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가 아니라 진정성이 문제
좌우가 아니라 진정성이 문제
  • 김기대
  • 승인 2014.10.11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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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해방신학자 홍인식 목사 인터뷰
해방신학은  가톨릭을 기반으로 해서 시작했지만 개신교에서도 해방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한국 개신교 해방신학자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홍인식 목사(멕시코 장로교 신학대학 교수)가 향린교회와 새길 교회가 주최하는’이웃 종교 사귀기’ 모임의 강사로 LA를 찾았다. 그를 만나 해방신학의 동향과 전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편집자 주>

 

홍인식 목사(멕시코 장로교 신학대학 교수) © <뉴스 M>

우리가 오래 전 장신대 신대원에서 동기로 만났는데 마주친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우리 둘 다 성실하지 못한 학생이었나 보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나는 성실했다. 김목사가 성실하지 못했나 보다(웃음). 나는 남미 이민자로 파라과이 대학을 졸업한 후 장신대 신대원에 진학했는데 신학교에서조차 학부 동문 중심, 향우회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졸업후 영락교회에서 잠시 일하다가 다시 남미로 건너가 아르헨티나 신학대학에서 미구에즈(Jose Miguez Bonino) 박사의 지도로 해방신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쿠바 등지에서 선교사로 사역했다.

한국 교회에서도 목회를 했던 것으로 아는데

2008년 현대 교회에 부임해 담임목사로 있다가 다시 남미로 돌아왔다.  신자유주의의 문제점 등을 설교에 담아 다소 불편해 하는 교인들은 있었으나 대부분 잘 호응해 주었다. 그런데 남미에서 서울에 다니러 온 옛 교인이 내 설교를 듣더니 “목사님 설교가 상당히 부드러워 졌네요”하더라. 뒤통수를 맞은 듯 했다. 나는 할 말을 다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설교단에서 자기 검열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이건 아니다 싶어 교회를 사임했다. 떠나는 나를 예의를 다해 보내주었던 현대 교회 교인들에게 아직도 감사하고 있다. 

단적으로 묻겠다. 지금도 해방신학은 유효한가. 해방신학 하면 떠오르는 좌파의 이미지는 어떻게 ‘해명’하는가

해방신학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민중이 처한 ‘억압’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나도 해방신학이 흠이 없는 신학이라고는 생각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억압받는 민중이 있는 한 해방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억압의 상태를 살아가고,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체제의 피해자가 존재하는 한 다시금 해방을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경우 오늘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데 해방신학은 현장신학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런지 LA에서 강연회를 마친 후 한국으로 가서 여러 곳에서 해방신학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다. 그만큼 관심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물론  지난번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도 해방신학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해방신학을 좌파 신학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열매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해방신학에 투신한 사람들중  누가 기독교인의 사명을 잊고 부유하게 살던가? 호화로운 삶을 영위하던가? 그렇지 않다. 민중들과 함께 호흡하고 고생하는 그들의 삶이 곧 해방신학의 정당성이다. 내가 자주 듣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목사님은 사람은 참 좋은데 어쩌다가 해방신학을 공부하게 되셨어요?”라는 말이다.  (웃음).  신학의 좌우를 따지기 전에 진정성의 문제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해방신학은 신학의 해방과 교회 권력의 해방도 가져 왔다.  그러다 보니 남미의 가톨릭 문화를 기초로 시작한 해방신학이 오히려 오순절 계통의 부흥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맞는가.  그렇다면 고생해서 남 좋은 일 시킨 것 아닌가? (웃음)

정확히 잘 지적해 주었다. 해방신학자들은 우리가 민중을 각성시키려고 노력했는데 정작 민중들은 오순절 계통의 교회로 갔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들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남미와 중미가 조금 다른데 남미의 경우 오순절 교회들이 예배는 카리스마틱하게 드리면서 사회 변혁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Universal Church of the Kingdom of God (Igreja Universal do Reino de Deus )는 서울의 순복음 교회 이상의 교세를 자랑하고 세계 곳곳에 지부를 두고 있다. 이들은 고통을 멈추라는 Stop Suffering운동을 전개하는데 여기는 영적인 해방과 사회경제적 해방의 의미가 모두 함의되어 있다. 이 교회가 브라질에서 좌파인 룰라 정부를 탄생시킬 때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오순절 교회에서도 정의(justice)를 언급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꼭 남좋은 일 시키지는 않았다.

오순절 운동이 해방신학과는 사유의 체계가 많이 다르지만 적어도 남미에서 민중이 주체가 된 최초의 운동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민중신학으로 말하면 개개인이 모두 계시의 담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사제나 신학 엘리트 중심의 1세대 해방신학에 자극을 준 것만도 큰 공헌이다.

그래서 나는 신학생들에게 해방신학의 언어를 설교단으로 가져가라고 가르친다. 연구실에 머무는 신학이 아니라 교회 전통에서 청중들에게 수용될 수 있는, 즉 민중의 언어로 말해지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1세대 해방신학자들의 근황을 말해달라.

한국에서 최초의 해방신학 번역서였던  <해방신학>의 저자인 구티에레즈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이후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청과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하면서 “나는 참호는 바꾸지만 전쟁은 계속한다”는 말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는 방향을 약간 선회해 생태운동을 하고 있다.

한국의 장신대생 12명이 나와 함께 2주간 해방신학을 공부하러 온적이 있는데, 이들과 함께 현장 학습 차원에서 레오나르도 보프를 만나려고 했으나 만나는 과정이 관료화 되어 있어서 살짝 당황했다. 결국 만나지 못했다. 보프의 형인 클로도비스 보프는 신학에 맑시즘을 적용시킨 것으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해방신학과 담을 쌓은 상태다.

1세대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방운동은 정치적 차원에서 시민사회와 민중운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정치·경제적 측면을 뛰어 넘어  원주민 해방운동, 여성 해방운동, 어린이 해방운동, 흑인 해방운동, 토착문화 운동과 결합하는 형태의 신학운동도 나타나고 있다. 해방신학은 오늘날의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다시 거론되고 있으며  개신교권에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희망적이다.

오랜 시간 감사했다. 앞으로 볼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참고로 이웃 종교 사귀기 모임에서 홍인식 목사의 강연일정은 다음과 같다.

▲ 10월10~11일 오후 7시  홍인식 박사의 ‘남쪽에서 불어오는 새로운 성령바람 1’(향린교회)

 ▲12일 오후 3시 새길교회 홍인식 박사의 ‘남쪽에서 불어오는 새로운 성령바람 2’ (새길교회)

강연 장소와  문의

향린교회 1130 Ruberta Ave. Glendale, (818)265-3046

새길교회 221 S. 6th St. Burbank, (818)903-4455

대담 정리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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