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욱은 살고, 김진홍은 내쳐지고
전병욱은 살고, 김진홍은 내쳐지고
  • 김기대
  • 승인 2015.03.05 01:2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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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두 평양노회를 보면 한국 교회가 보인다

전병욱 목사의 치리 여부를 다루고 있는 평양노회(합동) 재판국이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재판을 종료했다. 재판국은 2월 28일 모임에서 "노회에서 판결하지 않는다. 단, 삼일교회가 10일 안에 총회에 상소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지난 10월부터 재판을 이어온 평양노회 재판국은 전병욱 목사의 유죄여부를 판단하지 못하고,  삼일교회의 고소건을 기각했다.

<뉴스 앤조이> 보도에 따르면 재판국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의견이 많이 대립되었고 노회 분립을 앞두고 어떻게 해서든 결과를 도출해야 했고, 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절충안으로 이 같은 결정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평양노회가 분립을 앞두고 재판 진행이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같은 결정으로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은 의혹으로만 남게 되었다. 사회 재판으로 넘어가지도 않고 노회 재판국에서도 명확한 판결을 내리지 않은 사건이 된 셈이다. 의혹으로만 치자면 전목사의 경우는 요즘 구속되고 파면되는 대학교수들의 경우보다 훨씬 그 ‘급’이 세다. 여론의 질타나 관심(?)도 훨씬 많았다. 그러나 이번 평양노회의 재판 종결은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힘을 얻은 전병욱 목사측은 지난 해 이진오 목사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과 같은 일을 계속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합측 평양노회도 내홍을 겪고 있다. 강북제일교회 뿐 아니라 두레 교회 문제로 시끄럽던 차에 전임 김진홍 목사측과 현재 이문장 목사 측의 대립이 폭력사태까지 치달았다. 

이문장목사가 부임한 것은 2011년 11월, 다음해 5월부터 재정문제를 비롯한 이문장 목사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이 교회에 떠돌기 시작했다. 이문장 목사 아내의 재정 착복설, 이문장 목사의 대여금 미회수설등이 떠올랐으나 모두 해결되었다. 이목사 부인이 맡고 있던 두레교회 묵상잡지 <깊은 데로>의 수익금은 착복이 아니라 다음 호 제작을 위해 쓰이고 있었고, 이목사는 문제가 되자 교회로부터 빌린 돈을 갚았다. 이문장 목사 측을 반대하는 두레교회 바로 세우기 협회(두바협)는 뒤늦게 갚은 것을 보면 갚을 의사가 없었다고 비난했으나 파장은 크지 않았다.

▲ 지난 3월 1일 이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이 교회 입구에 진을 쳤다. 이들은 두레교회바로세우기협의회 소속 교인들의 출입을 막아 섰다. (사진 두레교회)

하지만 이목사에 대한 소문과 의혹이 계속되자, 두레교회 전체 18명 시무장로 중 9명은 2013년 8월 두레교회바로세우기협의회라는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이문장 목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 목사가 자기 뜻과 맞지 않는 이들을 배제하고, 당회를 독단적으로 이끈다는 내용의 편지를 2013년 12월 26일 전체 교인에게 발송했다.

결국 공은 평양노회로 넘어갔고 기소위원회는 6월 23일 이문장 목사를 기소했다. 하지만 평양노회 재판국은 지난 해 9월 29일 이문장 목사에게 '견책'을 선고했다. 두바협이 고소한 죄목들은 대부분 죄과가 없거나 고소권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국은 "교회 다툼의 책임은 담임목사로서 회피할 수 없다. 충심으로 회개하고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새롭게 서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번에는 이단 시비가 뒤를 이었다. 두바협은 지난 해 7월, 이문장 목사를 평양노회 기소위원회에 이단성 문제로 추가로 고소했다. 이에 대해 작년 12월 19일 예장통합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이대위)는 이문장 목사에게 "이단성이 있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대위와 총회 임원회는 이목사에게 "한국교회와 총회 앞에 부적절한 설교에 대해 통절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지시했다. 이 목사는 이에 따라 지난 2월 14일 자 <기독공보>에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두바협 회원들이 '이단 목사 설교 들을 수 없습니다, 이단과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힌 배지를 가슴에 달고 예배에 참석하는 등 갈등이 가라 앉지 않다가 3월 1일 교회 창립 18주년을 앞두고 결국 폭력사태까지 번진 것이다.

평양노회의 역사

190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조직된 후 모두 7개의 대리회가 구성되었다. (경기충청, 평남, 평북, 황해, 전라. 경상, 함경). 이 대리회만 보아도 해방 이전에는 장로교에서 이북세가 훨씬 강했음을 알 수 있다. 7개 대리회는 1912년 9월 1일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되면서 7개 노회로 변경되었다. 1921년 9월 10일 평양장대현예배당에서 소집된 제10회 총회 때 평남노회에서 평양노회(조직회장 길선주 목사), 평서노회(조직회장 송인서 목사), 안주노회(조직회장 안봉주 목사)로 분립되었다. 평양은 평양지역으로, 평서는 남포지역으로, 안주는 안주지역으로 하여 1922년에 조직되었다.

