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건물은 ‘성전’이 아닌 ‘빌딩’일 뿐
교회 건물은 ‘성전’이 아닌 ‘빌딩’일 뿐
  • 양재영
  • 승인 2014.08.28 13:02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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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베렌도한인침례교회, OC제일장로교회 건축에 대한 우려
▲ 베렌도한인침례교회 신축 건물(상)과 오렌지카운티제일장로교회 비전센터(하) © 뉴스 M

베렌도한인침례교회(박성근 목사, 이하 베렌도교회)가 2천석 규모의 예배당 건축을 진행 중인 가운데, 오렌지카운티제일장로교회(엄영민 목사, 이하 제일장로교회)도 2층 규모의 비전센터 건축을 추진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베렌도교회는 주차장 문제를, 제일장로교회는 교육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건축이다. 두 교회 모두 위의 문제로 오랜 시간 고민해오다 내린 결정이라며 건축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또한 건축 비용의 상당 부분이 교인들의 건축헌금과 교회 예산으로 충당되기에 대출과 이에 따른 이자 부담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개 교회 필요에 따른 교회 건축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시비거리로 삼고 싶진 않다. 다만 한국 사랑의 교회 호화 교회 건축 문제로 한국이 떠들썩했던 점이나 지난 2008년 남가주 내 경쟁적으로2천 석이 넘는 대형교회 건축으로 야기된 논란을 생각한다면 남가주 지역의 예배당 또는 비전센터 건축은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라는 지적이 많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8년 남가주에선 나성열린문교회, 은혜한인교회, 벧엘한인교회 등이 경쟁적으로 교회나 예배당 건축을 진행했었다. 당시 나성열린문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2천 석이 넘는 현대식 돔 건물을 설계했고, 은혜한인교회는 2천 5백석 예배당에 24시간 전세계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에 최첨단 장비를 설치했으며, 벧엘한인교회 손인식 목사는  “진정한 하나님의 예배성소를 건축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벧엘한인교회 건축은 ‘성전’ 건축임을 강조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열린문교회는 ‘지역사회 공헌’은 시작도 못한 채 사채까지 끌어 쓰다 브라질 교회에 넘어갔으며, 은혜한인교회나 벧엘한인교회는 1 주일에 한 두 번의 예배 외엔 늘 텅 비어있는 거룩한(?) 곳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24시간 전 세계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왜 최첨단 장비가 필요한지, ‘진정한 하나님의 예배 성소’가 벧엘한인교회 안에 있기는 한지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교회는 건물일 뿐, 성전은 없다” 

지난 베렌도한인침례교회 박성근 목사는 “자꾸 교인들이 성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사실 신약시대에 무슨 성전이 있나. 예수님이 성전이고, 교인들이 성전인데. 솔직히 빌딩을 짓는 것이다”라며 교회 앞 부지에 2천만불 규모의 새 교회건축을 ‘성전 건축’이 아닌 단순한 ‘빌딩 건축’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몸이 성전이다’(고전 3:16, 고후 6:16)는 말씀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성전에 대한 핵심적 구절이다. 이 말씀을 기초한다면,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 ‘솔로몬의 성전’ 등의 온갖 미사어구를 갖다 붙이며 교회 건축을 미화한다 해도 결국은 빌딩을 짓는 것일 뿐임을 알 수 있다.

교회 건축을 하는 모든 교회들은 교회건축을 위해 한정된 재정을 사용하다 보니 교회의 다른 사역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문제점에 직면하게 된다. 빚 갚는데 교회 헌금의 절대액을 지출함으로 실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돈이 없어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되곤 한다.

