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 시작한 옹알거림이 외국어로 영의 언어로 변천
이단이 시작한 옹알거림이 외국어로 영의 언어로 변천
  • 정이철
  • 승인 2014.06.14 06:0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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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쓰러짐,끄적거림,이상한 노래,구르기 등과 함께 불세례 현상으로 오도

교회를 말씀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사탄의 무기는 거짓 은사이다. 신자들이 마귀가 풀어놓은 거짓 은사의 세계에 빠져들면 건전한 ‘신앙의 틀’이 급속하게 변형된다. 그리고 동시에 엄청난 확신, 헌신, 열정이 일어난다. 그래서 미혹의 영이 일으키는 거짓된 은사를 분별하는 싸움은 그 어떤 문제보다 어렵고 고약하다. 바른 말을 해 주어도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성령훼방’을 들먹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다음은 유명한 개그맨이었던 서세원 씨가 목사가 되어 집회를 인도하며 방언이랍시고 공개적으로 옹알거림 소리현상을 시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옹알거림을 도입한 아주사 부흥

옹알거림 현상이 1900년대 초에 미국의 이단들에 의해 처음 시작될 때에는 추종하는 신자의 수가 매우 희박했다. 1900년대 초에는 세계 교회의 전체 신자들 중에서 불과 0.2% 정도가 이것을 성령의 방언이라고 믿으며 추종하였다. 그때 옹알거리는 현상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성령 안에서의 안식한다고 주장되는 ‘쓰러짐’ 또는 ‘무아지경’, 영계에서 보내오는 메시지를 받아쓴다는 끄적거리는 ‘영서’, ‘성령춤’이라고도 하고 ‘홀리댄스’라고도 하는 이상한 춤사위, 옹알거리는 소리 현상에 가락을 실어서 부르는 노래,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말해지는 떼굴떼굴 구르기 ... 등이 함께 나타났다.

1906년에 ‘아주사 부흥’(Azusa Street Revival)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 괴상한 운동의 실상을 직접 읽어보도록 하자. 다음은 당시 아주사 부흥 운동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이 쓴 책, 잡지, 홍보지 등에 실렸던 내용들이다. 아주사 부흥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였던 존 G. 레이크라는 사람이 저술한「하나님과의 모험」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 당시에 이미 방언찬양이라는 성경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현상이 흔하게 나타났음을 기술하고 있다.

“집회의 가장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천상의 합창단’이다. 몇 몇 사람, 혹은 20명 정도가 알지 못할 방언으로 노래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오케스트라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성령의 지시 하에 이뤄졌다. 참으로 하늘이 지상에 임했다.”

다음은 1906년 아주사에서 일어난 일들을 직접 경험하고, 그것을 미화하는 글을 써서 널리 홍보하였던 프랭크 바클맨(Frank Bartleman, 1871-1935)이 자신의 저서「아주사의 거리」에서 쓴 내용이다. 그때 쓰러지고 구르는 현상이 매우 흔했을 말해준다.

“누군가 말하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회중 위에 임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강단 초청을 하셨다. 사람들은 마치 전투에서 칼에 맞은 것처럼 집안 여기저기에 쓰러지거나 아니면 하나님을 구하기 위해 무더기로 강단을 향해 돌진했다.”

다음은 아주사 부흥을 일으킨 지도자 윌리엄 세이모어(William Seymour)가 자신의 신앙운동을 전파하기 위해 창간한 잡지 “사도적 믿음” 제 1권, 제 6호에다 기술한 무엇을 받아서 쓰는 끄적거리는 영서에 관한 내용이다.

“3월 21일 워싱톤 주 스포케인 - 하나님께 감사하자. 성령의 역사가 이 땅 끝까지 뻗어가고 있다. 30명 이상이 지난 며칠 동안 이곳 스포케인에서 오순절을 받았다. 이들은 방언을 하고, 글을 쓰며(영서?)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아주사 부흥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의 실상을 알려주는 자료들은 다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당시 윌리엄 세이모어는 이러한 일들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스승 찰스 펄햄(Charles Parham)을 아주사로 초청하였다. 세이모는 자신의 선생으로부터 격려와 칭찬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펄햄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서 도저히 성령의 역사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고, 두 사람은 사이가 나빠져서 더 교제하기 어렵게 되었고, 이때 섭섭하게 헤어지고 난 후 죽는 날까지 만나지 않았다.

“최면술사들과 심령술사들이 집회를 다 점령해 버렸다!”

“우리는 ‘홀리 로울러’(holy rollers, 집회 중에 바닥에서 뒹구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들이 운동선수처럼 몸을 뒤트는 것에 동조하거나 찬성하지 않습니다.”

오순절 운동으로 확산

그 당시 복음적인 교회들은 이런 현상에 동조하는 목회자가 나타나면 성도의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치리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세력이 커졌고, ‘오순절 운동’(Pantecostal Movement)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 1914년에는 이 운동을 전면적으로 표방하는 새로운 오순절 운동 교단, ‘하나님의 성회’(Assembly of God)가 창립되었다. 이후 짧은 시간 동안에 오순절 운동은 더욱 확산되었고, 1930년대에는 오순절 운동을 추구하는 교단의 수가 약 30여개로 확대되었다.