한국 전쟁중이던 1952년 합동 통합 분리이전의 총회에서 서북지역의 27개 노회가 남쪽 지역에서 무지역 노회로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하지만 벌써 60년이 넘어버린 상황에서 이북노회는 쇠락의 과정을 겪고 있다. 통합측에는 현재 4개의 이북노회(평양 평북 용천 함해)가 남아 있으며 합동측에서는 지난 2013년 총회에서 무지역 노회 재정비안을 연구하기로 결의했다.

공교롭게도 전병욱목사와 김진홍 목사는 모두 각 교단의 평양노회 소속이다. 이북 노회 재정비가 논의되고 있는 합동에서 평양노회가 분리된 것은 다소 의외다. 분립위원회 측은 노회 분립 여건인 21개 당회를 상회한 것이 분립의 이유라고 밝히고 있으나 이는 총회의 무지역 노회 재정비안과는 배치된다.  현재 전병욱 목사의 노회 소속 여부는 보류상태다. 어쨌든 전병욱 목사는 노회에서 살아 남았다. 의혹에 관계없이 노회는 전병욱 목사를 품고 가기로 했다는 말이다. 노회, 아니 교단으로서는 전병욱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반면 김진홍 목사는 현재 상태로만 볼 때 통합측 평양노회에서나 교단에서 내쳐졌다고 보는 쪽이 맞다. 지명도나 정치적 위상에서 전병욱은 김진홍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문장 목사의 이단 시비에 대해 이대위는 사과문 게재라는 솜방망이 징계만을 내렸다. 김진홍 목사를 물먹인 셈이고, 지난 2007년 대구제일교회(경북노회) 나요섭 목사가 비슷한 수준의 이단 시비에 휘말렸다가 대구제일교회에서 해임된 것과도 비교된다. 게다가 이문장 목사는 합동측 출신이고 나요섭 목사는 통합교단의 원로급 목사의 아들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은 시비가 된 사건의 본질보다는 ‘정치’가 교단 치리의 주요 요소라는 것을 두 사람의 사건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전병욱 목사는 필요했고, 김진홍 목사는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각 교단은 판단한 것 같다.

김진홍이 왜?

김진홍 목사는 왜 내쳐졌을까? 김진홍은 처음부터 교단 정치와는 거리가 먼, 아니 교단을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자기의 위상을 확보해 왔던 인물이다. 잘 나가기 시작할 무렵 그는 장로회 신학대학원 채플에 와서도 교단 수뇌부를 비판하는 설교를 거침없이 해대었다. 젊은 신학생들은 열광했고, 그의 개혁적인 이미지는 많은 지지자들을 양산했다. 하지만 그가 ‘교단 정치’보다 ‘진짜 정치’에 관심을 두면서 그의 개혁적인 이미지가 퇴색되기 시작했다. 그의 외곬수 이미지는 개혁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교단 정치구도에 예속되지 않으려고 둔 ‘큰 수’였던 것이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후보시절부터 도와 뉴라이트 창립에 앞장 섰고 어느새 정치적 거물로 성장해 버렸다.

선거철이 되면 조그만 교회에도 후보들이 찾아와 조아리는 한국 풍토에서 목사들은 ‘그 맛’에 사는 경우가 많은데 김진홍은 교단 지도부에 예를 안 갖추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같은 ‘목사’이기 때문에 조아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목사들에게 그는 ‘정치인’이었다.

대구 경북 출신이면서 그가 두레교회를 창립하면서 평양노회에 가입한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통합측에서 1990년대 이후부터 대구 경북세는 가장 큰 파워 그룹이 되었는데 김진홍은 그들과도 거리를 두겠다는 생각에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다. 게다가 합동출신을 후계자로 선정함으로써 인재풀이 넘쳐나는 통합측의 심기도 건드렸다. 김진홍 목사 본인이야 교단을 넘어서는 에큐메니칼적인 선택이었다고 자랑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이번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반면 통합측에서는 합동출신이라는 점때문이라도 이문장 목사를 내치기 쉬웠겠지만 김진홍 보다는 이문장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명박의 퇴조와 함께 김진홍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교단 정치’를 비판하면서 ‘현실정치’와 손을 잡았던 그가 말년에 교단의 정치에 호되게 당하고 있는 것이다. 김진홍 목사의 상처입은 사진이 그의 쇠락한 말년과 두 교단의 ‘정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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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데나 2015-03-05 15:08:12
진의가 뭐겠습니까? 이런게 목사들의 세계입니다. 정말 이렇게 노회운영하고 먹고 삽니다. 이게 진실입니다. 저세계에서 물잘못탄 사람이 버림받는겁니다. 진실이나 진리는 그렇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바로 저게 교회연합 자치기구인 교단정치의 현실인겁니다

의혹 2015-03-05 12:49:44
두 목사의 사건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이 기사는
그 진의가 무엇인가?
편집장의 특헤로 올려지는 기사로 의혹이 갈만큼
이런 기사가 왜 헤드 기사로 올려지는지 의문이 간다.
오히려 아래 이계선 목사의 구수한 기사가 그래도
머리를 끄덕이는 내용일게다.
기사 선별의 기준이 무엇인지 의혹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