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평화가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
정의평화가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
  • 양재영
  • 승인 2015.05.04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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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월터 브루그만,세월호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 월터 브루그만 박사를 주강사로 진행된 2015년 풀러포럼 © <뉴스 M>

풀러신학교는 4월 30일(목)부터 3일간 세계적인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박사를 강사로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정의, 은혜, 율법(Justice, Grace, and Law in the Mission of God)"이란 주제의 풀러포럼을 개최했다.

월터 브루그만 박사는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성서학자 중 한명이다. 백 권이 넘는 책과 논문을 저술했고, 수많은 모임에 초청된 탁월한 강사이다. 유니온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세인트루이스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에덴신학교(1961-1986)와 콜럼비아 신학교(1986-2003)에서 가르쳤고, 현재는 콜럼비아신학교 구약학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다. 주로 수사학적 비평(rhetorical criticism)을 방법론으로 사용하는데, 그의 역작 <구약신학>은 수사학적 비평으로 구약을 읽어낸 책이다. 가장 많이 읽힌 책은 <예언자적 상상력>과 <시편의 메시지>이다. United Church of Christ에서 안수 받은 목사로 현재 신시내티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브루그만 박사는 이번 포럼을 통해 정치, 사회경제뿐만 아니라 사법적인 지평에서 있어서도 점점 더 복잡해져가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은혜와 정의, 율법간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명료한 통찰을 제시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정의, 은혜와 율법을 상호 배타적으로 바라봤으며, 교회와 사회는 이러한 점에 대한 혼동 속에 있다”며 “정의란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이끌어 갈 것이다’이며, 올바른 삶은 은혜와 율법 둘 다를 요구하며, 은혜와 율법은 대립하기 보다는 ‘은혜를 통해 율법이 완성된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고 주장했다.

브루그만 박사는 이번 풀러포럼을 통해 최근 퍼거슨(Ferguson) 사건과 볼티모어 사태, IS 세력의 급부상, 미국 사법시스템의 상업화와 은혜와 율법 관계에 대한 혼동 속에서 ‘정의와 은혜, 율법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심리학적 통찰’을 제공했다는 평이다.

전 템플대 간사이자 필라델피아에서 빈민선교를 하고 있는 이태후 목사는 “브루그만 박사는 구약성경의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를 단순히 신학적 사유에 머물지 않고 이집트와 로마제국의 비유로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들, 특히 경제적 불평등과 최근 볼티모어 폭동에서 보여준 인종차별 등으로 확대했다”며 “그는 이러한 사실은 과거 이집트와 로마제국에 압제당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현실이었으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출애굽을 통해서 바로의 통치와는 전혀 다른 통치를 보여주셨고,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압제와는 다른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줌으로 성경이 말하는 정의와 긍휼과 율법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제시했다”고 평했다.

그는 포럼 마지막 컨퍼런스를 언급하며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이런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과 율법에 대해서 창조적으로 상상하지 않고, 이러한 창조적 상상력을 어떻게 우리사회에 적용할 것인가에 고민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볼티모어와 같은 폭동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 브루그만 박사의 주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전했다.

보스턴 디딤돌 교회 최용하 목사는 “한국교회 상황에서는 듣기 어려운 정의평화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걸고 진행된 컨퍼런스 자체가 좋은 기회였다”며 “흥미로운 건 한국교회 입장에서는 보통 주강사가 결론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마지막을 흑인 활동가로 하여금 결론 내리도록 한 진행이 아주 좋았다”고 평했다.

▲ 풀러포럼 마지막 날 마크 래버튼 총장과 월터 브루그만 박사가 덕담을 나누고 있다 © <뉴스 M>

“측은지심과 세월호” 

한편 마운티뷰 메노나이트 교회 공동목사이자 정의평화제자학교(ReconciliAsian) 대표인 허현 목사는 풀러포럼 후 월터 브루그만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허현 목사와 월터 브루그만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 바쁜 일정 중에 인터뷰에 쾌히 응해주셔서 감사 드린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은 관계로 몇 가지 짧은 질문을 드리겠다. 먼저, 작년에 박사님의 책 <Reality, Grief, Hope: Three Urgent Prophetic Tasks >이 출간된 것을 축하드린다. 제국 안에서 제국의 방식에 저항하는 예언자적 삶에 관한 책이라고 알고 있는데, 한국인 독자들을 위해 그 책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달라. 