이로 인해 무리한 대출과 재정적 어려움에 따른 교회 건물 경매 문제는 이미 한국 교회 안에 보편적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3년 간 교회 경매 건에 대한 조사를 보면 매년 3백 개가 넘는 교회가 경매로 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 경매 매물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교회 건축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대형교회 건축은 지역 내 다른 교회들에게 심각한 위화감과 함께 극심한 양극화를 일으킨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 사랑의 교회가 2호선 서초역에 건축된다는 소식을 듣고 ‘2호선 주변 교회는 다 죽었다’는 농담이 돌았던 것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 벧엘한인교회 © 뉴스 M

“대형교회 추구는 신자본주의의 결과”

교회문제 연구가인 이은영씨는 ‘신자유주의와 1990년대 이후 한국 대형교회의 변화’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 일부 대형교회들은 교회 성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사회 변화에 영향을 받아, 무한 성장과 팽창을 시도하는 기업 운영과 유사하게 변화하여 왔다”라며, “교회가 철저한 소비자 중심의 마케팅을 도입함으로 온누리교회와 같은 교회의 브랜드와 스타 목사의 이름만 남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신자유주의에 물든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도 적극적으로 옹호하게 된다. 현 사회를 긍정하고, 사회에서 성공해 주변 사람들에게 성공의 콩고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다”라며,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패는 개인의 선택과 태도의 문제일 뿐이다. 교인들이 교회와 설교자들에게 들을 수 있는 대안은 결국 가난하지 말고 부자가 되라는 말이다”고 말하며 교회가 성공을 위한 자기 개발에 매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김동호 목사의 “예수 믿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욕심 내고 도전해야 할 것은 우리가 부자가 되고 강한 자가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사는 일이다. 할 수 있는 대로 강한 자가 되라. 높은 자가 되라. 부한 자가 되라. 뛰어난 사람이 되라. 그렇게 되기를 힘쓰라. 바울이 하나님을 위해 로마 시민권을 쓴 것처럼 부함과 강함을 주님을 위해 선용하라"는 주장은 결국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야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는 로버트 슐러나 릭 워렌 식의 시대착오적 교회 성장학의 한 지류와 맥을 같이한다.

많은 한인 교회 목회자들은 내심 새들백 교회나 윌로우 크릭, 조엘 오스틴의 레이크우드 등을 꿈꾸며 교회 건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건축에 따른 비판을 감추기 위해 ‘성전 건축’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성공을 향한 왜곡된 욕심의 발로’일 뿐이며, 극심한 사회, 경제적 양극화를 창출하는 신자본주의를 옹호하며 가난과 실패를 외면함으로 반기독교적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11세기 초엽 최초의 고딕성당을 지었던 프랑스 ‘생드니 수도원’ 원장 슈제는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지상의 어떤 건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황금과 보석 등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고 장식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영광스럽고 호화스럽게 축조하여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에 대해 동시대에 시토회 수도원 창시자로서 기독교 개혁운동에 앞장섰던 성 베르나르는 슈제가 가난하고 굶주린 자를 돌보지 않고 허식을 위해 낭비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베르나르는 건축비를 이웃에게 자선하는 것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영광을 드리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슈제의 호화 교회 건축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베렌도교회나 제일장로교회의 교회 건축에 대해 물으면 종종 ‘우리 교회 문제인데, 왜 남이 신경을 쓰느냐?’는 답변을 듣게 된다. 남의 교회가 있는 걸까? 우린 ‘교회의 네 가지 표지(標識)’ 중 하나인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양재영 기자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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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소리 2014-09-03 02:17:09
이젠 교회가 명심해야 한다. 잘 되어도 쪽박... 안 되어도 쪽박... 쪽박 차고 누구 처럼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광야의 소리 2014-09-03 02:11:10
이제 교회도 명심해야 한다... 잘 되면 대박 안되면 쪽~~~박... 아마 쪽박이 될 수 밖에 없을 걸.....

광야의 소리 2014-09-03 02:09:24
잘 되면 대박 안되면 쪽박.....

안녕하세요 2014-08-31 23:31:49
교회 건물은 그냥 건물일 뿐이라는 것은 맞습니다만,
김동호 목사님이야 말라고 그 뜻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교회 건물짓거나 사지 않고, 숭의학교 강당에서 시작해서 건물 빌려서 예배드린지 정말 오래 되셨구요. 그 건축 할 수 있는 헌금을 다 노숙자, 탈북자 재활에 쓰는 교회를 만드셨죠.
김동호목사님 설교의 중심은 우리가 세상적으로 성공해야 좋은 신앙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하셨네요. 설교를 잘 들어보세요.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교회 안에서만 잘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게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분 설교의 중심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