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중심 교회와 기독교 무당들
목사 중심 교회와 기독교 무당들
  • 신성남
  • 승인 2014.05.04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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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목사는 머슴이다

   
 
  ▲ 신성남 ⓒ <미주뉴스앤조이>  
 
개신교의 목사는 교회의 교사 역활을 하는 매우 중요한 직분입니다. 따라서 신실한 목회자들은 언제나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습니다.

반면에 기독교 단체나 교단에 상습적으로 기생하며 교회의 단물을 빠는 일부 정치 목사들은 그런 헌신을 전혀 모릅니다. 이들은 직분을 감투로 만들고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소위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교단 선거에서 돈과 뇌물을 주고 받을 정도로 타락한 교회는 아마 전세계에서 한국교회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와 권력을 추구하며 최고경영자 행세를 하는 일부 귀족 목사들 또한 발암물질만큼이나 위험한 존재들입니다. 개척교회에서는 머슴처럼 행동하던 사람들이 교회가 좀 성장하여 중형 교회가 되면 정승 행세를 하고, 어쩌다 대형 교회라도 되면 아예 제왕처럼 군림하기도 합니다.

설교할 때 보면 매우 경건한 목사인데, 강단만 내려 오면 독사로 바뀌는 인사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는 돈 주고 폭력 용역들을 동원하여 교회당 안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교인들을 쇠파이프로 치며 몰아내고 있습니다. 자기 교인들을 무더기로 세상 법정에 고소한 다른 목사는 오늘도 높은 강단에서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자"며 애절한 목소리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입으론 늘 경건을 노래하나 행위로는 목회자의 본분을 크게 벗어나 신도들 위에 서서 지배하고 누리는 것을 대단히 성공한 목회로 착각하는 불쌍한 인생들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감투가 아니다

그래서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목사직이 감투이며 권력인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억대의 연봉에 추가로 아파트, 고급차, 판공비, 목회비, 도서비, 주거관리비, 유류비, 의료비, 그리고 때로는 자녀 해외 유학비까지 깔끔하게 챙겨 주니 사실 웬만한 고위직 관리보다 훨씬 더 대우가 좋습니다. 어느 목사의 연수입은 대통령보다 많아서 무려 2억 6천만 원이나 되는 것이 도대체 가당키나 할까요. 개신교는 지금 초기 심장 마비 증세보다 더 무서운 '양심 마비'가 확산하고 있지만 그 증상조차 제대로 자각 못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목사직은 신약 성경에 언급된 '가르치는 장로'의 직분입니다. 그 주요 직무가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한국교회 상당수의 목사들은 자신을 구약의 제사장으로 착각하며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 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자녀들을 섬기는 착한 머슴 되라고 중직을 맡겼더니 기껏 엉뚱한 복 타령하며 신도들을 오도하는 선무당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교와 교육은 물론, 재정, 인사, 관리, 그리고 교회 운영까지 모두 목사가 나서서 월권을 합니다. 

도대체 누가 어떤 근거로 오늘날 목사에게 이처럼 과도하게 교권을 독점케 하는 권력을 주었는지 정말 큰 의문입니다. 가톨릭 사제들에게 창피할 만큼 너무 교권지향적인 개신교 목사들을 보면서 이럴려면 종교개혁은 뭐 때문에 했나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장로교와 감리교의 창시자인 칼뱅과 웨슬리조차 기절초풍할 지경입니다. 신학만 개혁하면 뭐합니까. 사역은 더욱 타락했는데요.

일부 목사들은 아예 의도적으로 '무능한 장로'들을 골라 세웁니다. 경건하고 실력있는 사람보다는 다소 성경에 어둡지만 돈 잘 바치고 순종 잘하는 사람을 함부로 세웁니다. 그래야 아멘을 열창하는 어용 당회를 쉽게 구성할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 소요리문답이나 기본 교리도 모르는 사람을 장로로 세우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한국교회 부패 구조의 기반에는 이런 무능하고 무지한 당회와 장로들이 있다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최근 어느 토론을 보니 아직도 목사의 우월적 '성직권'을 주장하는 인사가 있어서 매우 놀랐습니다. 모든 신자가 성직자인 개신교에 무슨 별도의 특별한 성직권이 따로 있다고 그런 중세 사제같은 궤변을 토하는지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이런 미신적인 특권 의식은 교회를 중병에 들게 하는 요인입니다. 동석했던 한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 역시 사실상 교회 장부 공개를 더욱 어렵게 해 놓고선, 재정의 '투명성'을 강화했다는 기만을 늘어 놓고 있더군요.

이런 사실은 요즘 일부 목사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잘 보여줍니다. 소위 목사란 위인들이 성경대로 더 낮아지고 더욱 겸손히 섬길 생각은 별로 안 하고 틈만 나면 더 높아지고, 더 먹고, 더 소유하려 궁리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 문제의 핵심입니다.  

