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고 또 기도하라"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9월 27일 오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국제기독실업인회(CBMC) 디너 파티 기조연설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 전 대통령이 행한 것은 딱히 기조연설이라기보다는 강렬하고 여운이 긴 '간증'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내로라하는 800여 명의 기독실업인들은 직전 대한민국 대통령의 기조연설을 시종 진지하게 경청했다. 연설 중간 중간 모두 11차례의 박수가 터져 나왔고, 여기저기서 '아멘' 소리가 흘러 나왔다. 마치 어떤 유명 목사가 설교를 하는 대형 부흥집회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기독실업인들의 '스타'가 된 이명박 대통령
약 40여 분 간의 '간증'이 끝나자 단 아래 여기저기서 카메라를 들고 나온 청중들이 이 전 대통령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기에 바빴다. 몰려 나온 측은 아시안들이 대부분이었으나, 나중에는 백인 청중들도 몰려 나와 촬영 대열에 동참했다. 기조연설이 끝난 이 전 대통령이 자리를 뜨자 미처 기회를 챙기지 못한 청중들은 밖에까지 쫓아 나와 사인을 받거나 기념촬영을 했다.
이 대통령이 떠난 후에 순서를 진행하던 아시아계 엔터테이너와 백인 사회자도 고개를주억거리며 "프레지던트 리의 텃칭 스토리(touching story, 감동적인 이야기)"를 재차 언급할 만큼 여운이 컸다.
기자와 같은 원탁 테이블에 앉았던 싱가포르 기업인은 상기된 얼굴로 기자에게 "디너 값 $140 받을 만하지?"라고 말을 건넸다. 피어 그룹(peer group, 동료), 또는 자신에게 소중한 이웃들(significant others)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힘나고 신나는 일인가.
이 전 대통령의 첫 도착지인 애틀랜타에서는 '국정원 대선개입 부정선거 내란범 이명박근혜를 구속하라'는 피켓 시위가 있었고, BBK 주가조작 의혹, 현대자동차와 관련한 허위 이력 기재 의혹 등에 대한 항의 시위가 있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날 행사장 분위기는 그런 '안티' 움직임이 왜소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명박 장로'의 카리스마를 4~5m 앞에서 목격한 기자가 미리 '예언' 하나 하겠다. 앞으로 이명박 장로는 CBMC의 주 강사로 자주 초대될 것이고, 특히 대박을 꿈꾸는 불신자 기업인들을 '예수쟁이'로 만들것이다.
'긍정의 신학'으로 '보금주의(保金主義)' 교회를 곳곳에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조엘 오스틴, 일찍부터 '가능성의 신학'으로 명성을 떨치며 화려한 성전을 '봉헌한' 로버트 슐러, 한국이 낳은 '삼박자 축복'의 아버지 조용기 목사만 '인물'인가. 이명박 장로는 갈수록 신자가 줄고 있다는 한국교회를 위기에서 건져낼 인물이 되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기자에게 '이명박' 하면 퍼뜩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내곡동 사저 구매 과정의 위법 혐의에 대한 비아냥이 담긴 찬송가 '내곡동 가까이', 광화문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때 쌓아올린 '명박산성', 일그러지고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용산 참사자들과 그 가족들, 환경 파괴를 부른 4대강 개발, '서울시 봉헌', 수많은 전과 기록... 더 있으나 그만 생략한다.
기자는 '순수한' 목적으로 먼 거리를 달려온 이명박 장로의 간증을 '순수한' 마음으로 듣기로 했다. 차마 감격에 겨운 '아멘!'은 하지 않았으나, 유인촌이라는 배우가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신들린 감정이입으로 연기하였듯이 자연스레 그의 간증에 호흡을 맞추었다. 딴은, 아주 오래 전 이와 비슷한 간증들에 감정을 바친 경험들이 있기에 크게 어려운 일도, 어색한 일도 아니었다.
지정 좌석을 벗어나 연단 앞에 구부려 앉아 사진을 찍던 기자는 아예 철퍼덕 바닥에 앉아 듣기로 했다. 그의 영어 연설은 박근혜 대통령 만큼이나 탁월해 보였다. '이명박근혜'라는 쌍생아적 용어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 그의 '간증'을 3인칭 어법으로 요약하여 옮겨본다. 현장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그가 강조한 영어 단어를 괄호 안에 넣었다.
어머니와 기도
이명박 소년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7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전쟁 통에 누구나 입고 먹을 것에 허덕였으나, 그의 가정은 주변 누구보다도 더 가난했다. 그 시대에 누구나 그랬듯이 그에게는 늘 '먹는 문제'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특히 형제가 많아서 그의 몫이 항상 작은 것이 불만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자식 사랑이 각별했으며, 늘 기도하는(pray) 사람이었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 때에도 늘 장남에 대한 기도가 가장 길었고, 이명박 소년 차례에서는 현저하게 쫄아들었다. 어느날 새벽, 엄마에게 '내 기도도 길게 해달라'고 투정을 부릴 만큼 그는 늘 '배고픈' 소년이었다. 어렷을 적 그는 형제들에게 시샘이 많은 야곱과 같은 존재였다.
자라면서 그를 더욱 낙심 속에 빠트린 것은, '장남 하나만 성공하면 살림이 핀다'며 자신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운명이라는 점이었다. 중학교만 겨우 마치고 돈벌이에나서기를 바라는 엄마를 찾고 또 찾아와 설득시킨 담임 선생님 덕분에 그는 야간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전액 수업료 면제 장학금을 꼭 받는다는 조건으로. 그때도 그는 늘 배고픔에 쩔쩔매야 했으며, 각종 아르바이트 잡일을 해서 입에 풀칠을 해야 했다.
