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이 미개하다
목사들이 미개하다
  • 신성남
  • 승인 2014.05.25 2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왜 잠만 자는가

   
 
  ▲ 신성남 ⓒ <미주뉴스앤조이>  
 
최근 한 정치인의 아들이 "국민이 미개하다"라는 말을 뱉었다가 크게 혼줄이 났습니다. 아마 세월호 사건 때문에 정부의 미천한 역량이 그대로 노출되고 이로 인해 너무 소란한 것이 불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마치 소 팔고 논 팔아 기껏 키워놓았더니 부모에게 무식하다고 대드는 배은망덕한 자식을 보는 심정입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과거에 하도 '미개한 정치인'들의 막말을 자주 들어왔기에 이제 웬만한 헛소리에는 어느 정도 단단히 면역이 된 상태입니다. 

미개한 정치인과 더 미개한 종교인

그런데 미개한 정치인보다 더 한심한 부류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선거철만 되면 정치 권력에 꼬리를 치는 일부 '미개한 종교인'들입니다. "국민이 미개하다"는 막말을 애써 두둔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목사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싹수의 목사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가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또한 정부에 명확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들의 정당한 움직임을 좌파와 빨갱이의 선동이라고 매도하는 맹랑한 목사도 있습니다. 게다가 걸핏하면 선량한 국민을 '종북'이라고 뒤집어 쒸우는 더 발칙한 목사들도 있습니다.

사실 그냥 개인적인 사석이라면 아첨을 하든 육갑을 떨든 별로 크게 관여하고 싶지도 않지만, 하필이면 교회 모임이나 공석에서 하니 그게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신학교에서는 뭘 배우길래 하나님 말씀을 나누는 교회에서 목사 개인의 정치적 잡견을 선포하는 것일까요. 성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등 배울 것 다 잘 배우고 나와 막상 목회 현장에서는 영 엉뚱한 짓을 하기 때문에 묻는 것입니다.

자유민주 사회에서 교인들은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지닐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부부 또는 형제 사이에도 서로 다를 수 있는 것이 정치관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자신의 허접한 사견을 신도들에게 함부로 주입해도 되는 것입니까. 이는 귀중한 공적 시간을 사유화하여 교인들을 정치적으로 선동하는 무식한 행동이며 동시에 회중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게다가 그 잡견의 내용을 보면 더욱 비참합니다. 그나마 정의를 추구하려는 마음은 모기 눈꼽 만큼도 보기 힘들고 대부분이 권력지향적입니다. 특히 기득권 세력에 무조건 아부합니다. 하여튼 구약 이스라엘 신정국가 수립 이후 역사적으로 소위 성직자라는 자들이 '권력'보다 '정의'의 편에 바로 선 적이 과연 몇번이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이들은 이세벨의 상에서 먹던 바알 제사장들처럼 언제나 권력의 시녀가 되어 백성을 그른 길로 인도하고 도리어 바른 말하는 선지자를 핍박하지 않았습니까. 엘리야를 핍박하고, 이사야를 죽이고, 예레미야를 조롱하고, 세례요한을 따돌리고, 사도들을 때리고,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이 과연 누구입니까.   
   
그 뿐만이 아닙니다. 중세에 와서도 종교지도자란 자들이 고작 한 짓이란 그저 성경을 빼앗아 신도들을 모두 '영적 소작인'으로 만들고, 귀족들과 합세하여 영육으로 착취하며 부귀와 영화를 누린 것 뿐입니다.

침묵을 좋아하는 자들

과연 지금은 또 어떻습니까. 물론 다행히 진실하신 종들도 많이 있습니다. 거룩한 직분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고 바른 사역을 위해 겸손히 수고하며 희생하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목사님들은 노후 대책조차 막연해도 그저 주님만 바라보며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반면에 아직도 중세적 야망을 꿈꾸며 헛된 일에 몰두하는 정신 나간 목사들 또한 너무 많지 않은지요. 기회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큰 건물 세우고, 큰 무리 모아서, 큰 세력 만들고, 큰 권력 누리려 하는 자들 말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이룬 과업을 어떻게 남을 줍니까. 자식에게 주어야지요. 아들이 없으면 사위에게라도 물려줍니다. 

이들은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 돈 잘 바치라고 합니다. 성수주일하라고 합니다. 교회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의 가르침에 아멘으로 순종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주 큰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얼핏 들으면 딱히 틀린 말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입니다. 교회 정관을 무시하거나 개정하여 목사 권력 강화합니다. 당회를 물갈이하여 사병화합니다. 교회 직분을 계급화하여 동역하는 부목사들과 제직들을 부하처럼 부립니다. 그래서 신도 위에 군림하는 데에는 아주 귀신이지만 교인을 섬기는 일에는 거의 등신입니다. 빚 내서 건물 키우는 일에는 신명을 다하지만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말씀은 죽어라 안 지킵니다. 그리고 율법의 십일조를 반강제 의무화하여 비정규직 교우들 등골을 뺍니다. 건축헌금도 한 구좌를 최소 이삼백만 원으로 정하고 가난한 교인마저 도저히 피할 수 없게 강요합니다. 그래서 서민들이 사는 가난한 동네에도 교회당만은 호화판 아방궁입니다. 결국은 교회 장부 숨기며 교회돈을 물쓰듯 퍼갑니다. 그리고는 하늘 아래 이보다 더 멋진 직업이 어디 있냐고 당회장실에서 혼자 입가리고 웃습니다.
 