어떤 교단들의 헌법을 보면 목사가 '제왕적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온갖 교묘한 장치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심지어 목사가 무슨 부도덕한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도 개교회가 스스로 치리할 수 없게 만든 곳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목사가 노회 소속이므로 그 임면을 노회가 결정한다는 논리이지요. 하지만 그 노회마저 함께 타락한 경우가 많아 피해를 당한 교인들은 아예 속수무책입니다. 습관적으로 성추행을 즐긴 어느 유명 목사를 몇 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도 치리하지 못 하고 있는 한 노회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래서 누가 봐도 도적이 분명한 비리 목사들이 저런 교권주의적 집단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당당히 목회를 계속하고 기독교를 욕되게 해도 교회는 제대로 응징을 못 하고 있습니다.

목사 중심 제도는 중세적 발상

십여 년 전 수도권 어느 신도시의 한 작은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찬양 집회가 끝날 무렵 담임목사님이 나서서 모든 교인들에게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지갑을 들고 한 줄로 서서 강단 앞으로 다 나오라고 하더랍니다. 그 다음은 자기 지갑을 통채로 다 털어서 모두 헌금통에 넣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번에 아주 큰 복을 주실 것이라고 공언하셨습니다. 순진한 교인들은 굳은 얼굴로 순종하였고, 그리고 그 교회는 5년 뒤에 결국 간판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물론 하나의 단편적 사례이기는 하지만 한국교회 일부 목사님들이 교인들을 얼마나 만만하게 보고 독선적으로 목회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일화입니다. 다른 집회들에서도 목사가 장로나 집사들에게 수백만 원 또는 수천만 원씩 헌금을 지정하여 강요하는 풍경도 더러 보지 않습니까.

게다가 어느 보수 교단 신학교 교수 출신 목사가 환상 중에 천국과 지옥을 직접 가서 보았다고 제 맘대로 떠들며 돌아다녀도 아무도 제어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조차 조심스럽게 봉인했던 천국 체험이건만, 아마 조금 더 지나면 개나 소나 다 천국 관광했다고 떠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간증을 듣고 은혜받았다고 기뻐하는 군상들이 더 많습니다. 이게 바로 기독교 진리를 온통 무당 종교로 만들고 있는 일부 교회들의 현주소를 말해 줍니다. 개혁주의 신학교 교수라는 분이 저 모양이니 그에게 배운 졸업생들은 또 오죽할까요. 만일 공교회가 목사들을 적절히 관리하고 규제하지 않으면 이와 유사한 일들이 얼마든지 빈발할 수 있습니다.

목사에게 '초월적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여러 교단의 현행 담임목사 제도는 결코 성경의 원리를 따른 것이라고 보기엔 큰 억지가 있슴을 알아야 합니다. 좀 더 정확히 평하자면 거짓된 교권주의자들이 자의적으로 발전시켜 온 매우 고약하고 독재적인 제도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떤 교단 헌법들은 장로나 집사를 목사 아래에서 '보좌'하는 보조 역할로 크게 격하하거나 비하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사실 매우 비기독교적인 규정입니다.

도대체 성경 어디에 목사가 교회의 우두머리이거나 영구직 당회장이라는 규정이 있습니까. 과연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 중에서 어느 직분이 더 당회장에 적합할까요? 목사는 제사장, 선지자, 사도, 또는 사제가 결코 아닙니다. 물론 교주나 교황은 더욱 아닙니다. 또한 장로나 집사보다 특별히 우월하거나 더 높은 직분도 아닙니다. 그런데 일부 변절한 목사들은 사도보다 더 큰 대접을 받으려 하고 사제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만일 누구라도 정직하게 성경을 읽는다면, 가르치는 직분의 목사는 다른 동역자인 다스리는 장로나 집사와 마찬가지로 평등한 직분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목사직은 교사처럼 그저 교회의 여러 직분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결코 당연직 당회장 직분이 아닙니다. 사도들조차 가르치는 사역만 분담하여 집중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치 목사만이 별도의 우월적 성직권이 있는 듯 '특권'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무식한 정도를 넘어서 매우 후안무치한 행위입니다. 목사는 함부로 나서서 당회를 흔들고,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재정을 주무르고, 교회 운영과 관리에 직접적으로 간섭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목사님들은 말로만 성경대로 살자고 설교하지 말고, 자신들부터 먼저 성경의 가르침을 겸손히 따르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공교회를 온통 목사 중심 구조로 기형화한 후 동네 무당처럼 홀로 춤추어서야 되겠습니까. 요즘 일부 목사님들이야말로 정말 하나님 말씀을 가장 지키지 않고 사는 부류들이 아닌가요.