어렵사리 대학교에 들어간 그는 단과대학 학생회장이 되었고, 얼마 되지않아 5.16 군사 쿠데타 세력에 의해 수배를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1960년대 초 그때는 한일협정비준 반대 데모가 극심하던 시절이었는데, 총학생회장 대리자격으로 운동권 리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체포되어 (6개월) 감옥살이를 했다. 그때 어머니가 딱 한 번 면회를 와서 하는 말이 "성경은 읽고 있냐, 기도는 매일 하고 있냐"였다.
그는 운동권 전력으로 졸업 후 취직이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어머니가 늘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인내(forbearance)와 정직(honesty)과 열심히 일하는 것(hard-working)으로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다. 현대건설은 지금의 세계적 대기업인 현대자동차의 모체가 되었고, 그는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20대 말에 이사가 되고, 30대에 사장, 40대에 회장이 되었다. 그 때도 어머니는 항상 그를 위해 기도했고, 그 또한 늘 기도에 힘썼다.
환경이 완전히 다른 정계에 발을 들여 놓은 후에도 그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서울시장을 거쳐 드디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옷을 사주고 싶어도, 좋은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이제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어머니가 세상에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제는 대신 그가 믿음의 형제 자매들(brothers & sisters)을 위해, 동료 기업인들을 위해, 국가를 위해 늘 기도한다.
여기까지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종 좌우로 고개를 움직이며 행한 간증의 대략적 내용이다. 기자는 그가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 가슴이 뭉클 울컥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감정이입에 충실했던 이유도 있었겠으나, 특히 '어머니'와 '기도'라는 단어의 절묘한 조합 탓이 컷으리라. '어머니'와 '기도'. 불교도가 되었든, 힌두교도가 되었든, 사이언톨로지(과학기술 신봉) 신도가 되었든, 심지어는 동성애를 찬성하는 기독교인이되었든지 간에 가슴 저미게 하고 아릿하게 하는 조합이 아니던가!
이 조합은 이 전 대통령이 기업가들에게 기도를 요청할 때 그 의미를 더하는 듯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그랬듯이 자녀들에게도 '인내'와 '정직'과 '열심히 일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그렇게도 미국의 청교도 전통을 잘 전수받고 전수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정직'이라….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의 연설 마무리가 매우 흥미로웠다. 개인 '간증'을 CMBC의 '기조'로 바꾸는 화술이 압권이었다. 그는 기도를 강조하다 말고 미리 준비한 듯 신약성경 야고보서에 나오는 '행동하는 믿음'을 강조했다. 여기 그가 인용한 야고보서 2장 17절을 영문 그대로 옮겨본다.
In the same way, faith by itself, if it is not accompanied by action, is dead.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그가 "is dead(죽은 것이다)"라는 귀절을 반복적으로 힘을 주어 강조하자 어김없이 '아멘!' 합창이 울려 나왔다. 그런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성공 스토리에 정신을 빼앗긴 화자도 청중도 흘려버린 단어가 있었다. '이와 같이'라는 단어였다.
'이와 같이'라는 단어에 앞서 예시된 내용들이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웃과 배고픈 형제에게 베풀라는 것'이었으니, 결국 이웃들을 섬기고 나누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is dead)란 말이 아닌가! 얼마나 명시적이고 선언적인가. 우리의 '기독교인 대통령'이 재임시 '이와 같은' 믿음을 가졌었는지, 지금도 '이와 같은' 믿음을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어쨌거나 '어머니와 기도'라는 가슴 뭉클할 사적인 영역을, 이제는 공적인 영역으로 중첩 발전시켜 '기도와 행동'이라는 조합으로 만들어 낸 아이디어가 일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말하면, '기도 열심히 하고 행동하라!' 뭐 그런 말이 되겠다.
그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말 '기도'와 '행동하는 믿음'으로 경제적 정치적 성공을 거둔 인물임에 틀림이 없을 터이다. 그의 이날 간증은 이제껏 추진하거나 취한 그 강렬한 '액션'의 뿌리를 드러낸 것이었다.
'기도'와 '액션'의 조합에 아주 잘 부합하는 유명한 분이 또 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다. 그는 이라크 침공하기 전부터 열심히 계속 기도했고, 공격을 감행하던 날 아침에도 백악관 로즈 가든을 거닐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전 대통령의 기조연설은 그 자체로 당일 참석한 실업인들에게 분명 큰 격려와 도전이 되었을 법하다. 적어도 이 어려운 시기에 '잘되는 나'와 '성공적인 기업'을 애타게 원하는 측에게는 눈에 번쩍 띄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성경을 모든 사고의 출발점과 삶의 틀로 여기고 자신을 성찰하고 시대 읽기를 힘쓰는 크리스천이라면, 그가 무슨 직업을 가졌든지 간에 이른바 존재론적 고민이 앞서야 하지 않을까? 특히 이 시대의 크리스천 기업가라면, 강자독식과 부익부 빈익빈의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폐해를 꿰뚫어 보고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그런 고민 말이다.
시대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없는, 그래서 지극히 사적인 '성공 스토리'에서 얻어지는 느낌이란, 다단계 모임에서 맨 꼭대기에 오른 '골드 멤버'의 성공 스토리를 듣고 문밖을 나서며 갖게 되는 허탈감같은 게 아닐까? 이런 사적 성공 스토리의 간증이 개인을 넘어서 그 무슨 공동체의 이익을 구한다 할지라도 기껏 이뤄내는 것은, 힘없는 자나 못 가진 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게토'가 아닐까?
사족 한마디. 번쩍인다고 모두가 금인 것은 아니다.
김명곤 기자 / <플로리다 코리아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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