5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운동의 여세가 약화되는 듯했으나, 60년대에 ‘은사 운동’(Charismatic Movement)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나타나서 다시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이 운동을 거부했던 개신교의 많은 복음주의 교단의 교회들 속으로 이 운동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로마 천주교 속으로도 이 운동이 전파되어 더욱 그 세력이 확대되었다.

80년대 이후 이 운동은 조금 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였다. 조금 특징을 달리하여 ‘신사도 운동(빈야드 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새롭게 다가와서 큰 파도를 일으키며 전 세계 교회를 공략하였다. 특히 이 운동은 제 3세계 국가들 속으로 스며들어 이후 “제 3세계의 교회들이 두드러지게 부흥한다!”라는 그릇된 말이 생겨났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지금 전 세계 교회의 약 30%에 해당하는 교회들이 이 운동에 물들었다고 한다.

교회사 속의 성경의 방언

방언이라고 오도되는 옹알거림 현상은 무슬림, 힌두교, 몰몬교, 불교, 샤마니즘, 최면실습 등의 다양한 다른 종교들에서도 나타난다. 과연 성경의 방언이 지금도 존재하며 신자들의 신앙을 돕고 있는 현재의 성령의 은사인가? 하는 문제는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다. 몇 가지 의견이 있으나, 그 중에서 성경을 가장 바르게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성경의 방언이 성경이 완성되고, 신약 교회가 설립된 이후 사라졌고, 현재의 방언이라고 오도되는 옹알거림은 1900년대 초 미국의 이단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본다.

성경의 방언이 기독교를 존재하게 하는 성경계시의 완성과 신약 교회가 설립된 이후 종결되었다는 이해는 관련된 말씀들에 대한 주석과 교회사에서 발견되는 증거들에 의해 지지받고 있다. 초대교회의 믿을만한 지도자들의 저술 속에서 성경의 방언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대주교였던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9-407)은 고린도전서를 해석하면서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였던 성경의 방언은 이미 사라졌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경의 방언에 대하여 가장 많은 가르침을 남긴 사도 바울의 신학을 계승하여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의 발판이 된 스승이라고 평가되는 어거스틴(Augustine, 354-430)도 고린도전서를 강해할 때 실제 외국어였던 성경의 방언이 사라졌고, 그 당시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세시대와 종교개혁 시대에도 성경의 방언은 나타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의 방언에 관한 견해는 그 이전의 대표적인 학자들의 견해와 동일했다. 초대교회 이후 조용히 사라진 성경의 방언이 중세시대와 종교개혁 시대에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을 완성한 칼빈도 성경의 방언이 초대교회 이후에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식하였고, 고린도전서를 강해하면서 성경의 방언이 그 시대의 이방인들의 실제 외국어였다고 가르쳤다.

1906년부터 미국의 이단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옹알거림 현상이 확산되기 이전에도 사이비 방언은 2,000년 교회사 속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성령운동 그룹이었던 몬타누스파(Montanist)에게서 성경의 방언과 유사한 사이비 현상이 나타났으나, 몬타누스가 자신이 요한복음의 보혜사의 사도라고 주장함으로 인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중세 시대에도 신비주의 그룹들에게서 사이비 방언 현상이 나타났다.

현대의 사이비 방언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사람은 1800년대의 영국 사람인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이다. 1828년부터 그에게 특별한 영적인 현상들이 나타나며 그의 신학의 변질되어 인간의 타락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하였고, 환상 등의 신비한 체험을 중시하였다. 그때 그에게서 옹알거리는 괴이한 소리 현상이 나타났고, 연구자들은 그것을 현대의 거짓 방언의 기원으로 간주한다.

방언 운동의 아버지 찰스 펄햄은 이단

현대 방언운동의 직접적인 기원은 1901년 1월이다. 캔자스 주 토페카(Topeka)에서 ‘벧엘성경학교’(Bethel Bible School)라는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던 찰스 펄햄(Charles Parham, 1873-1929)과 그의 학생들에게서 현대 방언운동의 문을 여는 현상이 발생했다. 펄햄은 괴이한 소리현상을 체험하고서 종말의 대 부흥을 가져올 사도행전 2장의 외국어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세례가 재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외국에 선교를 떠나기 위해 외국어를 힘들여서 공부할 필요가 없이 그 방언을 받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훗날 이러한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당시에는 외국 여행이 자유롭지 않아 외국에 나가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으나, 훗날 외국에 나가서 자신들의 방언을 현지인들을 상대로 실험해 본 사람들은 크게 낙심하게 되었다. 그들이 받은 방언은 외국의 어떤 나라의 언어와 비슷한 사운드를 가졌을 뿐 현지의 언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소리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대의 사이비 방언을 현대의 방언을 경계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실은 관련된 사람들 대부분이 이단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찰스 펄햄도 이단이었다. 그는 ‘불 세례성결교회’(Fire-Baptisted Holyiness Church)를 운영했던 벤자민 어윈(Benjamin Irwin)에게서 크게 영향받았다. 어윈은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완전(perfection)과 권능을 가지기 위해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는 소리를 지르는 현상, 입신, 방언, 특별한 춤(holy dances, 성령춤?), 이상한 웃음(holy laught, 거룩한 웃음?)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지저분한 신사도 운동 집회가 이미 그 당시에 등장한 것이다.

