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다시 시작하며
일본에서 다시 시작하며
  • 전현진
  • 승인 2015.01.06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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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취재수첩] 전기자가 미국 떠나 도쿄로 간 까닭은?

새해 첫날 도쿄의 아침 거리는 한산했다. 도시 곳곳 신사(神社)에는 사람이 넘쳤다. 메이지 천황과 그 아내 쇼켄 황후의 영혼을 봉헌한 메이지신궁에는 곳곳에 경찰이 배치되 참배객들을 안내했다. 출입문에 서성이며 사진을 찍는 이들에겐 입구에 서서 사진 찍지 말라는 목소리가 확성기를 넘어 들려왔다. 신사로 드나드는 출입문에서 참배객들은 손을 모으고 본전(本殿)을 향해 두 번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참배를 마치고 이 문을 다시 나설 때도 마찬가지다. 본전 앞에 모여 참배하는 이들은 본전의 입구 앞 자동차 십여대는 들어갈 만한 커다란 공간에 천막을 깔아둔 곳으로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빈다.

참배 행렬과 그 모습은 신사마다 비슷하다. A급 전범의 위패를 보관하고 있어 일본 고위급 정치인의 참배 때마다 논란이 되는 야스쿠니신사. 이곳에도 길게 줄지어 선 이들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가볍게 날리는 눈송이를 맞았다. 일본 최대 규모의 신사로 알려진 야스쿠니신사에는 가족과 함께 온 참배객들이 신년을 기념하는 술을 나눠 마시고, 소원을 적어둔 종이를 신사 곳곳에 설치된 소원함 등에 넣거나 묶어둔다. 이런저런 기념품과 음식을 파는 노점들로 신사 입구는 북적댔다. 

전쟁의 포화를 기획하고 주도한 이들을 봉헌한 곳 답지 않을 정도로, 새해 첫날 야스쿠니신사는 평화로워 보였다. 전날 방화미수로 일본 남성이 붙잡혔다는 뉴스도 전해졌지만, 일본 극우파들의 선전이나 시위 활동은 신사 입구 밖에서만 소규모로 진행될 뿐이었고, 구석구석 자리잡은 경찰들도 한가해 보이기만 했다. 

신사 안은 종교적 엄숙함과 새해를 맞은 가벼운 설렘이 가득했다. 일본 전통 종교에 가까운 토속신앙 신도(神道)는 일본인들의 삶 속에는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절 역시 주거 단지 곳곳에 자리잡아 불교 신자나 인근 주민들은 빈번히 법회에 참가한다. 

일본에선 통일교와 같은 신흥종교의 활동도 활발하다. 거리를 걷다 보면 통일교 선전 차량과 마주하기도 하고, 골목 곳곳에 이름도 생소한 신흥종교들의 활동 장소가 눈에 띄기도 한다. 

기독교 역시 교회가 전혀 없다며 일본 밖에서 듣던 것과 달리 의외로 곳곳에 규모는 작지만 교회 간판을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점령지였고 현재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오키나와에는 십자가 철탑이나 교회 간판을 흔히 볼 수 있다. 

세속적인 서구 국가나 불교나 이슬람교 등 주류 종교가 전체 인구의 신앙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와 달리, 일본은 종교성 자체가 너무 다양하고 광범위한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신(神)이 되는 나라에서 기독교는 수 없이 많은 신 중 하나를 섬기는 종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속 국가라는 틀로 바라보는 모든 국가와 그 속에 사는 모든 인간들 모두 저마다 모양은 다르지마 근본은 같은 종교적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그저 그런 종교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방향성 없이 표출해내는 건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도 기독교 신앙의 역사는 짧지 않다. 1923년 태어난 소설가 엔도 슈샤쿠(遠藤周作)는17세기 일본의 천주교 박해를 다룬 소설 <침묵>을 썼다. <침묵>에 등장하는 선교사들과 일본 신자들의 모습은 비슷한 시기 한국의 그것과도 닮았다. 우치무라 간조로 대표되는 일본의 근대 개신교 사상가들은 ‘일본적인 기독교’라는 틀을 일본 신학에 제공해왔고, 그 속에서 자생한 일본적 신학들이 꽃 피워갔다. 현재 원자력 발전이나 환경, 국가, 인권에 대한 신학적 고찰들은 일본적 배경 안에서 자라가고 있다. 이는 복음주의 일변도로 다양성과 함께 그 깊이를 잃었다고 평가 받는 한국의 신학과도 다르다. 어느 쪽이 옳다는 주장은 무의미하다. 한국교회의 색안경을 쓴 채 들여다 보면, 일본은 선교의 난관으로 가득한 그런 곳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한인 사회는 또 어떤가. 세계 어디를 가도 한인들은 교회를 세웠고, 다투고 분열하며 그 지경을 넓혀갔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한인들도 교회로 모였고, 다퉜으며 서로 찢어져 누군가는 완전히 등졌고 누군가는 새로운 교회로 발길을 돌렸다. 일본의 많은 유학생들은 교회라는 말에 치를 떨기도 한다. 교인들이 운영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피해야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미국을 떠나 일본에 온지 이제 겨우 2달. 일본어 공부만 하고 지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겠지만, 미주 한인 사회에서 뒹굴며 배운 기자로서의 포부가 아직 시들진 않은 것 같다. 이 짧은 글은 <미주뉴스앤조이>에서 새 걸음은 내딛은 <NEWS M>과 함께 일본 주재기자로 활동하게 된 신고식인 셈이다.

앞으로 도쿄를 중심으로 일본에서 벌어지는 각종 고군분투들을 간간히 소개할 예정이다. 일본의 한인 교계, 일본의 신학과 교회, 일본의 정치와 사람들. 능력이 닿는 한 많은 주제와 이야기거리를 던져 볼 생각이다. 가깝고도 먼 이 나라를 두 눈 부릅 뜨고 슬며시 들여다 볼 사람이 한 둘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전현진 주재기자(도쿄)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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