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옛 이름은 '콜럼비아'
미국의 옛 이름은 '콜럼비아'
  • 강희정
  • 승인 2007.02.2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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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카툰으로 보는 미국사
미국이 19814월 사상 최초로 우주로 발사한 인공위성의 이름은 '콜럼비아'였다. 이 밖에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 , 미국의 유력한 방송국의 하나인 CBS, 아이비 리그 대학 가운데 하나인 콜럼비아대학에서, 대형 영화사인 콜럼비아영화사 등등 우리는 곳곳에서 콜럼비아라는 이름을 만나게 된다. 미국의 모든 지역에서 콜럼비아라는 상호나 지명, 기관 이름을 쉽게 볼 수 있다.

콜럼비아 : 19세기 후반의 미국의 정치적 상징.  출처 : Columbia Records Phornograph Cylinder.
콜럼비아는 크리스토퍼 콜럼부스라는 이름에서 파생되어 나온 여성의 이름으로, 옛날 미국이 스스로를 일컫던 이름이다. 즉 콜럼비아는 미합중국의 옛 이름인 셈이다콜럼비아는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쓰였다. 남아메리카 대륙에 콜럼비아라는 나라가 세워지기 전까지 콜럼비아는 미국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쓰였다. 미국에 콜럼비아라는 이름을 가진 지명이나 기관 등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콜럼부스는 유럽인들 중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으로 흔히 일컬어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내디딘 해인 1492년을 역사상 중요한 해로 의미를 부여한다. 미국 경제 잡지 <포춘>은 지난 천 년 동안 세계 역사상 일어난 가장 커다란 사건들에 대하여 순위를 매긴 적이 있었다. 그때 1위에 올랐던 사건이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표현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이것은 비단 표현만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이기도 하다.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으로 온 유럽인이 아니며, 그 이전에도 유럽인들과 아메리카 대륙 간에 교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시각이 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미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스칸디나비아인들은 10세기 말부터 11세기 초반에 캐나다 연안에 정착한 적도 있었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서구 중심의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콜럼부스가 15세기 후반에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한 사건을 '발견'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유럽인들에게 자신들이 살던 땅을 다 내어주어야 하고 심지어 인종 말살에 가까운 학살을 경험해야 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이것을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레곤주 포트랜드 시에 있는 제퍼슨 고등학교는 '콜럼부스 도착 500주년 기념 행사'에서 학교 전체적으로 한 프로젝트를 벌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프로젝트는 일단의 학생들이 온 학교와 교실들을 돌아다니며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가방이나 소지품들을 다 털어가지고 나오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콜럼부스 이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행한 일들의 의미에 대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면서 서구에 의한 '침략과 약탈 그리고 인종 말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혹자는 당시의 참혹상의 책임을 스페인계의 잔혹한 민족성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유럽인들 가운데 스페인인들만이 잔혹했던 것은 아니다.

한 아메리카 원주민 권리보호 단체 대표(Suzan Shown Harjo)는 유럽인들에 의해 행해진 잔혹한 역사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고 있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이 완전히 파괴되기에 이른 까닭이 타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의 억압성과 오만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다.

콜럼부스가 미국 식민지가 건설되던 당시부터 미국인들의 추앙을 받은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영국 왕 헨리 7세의 후원을 받아 항해에 나섰던 존 캐보트(John Cabot)라는 이탈리아인의 업적이 강조되었고, 스페인의 후원을 받았던 콜럼부스의 업적은 과소평가되었다. 그러나 미국 식민지가 점점 커지고 영국 정부와 마찰을 일으키게 되면서부터 미국인들 사이에서 점차 콜럼부스가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영국의 간섭과 제재로부터 벗어나기를 시도하면서, 존 캐보트를 영국 왕의 하수인으로 취급하고 콜럼부스를 자신들의 영웅으로 추앙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인들이 콜럼비아를 국가적 상징으로 삼게 된 데에는 콜럼부스의 '개척과 탐험 정신'을 자신들의 이상적 가치로 삼았기 때문이며, 동시에 영국과의 저항에서 자신들을 지켜 줄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서 국가 공동체를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식민지가 콜럼비아를 자신들의 정치적 상징으로 부각하는 작업은 1775년도에 영국 정부와 전쟁에 나서고 177674일에 독립 선언을 하기에 이르러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한때는 콜럼비아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정식 국가 명칭을 삼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United States라는 이름보다는 콜럼비아라는 이름을 훨씬 좋아했다고 한다. 콜럼비아라는 이름이 어감상 시적이고  따뜻한 여성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어 훨씬 더 많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1786년에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가 자신들의 주도를 콜럼비아로 지정하면서 국가 이름으로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은 중단되었지만, 미국인들은 콜럼비아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사랑하였다.

  제목 : Peace, 작가 : J. S. Pughe, 출처 : Haper's Weekly, Vol.57, No. 1465, March 1905.

한편 미국은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점차 여성적인 국가 이미지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다. 미국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쿠바가 독립을 꾀하여 일으킨 전쟁에 개입하게 되어 스페인과 전쟁을 하게 된다. 이른바 '미서 전쟁'이다. 이 전에 미국은 유럽 국가들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의 정치적 독립을 주장하는 먼로 독트린(제임스 먼로 대통령, 1823)을 선언한 바 있다. 그동안 미국은 유럽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는 것을 배제하고자 먼로 독트린을 선언하고 고립주의를 지향해왔었다.

위에 제시된 카툰의 제목은 '평화' 이다. 그러나 이 카툰은 해군 차관 출신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26대 대통령으로 1901-1909 재임)의 얼굴을 미국이 이끄는 함선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제목과는 전혀 다르게, 전쟁을 위해 완전 무장한 콜럼비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러일 전쟁을 끝내는 데 공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미국의 해군력을 강화시키고 먼로주의 수정안을 발표하여 미국의 대외 정책을 고립주의에서 개입주의로 전환한다. 먼로주의 수정안은 라틴 아메리카의 문제에 타 지역 국가들의 개입을 금지하고 미국이 아메리카 지역의 치안과 국제조약의 준수를 책임진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미국은 유럽 국가들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를 보호하는 가디언으로 나서면서 점차 제국주의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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