펄햄은 퀘이커 교도인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고, 1896년 12월 그의 손녀와 결혼하였다. 그래서 펄햄도 퀘이커 교회의 이단 사상을 수용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한 자들에게 임하는 영원한 심판을 부정하였고, 이단 ‘여호와 증인’, ‘안식일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불신자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지 않고 소멸된다고 가르쳤다.

찰스 펄햄은 메인(Maine) 주의 더햄(Durham)에서 ‘실로’(Shiloh)라는 신앙공동체와 ‘성령과 우리성경학교’(The Holy Ghost and Us Bible School)라는 신학교를 운영하며, 하나님께서 많은 ‘기사와 이적’(sings and wonders)을 일으키시는 마지막 시대의 부흥이 일어난다고 가르쳤던 프랭크 샌포드(Frank Sanford)에게서도 크게 영향받았다. 당시 샌포드가 주장했던 내용은 피터 와그너가 주창한 제 3의 물결의 선두주자 존 윔버가 일으킨 빈야드 운동의 ‘능력전도’(Power Evangelism) 사상과 거의 유사하였다.

샌포드는 초대교회 당시의 사도들의 삶과 능력을 재현시킬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래서 샌포드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을 사모하는 경향이 함께 나타났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신앙능력의 회복되기 위해 사도행전 2장의 외국어 방언들이 다시 나타나면서 종말의 대부흥이 시작된다는 그릇된 사상이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샌포드 자신도 1901년까지 방언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펄햄이 옹알거리는 소리 현상을 외국어라고 믿고 사도들의 신앙이 재현되는 종말의 부흥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하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단에게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펄햄은 신약의 교회와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의 관계에 대해서 오해한 샌포드의 ‘앵글로-이스라엘주의’(Anglo-Israelism)이라는 이단사상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펄햄은 ‘앵글로-색슨’(Anglo-Saxons)족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0지파의 후손이라고 가르쳤고, 현재의 영국과 미국이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언약과 은혜를 상속받았다고 주장하는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보였다.

펄햄은 1900년 10월 그의 나이 27세였을 때 캔자스 주 토페카(Topeka)에서 성경학교를 시작하였으나, 그의 사이비 방언 운동에 대해 다수의 학생들이 반발하자 폐교하고 떠나야만 했다. 1905년 택사스(Texas) 주 휴스턴(Huston)에 정착하여 더욱 본격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였다. 그의 사상을 요약하자면 ‘사도적인 신앙’(Apostolic Faith)이었다. 펄햄은 자신이 저술한「사도의 믿음의 설계자」(the Projector of Apostolic Faith)라는 책에서 자신이 새로운 성령의 시대를 개막시키는 세례요한이라고 말하였다. 미혹하는 영이 좋아하는 거짓 은사를 추구하다가 그만 확실하게 이단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펄햄은 더욱 더 이상한 행동을 했고 점점 이상해졌다. 1905년에 자신의 이단 사상을 따르는 약 25명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복을 입히고서 함께 휴스턴 시가지를 행진하였다. 자신들이 오순절 군대라고 선포하며, ‘사도적 기독교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선언하였다. 마귀가 준 옹알거림 현상을 외국어 방언이라고 믿으면서 시작된 이단광증이 점점 깊어진 것이다. 그리고 휴스턴에서 만난 커더로스(W. Faye Carothers) 목사의 교회를 본부로 삼고서 본격적어로 ‘사도적 믿음 운동’(Apostolic Faith Movement)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신사도 운동, 즉 사도들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여 종말의 대부흥이 나타난다는 요설의 시작이었다. 오늘 날 전 세계 교회의 30% 정도가 크게 영향받고 있는 사이비 방언운동이 이렇게 등장한 더러운 것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웨일즈 부흥을 일으킨 이반 로버츠의 이단성

1904년에 일어났던 웨일즈 부흥(Welsh Revival)에서도 사이비 방언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웨일즈 부흥의 중심인물은 이반 로버츠(Evan Roberts)라고 하는 청년 목회자 지망생이었다. 1906년에 시작된 아주사 부흥(Azusa Street Revival)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옹알거림-성령세례’ 현상이 이반 로버츠를 통하여서도 나타났다. 인격적이신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굴복하기를 강요하시는 분이 아닌데, 이반 로버츠는 사람들에게 성령에게 굴복할 것을 매우 강조하면서 성령의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 간절하게 기도했고, 그때 옹알거림 현상을 비롯한 비성경적인 성령세례 현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반 로버츠는 영적으로 매우 불건전한 사람이었다. 오늘 날 계시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신사도 운동가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환상과 같은 신비주의 현상이 그에게 나타났다. 이반 로버츠의 이단성이 그 동안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은 신사도 운동을 옹호하는데 크게 기여한 신사도 운동 신학자 예영수 목사가 발행한「카리스월드」에 소개되었던 웨일즈 부흥의 대표 이반 로버츠에 대한 내용이다.

