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빈민가에서 보낸 미국 대학생들의 하루
흑인 빈민가에서 보낸 미국 대학생들의 하루
  • 박지호
  • 승인 2007.02.23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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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필라델피아 7개 대학 IVF, '실천하는 영성'의 현장을 가다

▲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예배당 안에는 기괴한 그림들이 걸려 있다. 언뜻 부자연스럽게 보이지만, 교회의 역사와 그림의 의미를 알면 함께 있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박지호)

2월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간 필라델피아 흑인 빈민가 North central 중심에 있는 애드버킷교회(Church of advocate)에서 'Jesus, Justice & Poor'(예수, 정의 그리고 가난한 자)라는 행사가 열렸다. 줄여서 ‘JJP'라고 부르는 이번 프로그램에는 필라델피아 소재 7개 대학에 있는 IVCF(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 USA : 캠퍼스 선교단체 중 하나) 학생들 4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 중에는 비기독인 학생들도 몇몇 있었다. 이날 행사는 드라마틱한 회심의 현장도, 그렇다고 노숙인들에게 밥을 퍼주는 이벤트도 없었다. 다만 보고, 듣고, 나누고, 섬기면서 학생들은 가난한 자들의 이웃이 되어 주신 예수의 삶을 조금씩 배웠다. 

관점의 전환 - ‘나’에서 ‘가난한 이웃’으로

스스로의 울타리에 갇혀 이웃과 사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우려를 듣는 것은 미국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와스모어대학의 토니 간사는 “개인 영성을 강조하는 수준을 미국 교회가 벗어나지 못해, 학생들 역시 사회적 정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첫날 학생들은 애드버킷교회를 거닐면서, 예배당에 있는 그림들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60~7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의 중심지였던 애드버킷교회에는 월트 에드먼즈 같은 화가들이 그린 10여 점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 성경 내용을 바탕으로 그려진 이 그림들에는 미국 흑인들의 삶의 애환과 자유와 평등을 향한 갈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흑인 교회가 거의 없는 미국장로교(PCA)에서 개혁주의적인 신학을 견지한 흑인 목사 칼 엘리스. 그는 흑백 간 인종 갈등의 역사를 조명해왔다. (박지호)
이어 칼 엘리스 목사의 강의를 들었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교수이기도 한 칼 목사는 대학생 때부터 인종 문제에 천착하며 흑백 간 인종 갈등의 역사를 조명해온 학자다. 그는 또 흑인 교회가 거의 없는 미국장로교(PCA)에서 개혁주의적인 신학을 견지한 흑인 목사이기도 해 미국 교회에서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칼은 이날 강의에서, 사회적 차원이 결여된 개인주의적인 영성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개인 신앙과 사회 정의를 본질적으로 하나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 차원의 불경건한 (individual ungodliness) 상태를 거부하는 기존 교회들의 모습을 지적하면서, 온전한 신앙은 개인적인 영성뿐 아니라 억압적(oppressive)이고 제도적(institutional)인 모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 정의(social justice)를 이루어가는 삶이라고 설명했다.

정의와 가난이란 이슈에 무심했던 신앙의 불균형을 자각한 듯 학생들은 칼 목사의 강의에 관심을 보였다. 메시아대학의 지역 사회 담당 학생 디렉터 라이언 씨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명확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회 정의에도 동일하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했다”며 강의에 대한 소감을 나눴다.

실천적 삶 내딛기 - The simple way가 남긴 여운

다음날 학생들은 칼이 언급했던 균형있는 신앙 모델 중 하나로 켄싱턴에 있는 심플웨이(The simple way)라는 공동체를 찾았다. 학생들은 심플웨이에 그들이 걸어온 여정을 듣고,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하는 그들의 삶을 엿봤다.

심플웨이는 성당에서마저 쫓겨난 노숙인들을 돕던 20대 초반의 청년들에 의해 1998년에 만들어진 공동체다. 이들은 노숙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빈곤의 악순환을 경험하고, 초대교회 공동체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았다. 이후 헤로인 밀매 지역으로 악명 높은 켄싱턴 지역에서 버려진 집들을 사서 공동체를 이루고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 되어 함께 살기 시작했고, 재활용 가게, 푸드뱅크, 방과후학교 등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들을 섬기고 있다.

▲ 심플웨이에서 운영하는 재활용 가게를 방문한 학생들. 옷가지를 비롯해 자전거, 가전제품 등을 기증 받아 운영되는 재활용 가게는 토요일마다 주민들에게 개방된다. 옷은 쇼핑백 하나에 1불, 나머지는 최소한의 가격으로 주민들에게 제공된다. (박지호)
학생들은 심플웨이가 운영하는 재활용 가게에서 옷을 정리하는 일과 보도에 얼어붙은 눈을 치우는 작업 등을 했다. 심플웨이에서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마약과 폭력에 찌든 빈민들과 함께하는 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믿음이 학생들의 마음에 긴 여운으로 남는 듯했다. 템플대학에 다니는 달시라는 학생은 심플웨이를 방문한 뒤 “‘황폐한 성읍들을 새로 세우며, 대대로 무너진 채로 버려져 있던 곳을 다시 세울 것이다’라는 이사야 61장 말씀이 생각났다”며 “켄싱턴 지역이 그 말씀처럼 변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복음에 대한 새로운 접근”…비기독학생 2명 결신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한 템플대학 IVCF 간사 이태후 목사는 “개인 경건 중심으로 편협하게 복음을 이해했던 것을 넘어 빈곤과 사회 정의를 끌어안고 하나님나라를 회복하는 총체적인 관점으로 복음을 이해할 수 있고, 복음을 모르던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시각에서 복음을 소개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JJP 프로그램을 통해 2명의 비기독인 학생이 예수의 삶을 따르기로 결신했고, 28명의 학생은 지금까지 성경을 편협하게 이해했다며, 가난한 자들 속에 있었던 예수의 삶을 따르겠다는 다짐도 새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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