▲ 풀러포럼 마지막 날 풀러신학교 총장인 마크 래버튼과 월터 브루그만 박사가 덕담을 나누고 있다 © <뉴스 M>

예언서를 연구하면서 깨달은 내용이다. 우리 미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환영(illusion)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예언자적 책무는 실재(reality)를 드러내는 것이다. 환영은 실재를 부정(denial)하고 절망(despair)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이러한 상황에도 마찬 가지로 각각 애도(grief)와 소망(hope)이 예언자적 책무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데올로기에 의한 “환영-부정-절망”의 사회에 “실재-애도-소망”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예언자적 책무이다.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그렇게 저항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처했던 상황이 오늘날과 같이 환영을 붙잡은 사회였기 때문이다.

- 탁월한 통찰이다. 랍비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은 “예언자는 지금이 어느 때인가를 아는 자들이다”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각자의 상황 속에서 예언자의 역할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르는 이들인 교회가 때를 분별하는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 한 가지만 이야기 해 달라.

이렇게 상상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만약 하나님께서 가시적으로 인간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면, 그 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고, 뭐라고 말씀하실까?

내 생각에 미국 사회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너희들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 위에 있다’고 하실 것이다. 미국 사회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 물론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하실 것(newness)을 약속하셨지만, 지금은 그 때가 아니다. 우리의 세상은 복음서에 나오는 하나님이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조직되어 있다.

- 하나님의 통치에 의한 새로운 사회, 새로운 질서를 상상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 당신의 책 <예언자적 상상력>은 많은 한국 신학자와 목회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나도 신학적 틀을 형성하는데 그 책의 도움이 컸다. 그 책에서 “예수는 소외된 자들과 연대하면서 측은지심(compassion)을 갖게된다. 측은지심은 [그들이 받은] 상처가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선언하기 때문에 [로마제국과 당시 사회에 대한] 하나의 급진적 비판 형식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측은지심이라는 개념과 실천이 당신의 신학에 있어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

측은지심은 내 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로마제국은 다른 모든 제국과 마찬가지로 측은지심을 살아낼 수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도 측은지심을 살아낼 수 없는 사회이다. 어떤 공동체나 사회도 측은지심을 실천하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렵다. 측은지심이 없으면 모든 관계는 두려움을 실천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두려움에 기초한 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측은지심은 두려움의 악순환을 끊는다.

-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그렇다. 지난 수요일에 있었던 채플에서 내가 설교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는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우리는 완전한 두려움이 사랑을 내어쫓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했다.

- 측은지심(compassion)과 관련하여 한 가지 사건이 생각난다. 작년 4월 16일에 한국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304명이 배와 함께 가라앉았고, 그 중에 280여명은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그 사건에 대해 알고있는가. 

물론 잘 알고 있다.

- 한국 사람들을 비롯한 한인이민자들까지도 방송을 통해 아이들이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 트라우마는 한국사회를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지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 같다. 부모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진상규명의 노력을 보이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정부의 불의에 항의하는 시위대에게 잔인하게 대응하고 있다. 상당수의 국민들도 그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 미국 정부가 볼티모어에서 벌이고 있는 일과 같은 것이다. 진실을 가리려고 애쓴다.

나는 그렇게 많은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경험한 사회에 가해지는 충격을 상상하기 어렵다. 부모들은 사건의 진상을 알아야만 한다. 아이들을 잃은 부모와 가족들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교회는 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회복해야 하고 그것이 제국에 저항하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정부가 진상규명을 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긴급하게 요구되는 일이다.

불의(injustice)가 현재하는 곳을 찾아내어 복음의 사람들이 그 불의에 개입해 변화를 초래해야 한다. 미국에도 수많은 불의가 일어나고 있지만, 인종차별(racism)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없다. 교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 어떻게 인종차별을 하고 있는지, 또한 우리가 교회로 모였을 때 어떻게 인종차별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변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자비가 필요하다. 한국 교회가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는 정의와 평화 사역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렇게 눈이 열려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월터 브루그만 박사와 허현 목사가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 <뉴스 M>

 

질문이 끝날 무렵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의전을 담당하는 사람이 큰 소리로 오찬자리에 가야 한다고 알려왔다. 급하게 자리를 뜨면서도 깊은 포옹으로 작별을 고하는 그의 따듯함이 대화가 주는 뜨거움 이상으로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인터뷰: 허현 목사 / 마운틴뷰 메노나이트교회 공동목사,
기사 정리: 양재영 기자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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