“1904년 봄 어느 금요일 밤, 로버츠는 침대 옆에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 1시경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는데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시간과 공간이 없는 위대한 ‘거대함’으로 들리어져 갔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경이로움에 쌓여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4시간 동안 마치 친구와 대면하여 말을 나누듯이 하나님과 말을 나누었습니다. 5시경 나는 다시 지구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는 5시부터 9시까지 잠을 잤는데 또다시 9시부터 12시나 오후 1시까지 같은 체험을 했다. 그는 이 체험이 하나님과의 만남이란 것 외에는 어떤 것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후 3-4개월 동안 매일 아침 이런 대화가 계속됐다. 그 결과 로버츠의 성격이 변화되었으며,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는 하나님께서 웨일스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역사 하실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로버츠는 새벽 1시마다 깨어나서 4시간 동안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었다. 그 4시간 동안 그는 분명히 많은 환상을 체험했음에 틀림이 없었다. 그 환상 중의 하나는 달이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달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펼친 팔과 손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는데 그 종이에는 ‘100,000’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환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오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부흥운동이 웨일스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몇몇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 웨일스에 부흥운동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말하고 사역 팀을 구성했다.”

“10월이 지나자 로버츠는 환상 가운데 자신이 고향 로우골에 있는 교회에서 특별히 젊은 사람들과 옛 동료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환상을 떨쳐 버리려고 애를 써도 계속 그 환상이 나타났다. 마침내 10월 30(일) 저녁예배 때 주님은 그에게 고향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알았어요! 주님 당신의 뜻이라면 가겠어요.’라고 했더니 환상이 즉시 사라졌다. 그 순간 그는 찬란한 빛을 경험했다. ‘온 교회가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차서 단 위에 계시는 목사님이 희미하게 보였어요. 목사님과 나 사이에 태양 빛과 같은 하늘나라의 영광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이후 갑자기 부흥운동이 불붙기 시작하여 지칠 줄 모르게 지속됐다.”

사이비 방언 시대를 개막한 아주사 부흥의 이단성

옹알거림 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주사 부흥’의 대표자 윌리엄 세이모어(William Seymour, 1870-1922)의 신앙을 살펴보면 우리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세이모어는 ‘하나님의 부흥운동’(Church of God Reformation Movement)을 이끌었던 마틴 냅(Martin Knapps)에게서 크게 영향받았다. 마틴 냅은 이미 성령을 받아 중생한 사람에게 다시 성령의 추가적인 임재가 있으며, 성도는 마땅히 그것을 사모해야 한다는 매우 비성경적인 사상을 전파하였다. 그의 이런 사상은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가 강조하였던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 개념을 신자들이 노력함으로 추가적으로 경험하는 성령체험으로 변형시키는 그릇된 운동으로부터 나왔다. 마틴 냅은 자신이 역사의 종말 시대에 살고 있고, 휴거가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는 큰 성령의 은혜가 나타날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대 부흥이 일어난다는 말씀이 없다. 오히려 거짓 기사와 이적으로 미혹하는 이단 운동이 많아진다고 경고하는 말씀이 많다. 세이모어는 그런 류의 이단에게 매료되어 분별하지 못하고 빠졌다. 세미모어는 마틴 냅이 운영하는 신학교 ‘하나님의 성경학교’(God's Bible School)에 입학하여 부지런히 공부했다. 이때 “어둠 속에서 빛나는 성도들”(Evening Light Saints)이라는 신앙단체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거듭난 신자에게 성령의 두 번째 은총이 임하여 다시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하게 성화될 수 있다고 하는 이단적인 사상을 학습하게 되었다.

세이모어는 1905년 휴스턴에서 찰스 펄햄이 두 번째로 운영하였던 신학교의 학생이 되었다. 이곳에서 펄햄에게서 그릇된 ‘방언-성령세례’ 사상을 배우면서 이단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미 마틴 냅의 가르침을 통하여 이미 성령받아 거듭난 신자에게 또 다시 임하는 성령의 축복에 대한 그릇된 신학이론을 먼저 접하였으므로, 펄햄이 가르치는 ‘방언-성령세례’ 이론에 곧 바로 동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이모어는 설교자가 되기 위해 1906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였으나 이단 사상으로 인하여 곧 바로 추방되었다. 방황하던 중 아주사(Azusa)의 한 성도의 집에서 몇 사람이 모여 기도회를 시작하였는데, 그곳에서 옹알거림 현상을 비롯하여, 끄적거리는 영서, 쓰러짐, 특이한 춤, 구르기 ... 등의 지금의 지저분한 신사도 집회의 특징들이 그대로 나타났다. 이미 말한 것처럼, 펄햄이 아주사에 방문하여 그러한 현상들을 직접 보고서 ‘영적인 매춘행위’를 중지해야 한다고 심각하게 비판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불편한 사이가 되었고, 펄햄은 아주사에서 기껏 두 번 설교하고 소외되어 떠나야만 했다. 두 사람은 이때 결별하였고 이후 죽을 때까지 서로 만나지도 않았고 화해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아주 부흥의 실상이었고, 이렇게 등장한 옹알거림 현상이 전 세례로 확산되어 초창기에는 여러 나라의 언어라고 주장되었고, 해외 여행이 많아지면서 실상이 드러나자 ‘영의 언어’라고 말이 달라졌다.