그래서 여러 형제들 나란히 대형 교회 만들어 호의호식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고, 신도들의 피같은 헌금으로 뇌물을 뿌리며 교단 정치하여 노회장, 총회장, 그리고 기독교 단체장하며 우쭐하는 군상들도 많습니다. 그리고는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남 잘되는 것 보면 꼭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하는 소인배들이 있다"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비난합니다. 이러니 한국교회 일부 목사들이 얼마나 미개합니까. 식인종보다 더 미개합니다. 적어도 식인종은 영혼을 죽이지는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부패한 정치인들과 거짓 목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양들의 침묵'입니다. 그저 주는 대로 먹고 군소리 말고 조용히 입다물고 살라는 것입니다. 온갖 비리와 부정과 악행은 자신들이 다 저질러 놓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느냐?"며 신도들은 오로지 기도하고 회개하고 자숙하고 침묵하라고 설교합니다. 하지만 자기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죄 없는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의 선지자들은 정말 죄가 없어 그토록 소리쳤을까요. 그리고 목사님들은 죄가 없어서 매주 그리 당당하게 설교하고 있습니까. 선지자들 역시 우리처럼 죄가 많은 인생이지만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알리기 위해 소리친 것 아닙니까. 그럼 당연히 사람이 소리쳐야지 누가 소리칩니까. 길바닥 돌이 소리치거나 아니면 하늘에서 천사가 직접 내려와 소리치기를 기다려야 하나요. 명백한 불의가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도 언제나 "죄인들은 먼저 자숙하고 침묵하라"는 획일적 논리는 옆집에 불이 나서 타고 있는데 의인만 와서 불끄라는 말과 무엇이 다릅니까.

왜 잠만 자는가

요즘 소위 건강하다는 어떤 교단의 상당수 목사님들을 보면 모두 잘하고 있는데 한가지가 유독 부족합니다. 다른 교회들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기 교회 울타리 안에서 거룩한 사역에 몰두하며 다른 교인들이 통채로 맹신도가 되든 다른 목사들이 단체로 선무당이 되든 그냥 못 본 척 눈감고 있습니다.

이 거룩하신 목사님들은 개혁이니 뭐니 이런 건방진 소리 하기 전에 우선 "자신이 먼저 바로 서야 한다"고 역설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나 다른 사람의 죄에 함부로 나서지 말고 "너나 잘하라"고 핀잔을 주십니다. 따라서 '아직 바로 서지 못한 사람들'은 교회 개혁 근처에도 못 가게 하고 물론 자신들도 결코 안 갑니다. 만일 이래도 개혁 운운하며 감히 나서는 자가 있다면 교단에서 합심하여 기여코 그를 왕따시킵니다.

또한 이분들은 적당히 경건하고 적당히 충성하는 것을 절대 못 참으십니다. 한눈팔지 말고 오직 전심으로 기도와 회개와 경건과 헌신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항상 그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에 너무 바쁘시다 보니, 많은 경우 이웃 교회들이 불타고 있어도 그냥 묵묵히 매연만 들이키고 계십니다. 그래도 한가지 참으로 신기하고 대견한 점은 그렇게 분주하셔도 적당히 교회당 늘려, 적당히 듣기 좋은 설교하고, 적당히 존경받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연봉받고, 그리고 적당히 노후대책 마련하는 일은 비교적 철저하게 잘 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히틀러 폭정에 항거하다 순교한 본회퍼 목사가 3년간 참혹한 나치의 감옥 속에 있으면서 남긴 <옥중서간>엔 이런 글이 있다고 합니다. "내가 고통을 당하는 것, 내가 매 맞는 것, 내가 죽는 것, 이것이 그리 심한 고통은 아니다. 나를 참으로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동안 '밖이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더니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의 방주가 기울어 이미 침수하고 있는데도 많은 교회들이 너무 조용합니다. 편안히 잠만 자고 있습니다. 단지 극소수의 형제들만이 따돌림을 당하며 그 차거운 물을 조금이라도 막아 보겠다고 외롭게 분투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월호가 준 뼈아픈 교훈은 배가 이미 기울어 침수하려 할 때는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책임한 선장을 믿어서도 안 되고 무능한 선원들을 마냥 기다려도 안 됩니다. 그 자리에 있으라는 거짓된 안내 방송을 믿고 따르면 더욱 안 됩니다.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다 죽습니다. 침묵하면 침몰합니다. 그럴 때는 모두 나가자고 소리쳐야 옳은 것입니다. 그래야 함께 살 희망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침묵해야 할 때도 있지만, 절대로 침묵해선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정의'와 '불의' 사이에 중립의 자리란 결단코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신약시대에는 모든 성도들이 다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예' 또는 '아니요'를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따라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는 이 어두운 시대에 침묵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정말 침묵해야 할 자입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근자에 발표한 '2014년도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2013년의 50위에서 57위로 하락했습니다. 2004년 26위로 '언론자유국'이던 한국은 지난 이명박 정부부터 곤두박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현재 한국은 언론자유국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미개한 등급은 남아프리카, 세르비아, 몽골, 말리 등입니다. 도대체 어떤 무리들이 국민의 눈을 가리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인지요.

그래서 지도자 복이 지지리도 없는 우리 국민이 미개한 것이 아닙니다. 착한 국민을 오도하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이 미개하고, 순진한 신도들을 미혹하는 일부 종교인들이 너무 미개한 것이 실제 문제의 본질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사실을 왜곡 또는 은폐하고 평안하다고 거짓말합니다. 교회는 물론 우리의 가정들이 무너지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배가 침몰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리고 온 나라에 불의한 매연이 자욱해도 그저 입다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천 년 전 로마제국의 압제하에 고통받던 작은 나라 유대 땅에도 지금처럼 열심히 침묵을 요구하던 사특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당시 종교와 정치의 실세 지도자로 기득권의 배를 불리던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19:40)."  

신성남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