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장사와 종교 상인들
종교 장사와 종교 상인들
  • 신성남
  • 승인 2014.11.11 0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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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 신성남 ⓒ <뉴스 M>

장사는 인간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경제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농사라고 한다면 장사는 심은 것 이상으로 기대하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사가 더 쉽다는 말은 아닙니다. 더 큰 이익이 날수도 있지만 반대로 더 크게 망할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시간과 노력을 힘들게 투자해야 하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장사를 합니다. 어떤 경우는 아주 적은 밑천을 가지고도 시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마 거리의 노점상도 그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아무튼 자금을 많이 가지고도 망할 수 있는 것이 장사이고, 반대로 거의 맨손으로 시작해도 때론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장사입니다.

아주 어수룩한 장사

그런데 유사 이래로 세상에서 가장 어수룩한 장사 중에 하나가 바로 '종교 장사'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큰 밑천도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운이 좋아 터를 잘 잡으면 평생 신도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호사합니다. 그리고 이는 비단 기독교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도대체 '종교'라는 좌판을 벌린 수많은 집단들 중에 신도들의 돈을 안 뜯어가는 곳이 몇이나 있었던가요.

특별히 뛰어난 재능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어느 정도 경전을 외우고, 근엄하게 무게 잡고, 다소 말을 잘하고, 그리고 적당히 양심을 무시하면 됩니다. 그래도 설사 다른 것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무조건 배포는 커야 합니다. 이 장사에서 크게 대박을 치려면 반드시 순진한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사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이 작은 보통 사람들은 결코 종교 장사를 잘하기 힘듭니다.

누가 뮈래도 이 종교 상인들에게 제일 중요한 덕목은 '위선'입니다. 신도를 속이고, 동역자를 속이고, 친구를 속이고, 형제를 속이고, 부모를 속이고 심지어 자신마저도 속을 정도로 연기를 잘해야 합니다. 따라서 어느 목사님이 눈물까지 흘리며 아무리 설교를 잘하시더라도 이를 너무 믿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고 있을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강단에선 눈물의 설교를 하시고 내려와서는 교회 공금을 횡령하거나 여신도를 더듬는 인사들이 요즘은 제법 많지 않습니까. 말은 번듯하게 정의를 따르고 행동은 욕심을 따르는 성직자들을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싶으신지요. 이들은 진정 육신이 너무 연약해서 죄를 짓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런 죄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다른 직분자들은 육신이 별로 연약하지 않다는 말인지요.

하여튼 초기 조건만 어느 정도 충족하면 그 다음은 거칠 것이 그다지 없습니다. 때로는 천막을 하나 치고 시작해도 초대형 교회로 키울 수 있고, 대졸 출신이 아니라도 나중에 얼마든지 돈을 주고 박사모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능력이 많은 한국 개신교는 동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엄청난 기적들을 요즘도 꾸준히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주 말합니다. "하나님께 시간을 바쳐서 잘못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는 교회 일을 세상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시킵니다. 가정, 직장, 그리고 사회 활동 등은 가능한한 부수적인 것으로 비하합니다. 마치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신 것처럼 오로지 헌신과 봉사를 강조하며 교인들을 교회 일에 열성적으로 충성하는 '무임금 노동자'로 만듭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 제 아무리 고급 인력이라도 교회는 아주 값싸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판검사나 국회의원을 주차 안내원으로 쓸 수 있고, 대학 교수에게 주방일을 시키기도 합니다. 이러니 저런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얼마나 높으신 분입니까. 

그 다음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바쳐서 망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는 하도 많아서 일일이 기억하기조차 힘든 수십 종류의 각종 헌금을 아낌없이 바치라고 강조합니다. 물론 이 돈은 대부분 종교적 사업 확장이나 교회 인건비로 소모되며, 결코 가난한 이들은 국물조차 구경하기 힘듭니다. 즉 하나님 사업을 명분으로 돈을 거두는 데에는 명수이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별로 쓰지 않습니다. 