성경의 방언의 특징

그렇다면 성경에 나타난 방언은 어떤 은사였을까? 성경의 방언의 특징은 무엇일까? 성경의 방언은 전혀 배우지 않는 외국어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즉시 구사하면서 복음을 설명하는 은사였다. 옹알거림을 옹호하는 어떤 사람은 “배우면 되는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 무슨 성령의 특별한 은사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런 말은 교묘하게 본질을 왜곡하는 간교한 말이다. 전혀 배운적 없는 외국어를 어떤 필요한 상황에서 즉시로 완전하게 구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한다는 것이 어디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래서 성경의 방언은 성령의 이적이었다.

성경의 방언은 실제 외국어였으므로 그 나라에서 살거나 살았던 사람들은 다 알아들었다. 이런 현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죽은 자를 살리고, 태어나면서 소경, 앉은뱅이였던 환자를 고치는 것과 같은 이적이다. 그래서 방언 이적이 나타나는 곳에 불신 유대인들의 회개가 많았다. 이와 같은 성경의 방언 속에는 크게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었다.

A. 십자가 구원계시를 증거

성경의 방언은 십자가 복음이 하나님이 보내신 완전한 구원계시임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는 이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가복은 16장 마지막에서 예수님이 언급한 방언에 대한 내용이 현대의 옹알거림을 예언했다고 주장한다.

“믿는 자들에게서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8,19)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방언이 현대의 옹알거림을 뜻한다면, 동시에 여기서 말하는 대로 독사를 맨 손으로 잡아도 거뜬하고, 농약을 콜라처럼 마셔도 무탈하게 잘 사는 옹알거림에 능숙한 은사주의자들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4년 2월, 옹알거리는 소리가 마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의 방언이라고 믿는 미국인 제이미 쿠츠라는 목사가 이 말씀대로 시험하다가 비참하게 죽었다. 그는 독사를 맨 손으로 잡았고, 뱀은 그의 손을 물었다. 그는 성경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의사의 치료를 거부하고 집으로 갔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죽었다. 2012년 6월, 미국 버지니아 주의 울포드 목사도 성도들 앞에서 같은 실험을 하다가 죽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옹알거리는 소리를 성경의 방언이라고 신봉하던 그의 아버지도 39세의 젊은 나이에 동일한 실험을 하다가 죽었다.

정말 예수님은 자신이 승천하고 난 후 제자들이 세상에 나아가 십자가 복음이 전파하기 시작할 때, 옹알거림 현상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일까? 그렇다면 2,000년 동안 잠잠하다가 왜 하필 이단들에 의해 1,906년부터 그것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을까? 그리고 왜 다른 종교들에서도 같은 옹알거림이 나타나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방언은 결코 그런 옹알거림이 아니다. 전혀 배우지 않은 외국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저절로 구사되면서 십자가 복음이 보충 설명되어지는 이적이 나타날 것임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 2:6-11)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령이 강림하시는 날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방언이 실제로 나타났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강림하며 교회가 설립되던 날 제자들에게서 배우지 않은 외국어를 구사하며 복음을 설명하는 이적이 나타났다. 배운적 없는 외국어가 저절로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놀라운 이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사람,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 완치되는 현상은 창조주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이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타락한 인간을 재창조하는 하나님의 구원계시임이 증명된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완악한 유대인 불신자들이 회개하고 믿기를 바라셨다. 성경의 방언도 그 차원에서 나타났던 복음계시의 이적이었던 것이다.

B. 이방인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증거

사도행전의 방언이 실제 이방인들의 외국어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사도행전의 방언과 달리 ‘영의 언어’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 21절에서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방언에 대해 설명한 내용은 고린도 교회의 방언도 외국어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바울은 구약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고린도 교회의 방언을 설명하였다.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찌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행 14:21,22)

이사야 선지자는 그 시대의 완악한 구약의 유대인들을 책망하고 회개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외국말하는 이방인들을 동원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내용은 훗날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략함으로 성취되어진다. 고린도 교회의 방언을 설명할 때 바울이 이사야의 그 예언을 인용하였다는 무엇을 뜻하는가? 고린도 교회의 방언도 예루살렘을 침략한 이방인들의 언어와 같은 실제 외국어였다는 것이다. 생소한 말을 구사하는 외국인들이 구약의 교만한 유대인들을 회개시키는 도구가 되었던 것처럼, 신약시대 초기에도 끝내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이 심판을 받아 꺾이고, 대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복하는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배운적 없는 외국어가 완전하게 구사도는 방언 이적으로 증거하신 것이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고린도 교회의 방언에 대해 설명할 수는 없다. 초대교회의 방언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들어야 할 사람들은 완악한 유대인들이었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러한 역사를 행하실지라도 유대인들은 여전히 교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지금 우리 주변의 일반 불신자들이 아니다. 초대교회 당시 끝까지 예수님을 배척하는 완악한 유대인들을 뜻한다.

