건 채 교회 덩치를 키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목사가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원래 짝퉁을 욕하면 짝퉁은 자기를 욕하는지도 못 깨닫고 되레 진품이 고통스러워하는 법이다."

제자 훈련에 목숨 걸지 않고, 생명을 바쳐서 설교를 준비하지 않고, 오로지 이벤트에만 목숨을 건 것처럼 변질되는 사랑의교회를 보면서 옥한흠 목사는 가슴이 찢어졌을 것이다. 평신도 지도자들이라도 정신 좀 차리라고 설교한 것이다. 그러나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없듯이 질주하는 욕망의 쾌속정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뜨거운 계절 5월이 왔다. 2008년 5월 11일 주일, 오정현 목사는 '성령님은 얼마나 소중한 분인가'라는 제목으로 설교했고, 12일에는 <국민일보>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대운하가 국력이 결집되고 우리 민족의 문명사적․정신사적 소통을 이루는 생명의 물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했다. 아직도 그 말이 유효한지 묻고 싶다. 오늘 이 순간, 4대강 사업이야말로 대표적인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진실의 문 앞에 우리는 서 있다.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위험 파동 때는 '죽은 사람 하나 없는데' 하면서 수입 소고기 논란으로 사회가 후끈 달아오른 것을 폄하했다. 자신의 표현에 문제를 삼는 이들에게는 자기 말이 아니라 성령께서 감동주신 대로 말한 것뿐이라는 궤변을 펼쳤다.

나는 그의 설교를 듣고 그의 칼럼을 읽은 뒤 또 글을 썼다.

도대체 몇 명이 죽어야 합니까?

이 글을 읽은 옥한흠 목사는, 오정현 목사가 목사로서 이 사회의 밑바닥 민심을 너무 읽지 못한 채 경솔한 소리를 한 것이 틀림없다고 지적했다. 옥 목사는 도대체 오 목사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만나서 대화하기를 원했다. 소리 없이 쌓이는 불신의 먼지를 털어내고 싶었다. 그는 "대화를 통해서 우리가 지도자로서 잘못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면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처럼 '내가 잘못했다. 새 종이를 내놓고 다시 그려야 한다'고 하는 양심적인 결단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욕망의 바벨탑을 허물라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이 옥 목사의 마음을 힘들게 했을까. 편지에는 오 목사의 문제를 하나하나 지적했다.

우선, 권력과 밀착하려는 성향이 강한 이유를 물었다. 이명박 정책 지지 발언이 잘한 것인지, 사랑의교회가 강남의 1% 가진 자들을 위한 교회였는지, 왜 밖으로 귀족적인 이미지를 풍기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중국 종교성 관리들과 접촉하는 것, 한국교회나 사랑의교회로부터 위임받지 않고 행동하는 저의를 물었다.

옥 목사는 '글로벌'이니 '세계적인 네트워크'니 운운하는 발상에 대해서도 마땅치 않게 여겼다. 지금 서초동에 짓는 건물 이름은 사랑글로벌미니스트리센터(Sarang Global Ministry Center)이다. 사랑의교회가 영국의 웨일즈신학교(Wales Evangelical School of Theology, WEST)에 3년 동안 12억 4000만 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명분이 '유럽 선교 교두보 및 제자 훈련 국제화'이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학교 안에 '사랑 토머스 센터'를 지었는데, 사랑의교회와 성주그룹이 함께 7억 6600만 원을 냈다. 오정현 목사는 지금 이 학교 명예 총장이고, 오 목사 박사 학위 논문 개작 작업을 주도했던 고성삼 목사는 이 학교 이사장이다. '사랑 토머스 센터' 현판 앞에서 오정현 목사와 부인 윤난영 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현판 문구를 보면 이 센터는 사랑의교회가 아니라 오정현 목사에 의해 개원한 것처럼 되어 있다. (by Rev. Dr. John Jung-Hyun Oh) 교회 안에서 문제가 되어 지금은 사랑의교회로 바뀌었고, 오정현 목사 이름은 그 밑에 작게 깔렸다.

이러한 사례들을 볼 때, 인간적인 야심을 비전이라는 화려한 회피로 포장하지 않으리라는 기대에 역행한 것으로 옥 목사는 예견했음직하다. 인간적인 야심과 외적 화려함의 늪에 빠진 결과 양 떼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의 양심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에게 멸시당하고 사회에서 버림받아 목회자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오 목사가 무엇을 해 주고 있는지 옥 목사는 물었다. 강단에서 몇 마디 하는 립서비스는 가증스러운 짓이라면서, 밖에서 도는 시간을 절약해서 이런 자들과 함께 울고 웃어주는 진정한 주의 종이요 제자가 되기를 소원했다. 부자 교회의 허세를 부리는 것 같은 이벤트를 마땅치 않게 여겼다.

아들 옥성호 집사에 의하면, 옥 목사는 이 편지를 밀봉해서 오정현 목사만 볼 수 있도록 건넸다. 오 목사가 편지를 읽었는지, 둘이 이 문제를 가지고 대화했는지 알 수는 없다. 2년 뒤 2010년 옥한흠 목사는 세상을 떠났다.

이 편지를 읽으면 옥한흠 목사가 사랑의교회 새 건물 건축 문제를 두고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그래서 자신의 목회가 결국은 실패하고 만 것 같다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 마음의 고통과 육신의 질병은 그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병상에서 누워서 의식이 왔다 갔다 하면서도 하나님나라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만을 간직했다. 두 손을 내려놓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 자리를 되찾으시기만을 기도했을 것이다.

옥성호 씨는 아버지의 편지를 장로들에게 보내면서 이렇게 썼다.

"2007년 말 오정현 목사님의 전횡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노력하셨던 옥 목사님의 노력을 교회가 쪼개진다는 이유로 막으셨던 장로님들, 오늘날의 사태가 왜 왔는지 곰곰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때 시스템적으로 당회가 조금만 개선되었더라면 최소한 공공도로 점유의 밀실 결정과 같은 일은 당회 안에서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분은 담임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마지막 한마디만 더 하련다. 오정현 목사는 이번 박사 학위 논문 건만 무사히 수습하면 교회의 주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으리라 착각할 수 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사탄의 유혹이 달콤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욕망의 바벨탑을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부실한 기초와 불량 벽돌 때문에 쉬 무너지고 말 수밖에 없다. 오정현 목사가 그동안 흘리고 다닌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2007년 7월 뜨거웠던 여름에 병중의 옥한흠 목사가 피를 토하듯이 절규했던 그 메시지를 다시 듣고 하루 속히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바로 보기 : 우리가 정말 한배를 타고 있는가? (옥한흠 목사의 편지)

김종희 / 한국 <뉴스앤조이> 대표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 전제 및 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ㅉㅉㅉ 2013-06-18 10:08:15
옥성호란 자가 어떤 자인지 안다면 이런 기사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지를 알 것이다. 자식 하나가 타락해 교회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며 분열시키는 짓거리에 천국에 계신 옥목사님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을 것이다.
ㅎㅎㅎ 댁이 댓글을 달아 놓은 것 천지가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남 탓하지 말지어다.

myway 2013-03-05 16:09:40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ㅎㅎㅎ 2013-02-21 12:50:41
오목사... 쓰레기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