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이야기 1
마이클 이야기 1
  • 이태후
  • 승인 2007.11.1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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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Uber Street은 이곳에서 나의 사역의 출발지가 되었다.

우리 동네로 이사해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골목마다 다니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 얼굴도 익히고, 무엇보다 내가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할 골목을 찾기 위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하며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사는 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Uber Street에 가게 되었다. 일방통행인 그 골목은 비교적 널찍한 길 양편에 나무도 제법 있는 조용한 골목이었다. 마침 따사로운 햇살을 쬐며 계단에 앉아 환담을 하는 이들이 있어 인사를 하고 얘기를 시작했다.

그때 나를 처음 만나 따뜻하게 대해준 이가 마이클이다. 이 동네에서 자라서 유버 스트릿에 산 지 10여 년. 나이든 블록 캡틴(Block Captain)을 도와 실질적인 블록 캡틴으로 골목의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마당발이었다. 자기 집은 손질을 못 해서 엉망이지만, 다른 사람이 부탁하면 선뜻 나서서 페인트 칠, 목공, 배관 등 웬만한 일은 전문가 못지않은 솜씨로 해내는 마이클.

어느새 내게는 시간이 나면 유버 스트릿으로 가서 마이클과 함께 계단에 앉아서 얘기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배고프면 샌드위치도 함께 먹고, 커피도 마시고, 때로는 그를 데리고 식당에도 가면서 마이클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오래 일을 하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일을 쉬게 되었다는 마이클. 그를 통해서 나는 유버 스트릿 사람들을 하나씩 알게 되었다.

내가 유버 스트릿 한쪽 끝에 나타나면, 동네 사람들은 벌써 마이클에게 친구가 온다고 알려주곤 했다. 한번은 동네 보건소에 갔더니 한 아이가 꾸뻑 인사를 했다. 처음 보는 얼굴을 멀뚱하게 바라보며 눈을 껌뻑이고 있었더니, “마이클 아저씨 친구시죠? 저 그 골목에 살아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마이클과 얘기하고 있을 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마이클에게 인사했던 것도 같았다.

마이클을 통해 나는 가난한 이들이 갖는 놀라운 지혜를 배웠다. 마이클이 부엌이 없이 사는 것을 아는 동네 사람들은 끼니마다 그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언제나 그가 식사를 했는지 챙기며, 이웃들은 그의 환한 미소를 통해 골목이 안전한 것을 확인했다. 마이클은 골목의 온갖 일을 도맡아 하고, 이웃들은 그의 끼니를 챙겨주고. 가난한 이들의 품앗이가 모든 역경을 품어내는 넉넉함을 일깨워주었다.

▲ 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쉬고 있던 마이클과 친구가 되었고, 그와의 만남을 통해 썸머 캠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이클과 함께 골목도 쓸고 동네 얘기도 듣던 어느 날, 마이클은 내게 여름이 되면 Play Street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게 뭐냐고 묻자 그는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필라델피아 시에는 여름이면 Play Street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학교가 방학을 하면 딱히 갈 데가 없고 할 것도 없는 빈민가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인데, 방학 기간 동안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아침 열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차량 통행을 금지해서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어놀 수 있게 해준다.

그뿐 아니라, 시에 신청을 하면 점심 급식까지도 제공 받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방학 내내 골목이 신나는 놀이터가 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아무 골목마다 Play Street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신청을 하고 매일 관리를 할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

마이클은 자신이 지난 몇 년 동안 유버 스트릿에서 Play Street을 운영해 왔다며, 여름이 오면 한번 와보라고 권유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Play Street을 통해 뭔가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어 나는 유버 스트릿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아침 아홉 시면 그 골목으로 가서 마이클과 함께 커피 한잔 하고, 골목을 쓰는 일부터 시작한다. 골목 입구부터 끝까지 깨끗하게 쓸고 나면, Miss Brown의 마당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 그늘 아래 자리를 잡는다. 조금 있으면 곧 시청 소속 트럭이 와서 아이들이 먹을 점심 도시락, 우유와 과일 주스, 그리고 간식이 든 박스를 내려놓는다. 그러면 우리는 박스를 뜯어서 내용물을 커다란 통에 넣고, 그 위에 얼음을 부어 놓고는 점심때까지 앉아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보통 아이들은 열한 시 조금 넘어서 와서는 점심을 먹고, 잠깐 놀다가 집으로 간다.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공놀이도 하지만, 아이들은 삼삼오오로 와서 점심과 간식만 먹고 갈 뿐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마이클은 내게 탄식조로 얘기했다. 아이들을 위해 뭔가 공작이나 게임 같은 프로그램을 하고 싶은데, 자기 혼자서는 역부족이라고. 여름 내내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날마다 골목을 지키며 아이들을 돌보는 그를 보며 나는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매일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이 와서 점심을 먹고, 널찍한 골목이 차량통행이 금지된 채 안전하게 제공되는데, 뭔가를 할 수 없을까? 여기 저기 그늘진 계단에 앉아 점심을 먹는 아이들을 보며 그들을 위해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이 길거리 여름 캠프(Street Summer Camp)였다. 한인 교회를 통해 자원봉사자를 지원 받고, 기존의 Play Street을 이용해 캠프를 운영하는 것은 그리 큰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이 넓으니 캠프를 진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고, 점은 시에서 제공이 되니 별 재정적 부담이 없이 캠프가 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마이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뛸 듯이 기뻐했다. 자기 꿈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면서 그는 너무나 고마워했다. 내가 자원봉사자들 대부분이 한인들인데 흑인 동네에 한인들이 와서 캠프를 운영해도 괜찮겠냐고 묻자, 그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한다고 오히려 나를 격려해주었다. 동네 사람들도 그 이야기를 듣더니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긍정적으로 반응을 했다.

자, 이제는 내가 뛰어야 할 차례였다. 2005년 가을, 나는 내가 아는 한인 교회들을 접촉하기 시작했다. 유스그룹, 대학생, 청년들이 필라델피아 빈민가에 와서 일주일 동안 동네 아이들을 대상으로 썸머 캠프를 운영할 수 있겠냐고 아는 목사님들께 물어보았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숙소였는데, 그 문제는 나와 함께 템플대학에서 사역하는 Barb Weidman의 도움으로 해결이 되었다. 그녀가 소유한 집이 우리 동네에 있는데, 학기 중에는 템플대학 학생들이 살지만, 방학 때는 IVF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위해 집을 비우게 되어 있다. GateWay라는 빈민 사역 프로그램이 끝나고 템플대학이 개강할 때까지 삼 주 동안 집이 비는데, 그 기간 동안 썸머 캠프 자원봉사자들이 그 집을 세내기로 계약을 했다.

숙소가 해결되니, 나머지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낼 교회와 썸머 캠프 프로그램이었다. 평소에 내 사역에 관심이 있던 세 목사님이 흔쾌히 자원봉사자들을 보내기로 해서, 나는 마이클과 함께 썸머 캠프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다음해 여름 계획에 신나 있었다.

내가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2년 만에 드디어 주님께서 내가 구체적으로 감당할 사역을 보여주신 것이다. 아, 얼마나 신이 나던지. 마이클과 나는 거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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