C. 복음을 보충했던 계시의 보조수단

성경의 방언은 복음계시(성경)가 사도들을 통해 완성되어 교회에 주어지기 전에 복음계시를 보충하였던 임시적인 계시은사였다. 그래서 성경의 방언은 반드시 교회에서 통역하는 사람이 있을 때 활용되어야 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고전 14:27,28)

개인이 은밀하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비밀의 방언이라고 할 분명한 증거가 없다. 반드시 방언 은사를 받은 사람이 현장에 있어야 했고, 방언의 내용을 모두 알아듣도록 통역되어야 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므로 공손하고 질서있게 모두가 경청해야 했다. 통역도 없이 혼자서 신령한체하면서 주절거리는 방언은 아무 소용없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바울은 가르쳤다(고전 14:6,8-13).

그러므로 오늘 날 방언을 하려면 통역하여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명료한 말씀을 얻을 수 있는 방언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방언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주변의 사람들이 그에게 공개적으로 방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즉석의(직통의) 말씀을 받게 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과연 어디에서 이런 방언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혹 그런 방언이 나타난다면 그 다음에는 더욱 엄청난 신학적 고민에 빠지게 된다. 완성된 성경 외에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오는 말씀계시를 받는 것이 정통 기독교에서 가능하지 않다. 직통계시자는 반드시 이단이다.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일방적으로 주절거리고, 통역한답시고 눈을 내리뜨고 느낌대로 주절거리면서 뜻을 푸는 행위도 배격해야 한다. 그 소리를 녹음하여 다른 통역한다는 사람에게 들려주면 전혀 엉뚱한 다른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녹음된 같은 옹알거림을 비슷하게 통역하는 두 사람을 지구상에서 찾을 수 없다.

옹알거림 운동에 악용되는 말씀들

오늘 날의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옹알거림이 성경의 방언이고, 또한 그것이 사람이 모르는 ‘영계의 신령한 언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는 성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A. ‘천사의 말’(고전 13:1)

사도 바울이 언급한 ‘천사의 말’이 영계의 언어인 현대의 옹알거림의 근거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그 어떤 놀라운 은사를 가졌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본적으로 구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나온 일종의 은유적인 표현이었다. 실제로 천사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는 것인지? 천사가 구사하는 영계의 언어가 성도에게 정말 주어지는 것인지? 에 대해서 논의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만일 바울이 말한 ‘천사의 말’이 실제의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을 뜻한다면, 영계의 언어인 현대의 방언은 단 한 종류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천사의 말’을 단수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천사의 말이 있다고 할지라도 단 한 종류이어야 하는데, 지금의 영계의 언어라는 옹알거림의 종류는 수 천 가지이다.

B. ‘방언으로 기도하면’(고전 14:14)

바울이 ‘방언으로 기도하면’이라고 표현한 내용이 영계의 언어인 현대의 옹알거림의 근거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문맥의 전후를 자세히 살피면, 성경의 방언의 은사과 기도를 혼용하지 말라는 바울의 역설적이 책망이다. 기도 시간에는 정당한 성경의 방언을 풀지 말라는 바울의 책망이 도리어 기도의 방언이 있다는 억지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성경과 방언과 무관한 옹알거림 현상을 옹호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니, 더욱 한심한 일이다. 어쩌면 고린도 인근의 델피 신전의 여 사제들에게서 흔히 나타났던 신비적인 옹알거리는 현상이 고린도 교회 속으로 침투한 것에 대한 사도 바울의 심각한 책망이라는 의견도 많다. 방언기도 자체를 부정하는 말씀이 근거없는 영계의 언어인 옹알거림 현상을 옹호하는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것은 당치 않다.

C. ‘영으로 기도하고’(고전 14:15)

바울이 ‘영으로 기도하고’라는 표현한 것이 영계의 언어로서의 방언의 기도를 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바울은 다른 곳에서 ‘성령으로 봉사하며’(빌 3:3)라고도 말했다. 두 곳에서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영으로 봉사하며’로 다시 해석되는 될 부분이다. 성령으로 봉사하라는 말씀이 ‘방언으로 봉사하라’는 뜻이 아닌 것처럼, ‘영으로 기도하고’라는 내용도 방언으로 기도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없다. 또한 조금 뒤에서 나타나는 ‘영으로 찬미하고’(고전 14:15)라는 문구도 방언으로 찬미하라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이방인들의 주문같이 기도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정성과 지성과 인격을 담아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D.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전 12:2)

