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 김종희
  • 승인 2007.09.29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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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출국 못 하고 발 묶인 2개월…돌이켜 보면 감사의 시간

<뉴스앤조이> 대표로 재직할 때 <CBS>의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새롭게 하소서’는 삶의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극적으로 인생 역전을 맛본 사람들이 간증하는 내용으로, 청취율이 제법 높은 <CBS>의 간판 프로그램입니다.

섭외가 왔을 때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 면면과 드라마틱한 삶의 여정을 볼 때 저는 거기에 견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출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뉴스앤조이> 홍보를 위해서라면 죄 짓는 거 빼고는 뭐든지 하겠다’고 평소 다짐해왔기 때문입니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드러낼 것도 거의 없지만) 뻥 칠 것 없이 <뉴스앤조이>만 잘 알려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프로그램에 두 번이나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 출연했을 때마다 진행자가 공통적으로 묻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하셨습니까? 어떤 기도 응답을 받으셨습니까?” 청취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고 은혜도 많이 받는 대목입니다. 지금까지 청산유수처럼(?) 떠들다가 갑자기 대답이 궁해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청취자들에게 뭔가 감동적인 얘기를 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별로 안 합니다만, 가끔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위해 제가 이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디선가 후원자가 나타나서 일확천금을 보내주셔서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기도하지는 못하겠더군요. 다만 ‘지금의 어려운 상황 그 자체를 넉넉히 즐기고 누릴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성공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실패하든 성공하든 어떤 결과에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라고 대답한 기억이 납니다.

몇 년 전 얘기를 지금 다시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7개월간 가족과 떨어져서 뉴욕에서 지내다가 가족을 데리고 오기 위해 2개월 전에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제 비자와 가족들의 비자의 기록이 약간 달라서 한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저희 비자 사본을 보내서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대사관에서는 제 비자에 대해서 조사를 해야 한다더니, 2개월간 꼼짝없이 발을 묶어 놓았습니다. 나중에는 별 문제가 아닌 것으로 결론 나서 며칠 전 가족 모두 뉴욕으로 무사히 왔습니다만, 처음에는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제 비자가 조사실로 넘어갔다는 대사관의 연락을 받고는, 그날부터 밥이 안 먹히고 잠이 안 옵니다. 미국 못 간다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우리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미국에서 7개월간 벌여놓은 일이 있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사인 아내는 3년간 휴직을 했고, 다른 사람이 아내를 대신해서 임시교사로 고용되었습니다. 저희 집도 세를 주었습니다. 만에 하나 미국행이 무산되면 채 자리도 잡지 못한 <미주뉴스앤조이>의 진로가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고, 비정규직 교사가 운 좋게 일자리를 얻자마자 빼앗기는 참담함을 맛보아야 하고, 우리 가족은 창졸히 거리에 나앉아야 할 처지가 된 것입니다.

<뉴스앤조이> 대표를 하면서 그렇게 어려웠을 때에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넉넉히 즐기고 누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성공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실패하든 성공하든 어떤 결과에도 감사하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기도가 안 나오더군요. 억지로라도 그런 기도를 하려고 애를 썼지만, 솔직히 그런 고백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미국에 보내주십시오. 안 가면 큰일 납니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저 ‘주여’ 하는 탄식이 정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입가에서 새어나오더군요. 결국에는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난 모르겠습니다’ 하는 기도 아닌 체념만 하고 말았습니다.

<뉴스앤조이>를 운영할 때 상황과 지금 상황과 객관적으로 비교해보면 그때가 몇 배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밤마다 ‘하나님, 아침이 안 오면 좋겠습니다’ 하는 장탄식을 쏟아놓았겠습니까. 저에게 당시 아침은 희망의 새날이 아니라 돈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해야만 하는 절망과 암흑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 모든 걸 즐기고 어떤 결과에도 감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기도가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이가 먹는다고, 종교적 연륜이 쌓인다고, 일을 더 잘하게 되었다고 해서, 믿음이 더 순수해지고 견고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는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이 이렇게 부실하구나’ 하고 자책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몇 가지 더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 마음이 잔뜩 위축되고 신경이 곧추선 상태였지만 아내와 말다툼을 하거나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지 않고 잘 지냈다는 것입니다. 아내도 저의 달라진 태도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주변 사람들도 그러더군요, 7개월 만에 만나보니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요. 몇 군데 산도 오르내리고, 아버지가 묻혀 계신 산소도 여러 번 다녀오고, 그동안 밀린 책들도 제법 읽었습니다. 출국 날짜가 미뤄지는 바람에 장인어른과 어머니의 생신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덤으로 받은 감사거리들입니다.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도 기도를 별로 안 하는 저 대신에 아내가 새벽기도를 나간 것도 기적 같은 일입니다(물론 용두사미이지만). 희한한 것은, 아내가 새벽에만 오가던 동네 교회의 한 권사님이 저희 가족 얘기를 듣고는 며칠간 중보기도를 하더니, ‘미국 가게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아내에게 장담했답니다. 우리의 어려운 소식을 들은 가족들, 동료들, 미국에서 사귄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직간접으로 들었습니다.

아마 하나님은 워낙 기도 안 하는 제게는 별 기대를 안 하시는 모양입니다. 간혹 하는 기도라고 해봐야 별 신통치 않는 내용뿐이니 그마저도 별로 마땅치 않으실 겁니다. 대신 제 주변에서 정말 제대로 기도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가게 될 것 같습니다.

2개월간의 긴장된 시간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서 가을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 위에 희디흰 구름이 제 가슴 가득 안겨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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