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버린 선장, 십자가를 버린 교회
배를 버린 선장, 십자가를 버린 교회
  • 신성남
  • 승인 2014.06.25 10: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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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침몰하는 리더십
▲ 신성남 집사 ⓒ 미주뉴스앤조이

세월호 사건은 천재라기보다는 인재에 가깝습니다. 사람이 만든 재난이라는 것이지요. 다른 잘못은 모두 제쳐두고라도 배의 선장과 일부 선원들이 승객들을 남겨두고 제일 먼저 배를 탈출했다는 사실이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많은 분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이유는 이 때문에 44개의 구명정이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선실 안에서 자리를 지키라"는 안내방송이 도리어 피해를 더 크게 키웠기 때문입니다.

리더십이 침몰하면 배도, 사회도, 그리고 교회도 순식간에 침몰할 수 있슴을 보여주는 너무나 뼈아프고 슬픈 사건입니다. 사고가 안 나면 제일 좋겠지만, 혹 사고 후에라도 보다 최선의 대처를 했다면 이토록 비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국민을 버린 대통령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이 비단 이번에 처음은 아닙니다. 과거 북한의 남침이 일어났을 때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장로는 서울 시민을 통채로 남겨두고 먼저 수도를 탈출했습니다. 그 때도 세월호와 아주 비슷한 안내방송이 있었습니다. 우리 국군이 서울을 잘 방어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먼저 부산으로 도망쳤습니다.

그 때문에 일어난 비극은 이루 말로써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무고한 수많은 시민들이 죽거나 고통을 받았고 나중에 일부 인사들은 북한에까지 끌려가서 그 생사조차 제대로 잘 몰랐습니다.

이승만 장로의 잘못은 단지 그뿐만이 아닙니다. 유엔과 미국의 도움으로 겨우 회복한 나라에서 고작 한다는 짓이 망국적 독재 정치였습니다. 평생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체험했다는 교회 장로로서 너무나 어이가 없는 행태였습니다. 또 다시 수많은 젊은이들과 애국시민들의 희생과 피값을 치루고서야 간신히 그 독재자를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점은 잘못된 리더십이 얼마나 큰 재난인지를 각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좋은 왕을 세우면 나라가 평안했고 나쁜 왕이 들어서면 온 백성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단지 한 사람 때문에 나라 전체가 휘청거리며 영향을 받습니다.

십자가를 버린 교회

물론 이 리더십은 현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 어떤 교회들을 좀 보십시요. 담임목사 한 명 잘못 세우고 고생하는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수십 년 동안 사회의 존중을 받으며 건강하게 사역하던 멀쩡한 교회도 목사 청빙 한번 잘못해서 졸지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는 '십자가 정신'이 상실된 리더십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지를 잘 보여 줍니다. 

교회는 세상에 구원의 방주 역활을 해야 하는데 어떤 경우는 그만 이 방주가 먼저 침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침몰을 해도 저 혼자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승객을 잔뜩 태우고 함께 가라앉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는 한다는 소리가 이 방주에 그대로 곱게 앉아 있으면 반드시 구원이 있다고 목청 높혀 주장합니다.

게다가 선장과 선원들이 하는 짓을 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지금 배는 밑창에 구멍이 뚤려 새고 있는데 밤낮으로 포도주를 부으며 철 지난 유행가처럼 복 타령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좁은 배 안에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 입고, 더 먹고, 더 갖겠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엔 그나마 의로운 선장 노아가 있었고 커다란 방주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린 정말 어찌해야 할까요. 배는 근골부터 부실하고, 술취한 선장은 탐욕스럽고, 그리고 선원들은 너무 무지합니다.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그 해답은 죽음에 있습니다. 선장이 먼저 죽을 각오를 해야 승객들이 삽니다. 지도자가 죽을 각오를 해야 나라가 삽니다. 그리고 목사가 죽을 각오를 해야 교회가 삽니다. 선장이 자기만 살려고 하고 제 젖은 돈만 챙기면 승객들은 다 죽습니다. 목사가 제 목숨과 제 것을 우선 챙기면 교인들은 다 죽습니다. 중세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였습니다. 일일이 셀 수 없이 많은 교인들을 모두 깊은 지옥으로 보냈습니다.
  
반면에 좋은 지도자 모세는 가나안을 앞에 두고 기꺼이 죽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백성을 위해 바른 말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요나도 자신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사도들도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에서, 스페인에서, 소아시아에서, 그리고 저 멀리 인도에까지 가서 기쁘게 죽었습니다. 예루살렘성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던 우리 예수님도 그 양들을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스스로 죽으셨습니다.  

이제 부활절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할 수 있을까요?

죽어야 부활합니다. 목사도, 집사도, 장로도, 권사도, 교사도, 그리고 성도 그 누구라도 죽어야만 부활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죽어야 비로소 다시 거듭나서 살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내 의로움도 죽어야 하고, 내 욕심, 내 명예, 그리고 내 자랑이 모두 죽어야 교회가 삽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을 묵상하는 이 시간이 배를 버린 선장만 탓하기 전에 십자가를 버린 한국교회가 먼저 가슴을 찟으며 회개하고 자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요나1:6)."


신성남 / <어쩔까나 한국교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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ㅉㅉㅉ 2014-08-24 17:12:31
이 자식아, 그래도 이승만 대통령이 있어서 살고 있는 나라다. 배은망덕한 자같으니라구. 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