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고 비천한 자리를 찾는 사람들
낮고 비천한 자리를 찾는 사람들
  • 양재영
  • 승인 2015.04.12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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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신학교 탐방4] 미주감신대, 강성도 학장 인터뷰

1996년도에 설립된 미주감리교신학대학교(명예총장 채의숭 박사, 이하 미주감신대)는 요한 웨슬리의 ‘저를 가장 비천한 종이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바탕으로 남들이 꺼려하는 낮고 비천한 곳에서 묵묵히 섬기는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다.

본지기획으로 진행하고 있는 신학교 탐방의 일환으로 미주감신대의 학장인 강성도 목사를 만나 학교소개와 ‘성서와 전통, 이성과 체험’이란 감리교의 신학적 전통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 편집자 주

▲ 미주감신대 강성도 학장 © <뉴스 M>

“성화는 구원의 완성”

- 우선 학교 소개에 앞서 감리교 신학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감리교 신학은 루터, 칼빈으로부터 백여년 후에 합리주의가 자리잡고 난 다음에 생겨난 교단이다. 그때 당시의 개혁신학의 전통은 베자(Theodore Beza, 1519-1605) 등이 말한 튤립교리(TULIP)를 들 수 있는데, 칼빈 자신은 성화를 강조한 사람으로 성화론을 보면 ‘매일 십자가를 진다’고 되어있는데, 웨슬리 시대에 보면 율법주의 적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그래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선행은총’을 강조했는데, 내 안에 계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품성을 회복하도록 '성화'시켜간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면 ‘현관문에 서 있는 것’(At the porch)이라고 말하며, 그 다음엔 문을 열고 들어와서 주님과 더불어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주님의 품성을 배우고, 감옥이나 창녀촌이나 탄광촌과 같은 낮고 비천한 삶의 현장 한가운데에 가서 실제로 그것을 드러내야 된다.

이러한 전통의 극단적인 형태가 ‘구세군’이고, '함께하시는 성령님이 우리를 성화시켜 나간다'는 쪽으로 강조하면 ‘오순절’이 된다. 감리교 운동에서 양 극단이 다 나왔다.

- 그럼 웨슬리는 어떤 입장이었는가?

웨슬리는 그 둘의 밸런스를 잡으려고 애를 썼다. 가능하면 '체험과 이성'을 조화시키기 위해 선배들의 '전통'을 강조했으며, 그 모든 것들이 다 성서에 기반을 둔 성서적인 기독교를 강조했다.

요즘 한인교회에서 많이 하는 셀, 목장 그룹 등을 조직화하는 전통은 감리교로부터 시작되었다. 재미있는 일화로, 웨슬리는 믿음이 안자란다고 자기네 교인 3분의 1을 교회에서 내쫓았다. 이러한 셀 모임이 그대로 삶의 현장에 옮겨진 것이 노동조합이다.

흔히들 영국에서는 유혈혁명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웨슬리의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실질적으로 사회 현장 속에 참여해서 제도를 고쳐나가는 신학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게 웨슬리 신학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감리교 신학은 작년 논란이 되었던 구원파의 논리와는 배치되는 것 같다.

그렇다. 감리교는 ‘성화를 구원의 완성’으로 본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은 그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지만, 인간은 잘 믿다가 실족할 수 있다.

바울이 이야기한 것처럼 날마다 부단히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내리고 죽는 것을 우리는 '부활'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신앙은 신앙, 사업은 사업’ 식으로 나눠서 살아가는 데, 웨슬리 신학에선 인정이 안된다.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안 나면 그건 가짜이다. 삶의 현장이 곧 선교지이면서 영적 수련장이다.

약점으로는, 잘못하면 나의 선행을 강조하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행위에 의한 구원’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낮고 비천한 자리에”

- 미주감신대 소개를 부탁한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산하 신학교가 4곳이 있는데, 감리교신학대학, 목원신학대학, 협성신학대학, 그리고 미주 감신대가 있다. 미주감신은 미주 지역에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학교로, 남가주 지역엔 약 70개 정도의 교단소속 교회가 있다.

ABHE(The Association for Biblical Higher Education) 준회원이고, 주정부 인가를 받았지만, I-20는 준비 중에 있다. 지식공유 차원에서 이번 학기부터 모든 강의가 홈페이지(mtsamerica.org)에 공개되고 있으며, 누구나 무료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학점을 원하는 사람은 학교와 상의하면 된다.