종교의 비지니스화

그래서 어느 분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세상에서 전과기록이 수두룩해도 교회에선 버젓이 장로 대접을 받고 대통령도 된다. 세상에서 강도짓하고도 교회만 오면 상석에 앉는다. 교회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예수만 믿으면,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모든 죄를 단번에 사함 받고 구원도 영생도 천국도 모두 내 차지라는 참으로 편리하고 염치없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종교가 비지니스가 되고, 교회가 타락하면 언제나 이런 일들이 발생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성전에는 장사꾼들이 가득했고, 중세 교회에도 긴옷을 입은 종교 귀족들이 넘쳤습니다.

우린 이제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기독교 진리는 단순히 종교가 아닙니다. 아무리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기만하며 장엄하게 세우고 그 내부를 치장해도, 그 건물이 사람을 저절로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모여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나, 그런 것들만으로 우리의 신앙이 온전해지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요즘 크게 사고치는 목회자들 중에 대형 교회 담임목사가 아닌 분들이 몇이나 있습니까. 다 잘나고 경건하시고 번쩍거리던 분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뒤로는 교회 돈을 삼키고, 성추행하고, 그러다 배부르면 교회를 애송이 아들 목사에게 물려주고 흥청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이런 말을 하면 극히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굳이 변명하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문제만 지적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며 유치한 물타기 수법을 들고 나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을 좀 해보십시요. 부정과 비리를 알게 되면 그것을 즉시 고치면 되는 것이지 무슨 구구한 잡론이 그렇게 많은 것인지요.

교회 공금을 횡령하거나 성범죄를 반복하는 목사는 바로 파면하고 감옥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세습하는 아버지와 아들 목사는 나란히 몰아내야 옳은 것이 아닙니까. 왜 중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이런 기본 상식을 거룩한 교회만은 어려운 말로 왜곡하며 시간을 끌고 허튼 말을 반복하는 것인지요.

더구나 천신만고 끝에 성추행 목사를 겨우 고소하였더니, 기껏 교단법의 절차를 핑계삼아 이리저리 미루고 회피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요. 그러면 그 목사님은 교단법의 절차대로 성추행을 자행하셨던가요. 아울러 논문을 표절한 목사님도 교단법의 절차대로 표절하였던가요. 정말 그 알량한 교단법이 일반은총의 영역에 있는 자연법인 상식보다 우선입니까?

필자는 신실하고 충성된 교역자들이 우리 주변에 아직 많이 있슴을 잘 압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좀먹고 있는 종교 상인들이 아주 극소수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린 인정해야 합니다. 도리어 교단 전체가 통채로 이익집단으로 변질하여 '강도의 소굴'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장사를 막으려면

지금 한국교회 부패의 문제는 결코 무슨 복잡한 대안의 문제가 아니라 기초적인 양심과 상식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순수한 사역자들은 서로를 세워주고, 성도들은 합심하여 사악한 종교 상인들을 거룩한 교회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그 온유하시던 예수님도 성전 마당이 장사판으로 된 것만은 참지 못 하시고 분노의 채찍을 드셨슴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뭘 제대로 알아야 개혁이든 갱신이든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이 비상한 시대에는 무식하면 그저 용감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식하면 곧 죄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양복입은 이리들이 강단을 차지한 교회에 가서 열심히 돈을 바치고 몸을 바친다면 그건 헌신이 아니라 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건 단순히 맹신을 넘어 광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무조건 큰 교회보다는 작더라도 '바른 교회'를 세워야 하는 절실한 이유입니다.

한국 개신교는 지금 세상을 구하는 제사장 사역에 있어서 큰 낭패를 보고 있습니다. 아니 감히 세상을 구하기는 커녕 도리어 자기 자신마저도 제대로 구원하기에 힘겨워 하고 있습니다.

정치판의 수구 기득권 언론들처럼 대다수 기독교 언론마저 돈과 권력의 기생이 되어 늘 듣기에 좋은 태평한 소리나 늘어놓으니 공교회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지금 시급히 필요한 것은 건강한 소통입니다. 바른 말이 핍박을 당하고 바른 지식이 멸시를 당하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입니다. 

일찍이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세아 4:6)."

신성남 집사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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