이 내용을 근거로 현대의 방언기도가 성경의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리고 이 주장이 가장 옹알거림을 성경의 방언으로 미화하기 위한 가장 그럴싸한 논리적 근거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바울은 말하는 ‘비밀’이란 무엇일까? 바울에게 ‘비밀’이라는 단어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에게 속하여 있는 것, 즉 그 당시 사도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구원계시를 뜻하는 말이었다. 바울은 이 단어를 다음과 같이 사용하였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

바울에게 비밀은 하나님 편에서 사람에게로 계시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비밀을 알려준다고 한다. 대체 하나님이 모르시는 사람의 비밀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모르시므로 사람이 하나님께 알려주어야 할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과연 누가 이 내용의 뜻을 속 시원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난해구절을 자기의 주장을 위해 억지로 푸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단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수법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바울은 사람이 보편적인 언어를 다른 사람에게 구사함을 뜻하는 단어를 사용하여 ‘말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한다고 하지 않았다. 성경에는 기도를 의미하는 분명한 단어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렇게 어색하게 풀면서 현대의 옹알거림 현상이 영계의 언어인 성경의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옳지 못하다. 정확한 뜻을 모르면서 억지로 풀면 미혹하는 사탄에게 큰 기회를 주게 된다. 지금 나타나는 방언의 99.99%는 성경이 명백하게 말씀하는 외국어가 아닌 영계의 언어라는 소리현상이다. 이렇게 흔한 소리의 뚜렷한 근거를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E.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

바울이 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한 내용이 오늘 날의 옹알거리는 현상을 옹호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사람이 사람을 향하여 말하는 성경의 방언 현상을 금하지 말라고 하였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복음이 사람에게 설명되는 성경적 방언의 은사를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복음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을 주는 귀중한 신앙활동을 금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 당시에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못했다. 아직 복음의 계기가 모두 명료하게 교회에 드러나지 못했다. 계시가 주어지고 있는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임시적이고 계시적인 방언 은사를 통하여 복음계시가 보충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므로 마땅히 방언의 은사가 활발하게 사용되어야 했고, 신자들을 그것을 통해 복음의 원리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방언을 통역과 함께 사람에게 말해지는 것을 막지 말았야 했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이 완성되었고,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차별없이 한 몸이 되는 하나님의 교회가 설립되었다. 그래서 성경의 방언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언제부터 방언이 사라질 것이지 더 이상 기대하지 말라는 명료한 말씀이 없으므로 지금 성경의 방언을 사모한다고 하여 책망당하거나 그릇되었다고 비판받을 수는 없다. 중요한 사실은 무의미한 옹알거림을 성경의 방언이라고 우기지 말라야 한다는 것이다.

F.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고전 14:18)

바울이 다른 사람들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감사한다고 말한 이 내용이 지금의 옹알거림 현상의 근거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바울은 사람이 사람을 향하여 실제 언어를 구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옹알거리는 소리를 뜻 한다면 ‘비밀의 방언으로 기도하므로’라고 하였을 것이다. 바울은 최소한 로마어, 헬라어, 터어키어, 히브리어를 맘대로 구사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또한 스페인까지 가서 선교하기를 소원했으므로 스페인어에도 능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G.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고전 14:28)

이 내용이 영계의 언어로 기도한다는 현대의 옹알거림 현상의 근거라고 주장되고 있으나, 이 내용은 통역없이 일방적으로 풀어대는 무절제한 방언이 교회에 유익되지 못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통역이 없는 방언은 교회를 어지럽게 할 뿐이니 그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방언을 자신과 하나님께 하라는 뜻이라 보기 어렵고, 성경에서 그런 방언 활용에 대한 가르침을 일체 찾을 수 없다. 이 내용은 사도 바울이 방언을 남용하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조롱하는 투로 심히 책망하는 내용이다. “통역없는 방언을 교회에서 떠들지 말라! 굳이 하고 싶다면 네 집으로 가서 혼자서 맘대로 해 라!”라는 핀잔의 말이다. 이는 성경의 방언이 공개적으로 반드시 통역과 함께 활용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가 함께 누리게 만드는 계시를 보충하는 은사였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성경의 방언이 외국어였다는 증거들

성경의 방언이 이방인들의 실제 외국어와 지구인들은 뜻을 모르는 영의 언어, 이 두 종류였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못한다. 성경의 방언이 유대인들이 멸시하였던 이방인들이 사용하는 실제의 언어들이었음을 확신하게 만드는 증거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성경에서 방언을 표기하는 단어들 모두 세상의 일반 언어를 표기할 때 쓰여지는 단어들이었다.

2)성경의 방언은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사람들에게 언어로 말해지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3)이방인들이 사용하는 실제 언어였으므로 현지인들은 통역이 없이 즉시로 알아들었다.

4)고린도전서의 저자 바울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같은 신학 사상을 가진 한 그룹이었고,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였으며, 두 사람 사이에 방언에 대한 다른 개념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

5)사도 바울의 고린도 교회 개척은 이야기는 사도행전 18장, 에베소 교회 개척은 이야기는 사도행전 19장에 나온다. 바울에 의해 개척된 두 교회에서 각각 외국어 방언(에베소)과 영계의 비밀언어 방언(고린도)이 따로 나타났다고 볼 근거가 없다.

