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 라이프
핸드메이드 라이프
  • 양재영
  • 승인 2014.06.25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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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정의평화 제자학교, 차원 높은 영성의 시간
▲ 정의 평화 제자 학교 둘째 주 강의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양재영 기자

“예수님께서 지금 다시 오신다면 어떤 복장으로 이 땅을 걷고 계실까? 말쑥한 양복이나 바닷가에서 서핑하는 복장보다는 편안한 복장에 흙 묻고, 페인트 묻고, 찢어지고 낡은 옷을 입고, 어떤 격식도 체면치례도 표현하지 않는 모습으로 오셨을 것 같다.”

지난 4월 28일 개강한 비영리단체인 ReconciliAsian의 ‘화해를 향한 여정: 정의 평화 제자학교’의 둘째 주 세 번째 강사로 나선 김성환 목사(가디나 장로교회)는 예수님이 입었을 법한 편한 복장으로 ‘핸드메이드 라이프’ 라는 제목의 잔잔하지만 깊이 있는 영성의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

그가 사역하는 가디나 장로교회의 뒤뜰에 가보면 평범하지만 탄성이 나오게 하는 뭔가가 가득하다. 교인들과 함께 만든 벤치와 닭장, 텃밭 등은 아마추어 솜씨를 넘어 섰고, 교인들이 기르는 닭, 토끼, 도마뱀과 토마토, 딸기 등을 심은 텃밭은 거친 도시 한가운데서 따뜻한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작년에 멕시코 단기선교를 갔다 왔는데 현지 선교사께서 ‘만들어 주신 벤치 잘 쓰고 있습니다’ 라는 이메일을 보내주셨어요. 제가 전한 수요 예배 말씀보단 버려진 나무로 만들어준 나무벤치 하나가 현지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 ReconciliAsian의 허현 목사와 김성환 목사가 교인과 김목사가 직접 만든 텃밭 벤치에서 함께하고 있다. ⓒ 양재영 기자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아버진 골프공으로 낚시 추를 만든다든지 색종이로 개구리를 만들어서 뒤꽁무니에 입김을 넣으면 부풀어 오르는 신기한 솜씨를 보여주곤 했다. 어른이 된 그도 아버지를 따라 늘 뭔가를 만들고 있었고, 어느 순간엔 자신이 목사인지 목수인지 구분을 못할 때도 있다고 한다.

"예수님은 분명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겁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비유를 보면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일상의 삶에 대한 놀라운 관찰력을 보여주시죠. 자신이 아버지처럼 노동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일하는 시간이나 그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었죠. 예수님의 평상시의 삶은 주변자연과 인생을 관찰하고 숙고하면서 쌓이고 묻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인 하나님, 추상적인 교회

그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너무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신앙을 붙잡고 있는 것은 도그마틱한 신앙 즉, 새벽기도 나오고 통성기도하고 말씀과 교회봉사 등의 ‘신앙생활’은 잘하지만, 실제적인 삶 속에서 신앙의 모습을 찾아가는 ‘생활신앙’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신앙과 생활의 괴리감 속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의 난소에서 처음 세포분열을 일으키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일종의 전율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보여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만질 수 없는 것에서 만져볼 수 있는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싶은 마음이 마리아의 자궁 속에서 세포분열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추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만져지고, 들리시고, 느낄 수 있는 분으로 다가오시길 원하신다. 그러나 목사는 뜬구름 잡는 직업이며, 설교도 추상적일 수록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막연해야 하고, 뭔가 잡히지 않아야 하고 신비로움을 추구해야 교인들의 ‘아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구체적이면 외면 받는게 목회입니다. 믿음과 신앙은 추상적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목회자로 산다는 것이 갈증이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 정신으로 하려면 손을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들었죠.”

치료의 손, 평화의 손

그는 만일 손으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목회를 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목회는 정신노동이기에 육체노동 즉 ‘핸드메이드 라이프’의 보완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저희 교회 서쪽 벽에 있는 나무를 잘라서 십자가를 만들었죠.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모습을 철사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예수님의 손이었어요. 손끝에서 뭔가 예수님의 간절함을 표현하고 싶었죠.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은 목수이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 에 대해 늘 생각해 보았죠.”

▲ 김성환 목사가 자신이 만든 십자가를 들어 보이며 ‘손’을 강조하며 설명하고 있다. ⓒ 양재영 기자

C.S. 루이스의 소설 ‘나니아의 연대기’에 보면 지나가는 발자국마다 꽃을 피우는 아슬란이 등장한다. 그가 숲속을 걸어가는 발자국 마다 생명의 꽃이 피듯이, 예수님의 손자취가 있는 곳마다 생명의 꽃이 피었다. 앉은뱅이, 나병환자, 혈루증 환자 등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피어났다.

“그래서 사단은 예수님의 손을 못 박은 것이죠. 손을 고정시키고 싶었겠죠. 목수의 손, 치료의 손, 평화의 손을 막고 싶었을 겁니다.”

그는 북한에 다섯 번 다녀왔다. 세 번 째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 지원단체인 선양하나의 선교사님이 세운 나진선봉 신발공장과 고아원을 들릴 기회가 있었다.

“북한에 세 번째 갔을 때 한 고아원을 들렸습니다. 10월이었는데 너무 낡은 신발을 신고 있는 걸 봤죠. 겨울이면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데 낡고 떨어진 신발로 추운 겨울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며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는 현지 신발공장에서 10달러면 한 켤레의 신발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작년 6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LA 까지 6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종주하며 8,500 달러의 후원금을 모았다. 약 700켤레의 신발을 고아원에 기증할 수 있었다.

“신앙은 지, 정, 의의 신앙인데, 너무 지적으로, 정적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 생각해야 합니다. 지는 머리, 정은 가슴, 의지는 손끝으로는 나오는 것인데,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하고 가슴으로 느끼기만 하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죠. 손끝이 움직임으로 비로서 신앙은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손을 펼쳐 보이며 힘차게 이야기 한다.

“얼굴은 성형을 할 수 있지만 손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손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루우의 정신이 살아있는 월든 호수. ⓒ 양재영 기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유명해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150여 년 전 월든 호숫가에서 손수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삶을 살면서 남긴 유명한 시의 한 대목은 그가 꿈꾸는 목회와 삶을 보여준다.

“나는 숲으로 갔다.
인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였다.
나는 인생의 참 맛을 마음 속 깊이,
그리고 끝까지 맛보며 살고 싶다.”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anted to live deliberately.
I wanted to live deep and suck out
All the marrow of life!”

양재영 기자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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