▲ 미주감리교신학대학교(명예총장 채의숭 박사)

- 다른 신학교에 비교해 미주감신대 만의 특징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아주 특이한 사례로, 우리 학생들 중에 11명이 세계의 선교사로 나가있다. 알바니아에서 지체부자유자들을 돌보시는 여선교사님이 계시고, 우간다, 이집트, 말레이시아, 또한 페루의 구리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선교사님들이 사역하고 있다.

그들은 파송 선교사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나가서 하는데,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학교의 유형의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취임한 최의숭 명예총장께서 우리 학생들 중에 몇몇을 선별해 교회를 지어주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미주감신 졸업생들은 ‘낮고 비천한 자리에’라는 슬로건에 따라 양로원이나 지체부자유자들이 있는 곳에서 많이들 사역하신다. 속된 이야기로 거긴 경쟁이 없다. 그곳에서 5-10년 견디면 전문가도 되고, 현실적 보상이 없는 대신에 영적인 위로는 있는 것 같다. 소위 코리아타운 내 번듯한 담임목사는 없지만 사회의 그늘진 곳에는 미주감신 출신들이 많이들 계신다.

도시산업선교, 병원사역, 호스피스사역, 홈리스사역, 양로사역, 마약중독사역에는 저희 학교가 최고라 자부한다. 수많은 선교단체와 교류하고 후원도 하고 있으며, 멕시코지역 선교에 인턴을 보내려 하고 있다.

“보수적이면서 가장 앞서나가는”

- 여성안수는 한국 감리교가 가장 앞선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 한국 감리교는 아주 보수적이지만, 1930년대부터 여성안수를 주었으며, ‘요나서는 교훈집이다’라는 식의 성서비평학적 해석을 일찍부터 받아들였다. 처음에 간호사로 오신 분들이 결단하고 안수를 받는데, 멋있는 건 조선여성들도 그들과 같이 받았다는 점이다. 백인여자 안수도 조선에서 처음이었다. 미국에서도 없었다.

- 동성애 문제는 어떤가? 

연합감리교회(이하 UMC)내 한인교회들은 ‘동성애 이슈’에 대해선 관용적인데, ‘동성애 목사안수’는 부정적인 것으로 안다. 한인교회들은 동성애 안수는 결국 교회 분열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6년에 있을 UMC총회는 아주 심각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한인교회들이 갈라설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교단과 재산권 문제가 걸려있어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이에 반해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기감)로선 동성애는 큰 이슈가 아니다. 솔직히 기감에는 동성애가 없다. 우리에겐 여전히 생존문제가 중요이슈이다. 예수 믿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조금 더 나아가서 ‘어떻게 의미있는 삶을 사느냐?’가 이슈이지, 동성애와 같은 이슈는 아직 우리의 문제와는 조금 떨어져 있다.

-  UMC와의 관계는 어떤가?

UMC 교단과는 형제관계로 있지만, 현재 교단차원이 아닌 개교회 차원의 도움관계에 있다.

과거 우리 학교를 통해 UMC내 한인교회의 목회자들이 많이 갔지만, 이제는 여성목회자, 미국 신학자들이 많아져, 이제는 한국에서 와서 UMC목사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은 어쩔 수 없이 본교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상황이다.

- 감리교의 체계나 직분이 익숙치 않다. 

각 교회에 ‘구역회’가 있고, 그 위에 ‘지방회’가 있다. 지방회는 장로교의 노회 성격이다. 그 위에 ‘연회’를 두고 있는 데, 연회는 노회가 10여개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연합노회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연회 위에 ‘총회’가 있는데, 총회 최고 책임자는 감독회장이고, 연회 책임자는 감독, 지방회의 책임자는 감리사고, 구역회와 당회의 책임자는 담임목사이다. 교회 문제가 발생할 경우 지방회의 책임자인 감리사가 처리한다.

- UMC 등을 보면 목회자 파송제도가 있던데...

목회자 파송은 UMC에 남아있던 전통이다. 순회전도사라고 말타고 전도하는 사역을 있었다. 미국이 워낙 넓다보니 목회자들이 과로로 일찍 사망해 평균수명이 32-34세 정도였다고 한다. 넓은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 지방회(District)이다. 나중에 도시화가 된 다음에 연회(Annual conference)가 생겼다.