사실 이런 '기독교 무당'의 원조는 중세 교회 사제들입니다. 그들은 거룩한 교회의 교권을 독점하여 '성직자 중심 교회'로 만들어 놓고 온갖 비리를 자행하였습니다. 성직자라는 자들이 대부분 진리에는 어둡고 재리에만 눈이 밝았습니다. 그리고 우민화한 신도들은 그저 돈만 바치고 아무런 역활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물론 수도원이나 수녀원마저 극심하게 타락하여 유아들의 사체가 몰래 매장되어도 적어도 겉으론 아주 평온했습니다. 요즘 일부 목사님들이 교인들의 방관과 침묵을 매우 좋아하는 이유와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 한국의 목사처럼 과도한 권력을 쥔 가증한 교권 제도가 정말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회도 목사가 주관하고, 제직회도 목사가 주관하고, 그리고 공동의회도 모두 목사가 주관합니다. 쉽게 말해서 통반장을 모두 목사 혼자 합니다. 그러니 담임목사가 맘만 먹으면 특정 교인들의 발언권과 의견을 얼마든지 묵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만 교권 분립이지 실제로는 담임목사가 입법권, 사법권, 그리고 행정권에 모두 간섭하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젠 그 정도가 너무 심하여 한국교회를 거의 말아먹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집사의 자격이 그 엄격함에 있어 목사(장로)의 자격보다 결코 허술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목사, 장로, 그리고 집사는 모두 대등한 직분이며 그 사역에 있어서 서로 종속적인 것이 아니라 도리어 협력적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제라도 교회 정관을 바르게 설정하여 교회 운영은 '목사 중심'이 아니라 '성도 중심'이 되어야 옳다는 것입니다.

머슴으로도 쓸 수 없는 자들

아울러 목사를 포함한 교회의 모든 사역자들은 다 머슴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로는 종이라고 하면서 어떤 목회자들은 왜 자꾸 상전 노릇을 하려 하십니까. 목사는 종의 직분으로 안수를 받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요즘 여러 교회에는 종놈들은 별로 없고 웬 종님들이 이리 많은지요. 진짜 목사님들은 고난을 받으며 목회하는데 반해, 이 가짜들은 마냥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짜 목사들 때문에 진짜 목사들이 밀려나고, 가짜 복음 때문에 진짜 복음이 가리워지고, 그리고 가짜 교회들 때문에 진짜 교회들까지 함께 매도당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뉴스가 온통 배도한 머슴들의 비리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상한 시기입니다. 목사는 사도들처럼 '만물의 찌꺼기'로 여김을 받을 정도로 겸손히 사역해야 옳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러니 한국교회의 종들은 높은 자리를 탐하며 그 어줍지 않은 선지자, 제사장, 사제, 또는 사도의 행세를 삼가하고 진정으로 양들을 섬기는 머슴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자신의 아들에게 어떤 한 인물을 지적하여 "저 놈은 머슴으로도 쓰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크게 실소한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정말 머슴으로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될 피곤한 인생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날 어떤 교회들을 보면 그 생각이 더욱 절실합니다.  

지금 교회가 각종 부패와 비리로 고통을 받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는 머슴들이 제 주제를 망각하고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종이란 자들이 그 본분을 잊고 오히려 주인의 자녀들을 종삼으려 하니 교회가 어지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종이 방자하면 그 집안은 이미 망한 집안입니다.

누가 감히 주님의 교회에서 직분을 계급화하여 감투로 만들고 세속적 부와 권세를 누리며 군림하라고 했던가요. 양심있는 목사라면 사도들처럼 오로지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옳지, 왜 장로나 집사 등 다른 직분들의 고유한 사역까지 날치기하여 다스리고 관리하는 일에 한눈을 팔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 가르치는 직분의 목사가 구태여 교회 재정 장부 숨기기에 앞장서야 하는지 그 깊은 사연을 좀 속 시원히 설명을 해보시라는 말입니다.

사랑은 증오를 이깁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진리 안에서만 온전해지는 법입니다. 진리를 벗어난 관용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공교회가 바른 치리를 시급히 회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머슴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슴도 진실해야만 비로소 쓸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머슴 정신을 버리고 목사 중심 교회를 만들어 패권화하면 결국은 타락한 중세 사제들처럼 기독교 무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제사엔 관심 없고 젯밥에만 탐익하며 무당질하는 이 배역한 머슴들을 엄중히 치리해야 마땅합니다. 거룩한 공교회가 돈과 권력에 신접한 무당들의 푸닥거리 굿판이 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이제 한국 개신교는 구약 교회나 중세 교회처럼 특정 성직자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성도 중심' 교회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입으론 '말씀 중심'이라고 선전하면서 실제로는 '건물 중심', '헌금 중심', 그리고 '목사 중심'의 교회로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장로는 다스리고, 목사는 가르치고, 그리고 집사는 구제하는 일을 분담하여 서로 평등하게 사역하는 교회가 바른 교회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인하여 모든 성도들이 이미 다 왕같은 제사장 신분의 진정한 성직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찌니라(출22:18)."

신성남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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