6)다른 종교들에서도 ‘옹알거림 현상’ 동일하게 나타난다. 불교에서는 ‘변음’이라고 한다. 무슬림, 몰몬교, 무속, 힌두교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데, 교회에서 나타나는 현상과의 차이점이 분명하지 않다. 다음은 시그먼트 프로이드(Sigmund Freud)라는 외국인이 힌두교의 요가 수련에 참여하다가 경험한 쿤달리니 현상에 대해서 기술하는 내용이다. ‘방언’, ‘이전에 알지 못했던 노래를 부르는 현상’(방언찬양?), 울음, 황홀경, 비정상적인 웃음, 몸의 발작, 뜨거운 열기 ... 등이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이런 현상들이 교회에서 나타나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는 성령세례라고 이해되었다.

“그들의 등뼈에는 아래로부터 위로 뜨거운 열이 올라가면서 강력한 에너지를 느낍니다. 그러면 그들의 몸은 발작을 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흔들이고 몸이 꼬입니다. 그들의 감정은 엄청난 에너지로 인하여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심한 감정의 기복을 나타냅니다. 분노, 염려, 슬픔, 기쁨, 황홀경에 사로잡힘 등의 모습이 타나나지요. 이 과정에서 각 개인들은 그들의 몸과 정신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오직 쿤달리니 에너지의 강력한 움직임이 이들을 다스릴 뿐입니다. 이러한 현상 중에는 의도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웃음들, 눈물들, 방언들, 전에 알지 못했던 노래들을 부르는 현상들, 영적인 주문을 외는 모습들, 요가 자세를 취하는 모습들, 다양한 동물들의 소리들을 내거나 동물들처럼 움직이기도 합니다.”

7)1901년 1월에 방언과 성령세례에 대한 거짓된 이론을 최초로 수립한 오순절 운동의 아버지이며, 세이모어의 스승이었던 찰스 펄햄도 사도행전 2장의 실제 외국어가 다시 나타났다고 했다. 그래서 사도들의 신앙부흥의 시대가 자신을 통해 도래했다고 크게 떠들면서, 휴스턴에서 사도들의 신앙부흥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알리는 출정식을 벌였다. 사도행전 2장의 외국어 방언이 나타난다는 착각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는데, 그 웃겼던 일이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지금까지도 교정되지 않았다.

8)1906년 윌리엄 세이모어가 미국의 아주사에서 옹알거리는 현상을 본격적으로 이끌어내기 시작할 당시에는 아무도 모르는 ‘영의 언어’라는 개념은 일체 없었다. 세이모어는 세상의 다른 나라들의 외국어라고 하였다. 훗날 외국 여행이 많아지면서 중국, 인도 등지에서 실험해 본 결과 현지인들의 언어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무의미한 소리현상임이 드러나자, 그때부터 “사도행전의 방언은 외국어였고,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영의 언어였다!”라고 둘러대는 이론이 등장했다. 다음의 아주사 부흥 당시 세이모어가 실제로 했던 설교의 일부이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의 보좌의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 분의 충만하심으로 그리스도를 세상에 높이 올려드립시다. 모든 죄에서의 구원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언어를 말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그 분의 능력을 높여드립시다.”

정이철 목사 / 앤아버 반석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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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 2014-07-22 14:05:59
자신의 신앙의 무지함과 자기만 옳고 자기 신학만 옳은 정목사님 ,,,이곳 미시간 지역에선 은혜없는 교회 예배에 기쁨이 없고 감동이 없고 십여년간 교인수는 이십여명에서 오락가락...물론 교인수가 적어도 교인들이 하나님 사랑하고 진정한 그리스도 인이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서 문제인 교회 ..성령의 역사를 자기가 하나님인양 이단으로 정죄하니 성령님께서 그교회에 임하실수가 없으니 냉랭하고 예배의 감격이 없을수 밖에요. 정목사님 여기저기 이단세미나 하러 다니며 하나님 맘 그만 아프게하시고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며 기도 하세요 안그러면 목회는 계속 그렇게 망치실겁니다

오직 은혜 2014-07-22 14:07:48
자신의 신앙의 무지함과 자기만 옳고 자기 신학만 옳은 정목사님 ,,,이곳 미시간 지역에선 은혜없는 교회 예배에 기쁨이 없고 감동이 없고 십여년간 교인수는 이십여명에서 오락가락...물론 교인수가 적어도 교인들이 하나님 사랑하고 진정한 그리스도 인이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서 문제인 교회 ..성령의 역사를 자기가 하나님인양 이단으로 정죄하니 성령님께서 그교회에 임하실수가 없으니 냉랭하고 예배의 감격이 없을수 밖에요. 정목사님 여기저기 이단세미나 하러 다니며 하나님 맘 그만 아프게하시고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며 기도 하세요 안그러면 목회는 계속 그렇게 망치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