연회의 감독이 연회의 마지막날 목사를 파송하면 그대로 따라야 했다. 그래서 감리교 목사들은 ‘이사갈 준비’, ‘설교할 준비’,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기감의 로고를 보면 말 탄 웨슬리를 볼 수 있다. 웨슬리도 엄청난 양의 순회전도여행을 했다. 이 지역에서 설교하고, 조직하고, 떠나가고 식으로 하다보니 교회가 평신도 중심으로 설 수 밖에 없었다. 교회의 주인은 평신도였다.

저의 은사였던 존 캅(John B. Cobb, JR) 선생은 1965년도까지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7개 교회를 담임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최근 교단 지원없는 교회개척이 늘어나면서 감독의 파송권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 유동식 선생은 “감리교는 없고 장로교만 있다”고 비판하시기도 했다. 제도나 운영자체가 장로교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 존 웨슬리(John Wesley)

“자본주의는 사회의 악”

- 한인교회의 현주소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한인이민교회에서는 세습에 성공한 교회가 없다. 이게 건강한 것 같다. 한인교회는 한국교회처럼 16번 씩 보너스를 포함한 봉급을 받아가는 목사들이 없다. 한국은 과거 목사 자녀들이 장학금 받고 미국유학가고 흥청망청하던 때가 있었는데, 여기는 담임목사에게 넥타이하나 제대로 주지 않지 않는가? 전 이게 이민교회가 건강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가난하고 척박한 문화 환경 속에서 목사들이 풍요를 당연하게 여기는 환경자체가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찾아서가 아니라 상황에 몰려 성경이 원하는 종들을 만들고 있다. 여기는 주려고 하지도 않고, 받으려고 하지도 않는, 그래서 목회에만, 하나님에게만 우리의 마음을 모으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나 안디옥 학파 모두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난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로부터 좋은 신학이 나왔다.

- 그래도 교회분쟁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교회 내 싸움이 많은 것은 어디나 다 있는 것인데, 그건 목사의 품성을 변화시키거나 하나님의 연단의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목회자가 조용히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면 교인들의 축복에 대한 가치관이 서서히 바뀌어 나갈 것이라 본다.

고린도 전서 13장을 해내고 산다면 그 사람이 제일 복 받은 사람인 것 같다. 당연히 내가 대접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분한 것이지, ‘종질하러 보내신거다’라고 생각하면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 곧 세월호 1주기가 다가온다. 교회의 대사회적 책임에 대한 생각이 듣고 싶다. 

기감은 분명히 대사회적, 정치적 책임 같은 것에 약점이 있다. 하지만 세월호 문제만 본다면 안전불감증에 걸린 한국의 사회 병리적 현상의 일환이라고 본다. 고도성장을 통해 윤리가 깨진 사회총체적 문제이다.

이제는 부활의 소망을 이야기해야 할 때이다. 죽은자들에 대한 부활의 소망과 상처를 입은 부모들이 투쟁이 아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것에 신경을 써야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목회철학을 정리해 달라.

특별한 목회철학은 없다. 다만 우리는 구호나 선언이 아닌 고통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몸으로 살아줄 필요가 있다.

▲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z)의 <해방신학>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z)는 ‘해방신학’을 쓰신 분으로,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강의했지만, 마지막엔 자기 교구로 돌아가 가난한 사람과 같이 살았다. 그의 말년의 영향력은 엄청나 5천명의 대학생들이 컨퍼런스할 때 학교를 중단하고 오지에 들어가 생산공동체를 이끌었다.

가난하지만 인간의 품위를 지키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그를 통해 힘을 받아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자기발로 일어서면 그게 혁명이다.

무소유를 하면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걸 못해서 문제지. 자본주의는 악한 요소가 있다. 어떤 이들은 하루에 만불 벌고, 어떤 이는 50불 버는 사회는 말이 안된다. 이건 기본적으로 깨져야 된다.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살 수 있는 길이 뭐냐?’에 관심을 둬야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일러주고 싶어했던 게 그것 아닌가? 당신은 빈손으로 다니고, 제자들한테 두벌 옷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다. 오늘 내가 입은 옷도 속옷만 빼면 다 주워 입은 건데,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은 없다. 처음에 남이 주는 옷을 입을 때에는 쪽 팔리고, 자존심 상하고, 벼룩 옮을 것 같은데, 그걸 빨아서 입기 시작하면 전혀 문제없다. 가톨릭 신부님들이 우리보다 강한 건 딱 하난데 그건 ‘무소유’이다.

양재영 기자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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