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는 인생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는 인생
  • 김기대
  • 승인 2015.05.12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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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인생에는 범퍼란게 없어!

영화 <보이후드>(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2014년)는  무려 12년이란 기간 동안 매년 조금씩 촬영하여 만든 영화다. 주인공 메이슨(엘라 콜트레인 분) 이 6살인 2002년부터  18살 될 때까지의 성장 과정을 영화에 담았다. 전체 상영시간(165분)을 단순히 12로 나누어 보면 매년 14분 정도의 분량만을 촬영했다는 이야기다. 감독이나 배우의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아버지 역을 맡은 에단 호크에게 자신이 도중에 죽으면 영화를 완성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후문이 있다.  신뢰가 무너지는 세상에서 신뢰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영화다.

<보이후드>는 2014년 제64회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는 평점  9.4를, 메타크리틱(Metacritic)에선 100점을 기록했다. 한국 네이버 영화의 전문가 평점은 9.5를 기록했다.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선전이 예상되었으나 어머니 역의 패트리샤 아퀘트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데 그쳤다.  미국 아카데미에 앞선 골든 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오스카에서도 그만한 성적을 예상했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수상이 영화의 수준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좋은 영화다.

메이슨과 누나 사만다 남매는 이혼녀인 엄마(패트리샤 아퀘트 분)와 함께 살고 있다. 엄마는 자기 계발과 자녀 양육이라는 두 무거운 짐 때문에 허덕이지만 가끔씩 만나는 아이들의 아빠(에단 호크 분)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그렇듯이 '영원한 자유인' 으로 살고 싶어 한다. 부부의 이혼 사유가 짐작되는 설정이다. 엄마는 가정과 인생이 안정되었으면 좋겠고, 아빠는 세상이 정해준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 텍사스라는 배경, 즉 부시 전 대통령의 고향에서 아빠는 가끔씩 만나는 아이들을 앉혀 놓고 부시와 이라크 전을 비판한다. 그렇다고 그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조목조목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선술집에서 정치논쟁을 하다가 주먹다짐까지 벌이는 사람들의 거친 말본새처럼  그냥 자기 생각을 되는 대로 쏟아 놓는다.

아이들과 볼링장에 간 아빠는 "인생에는 범퍼란 게 없어"라고 말한다.  볼링 레인에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볼링공이 양쪽 홈에 빠지지 않도록 안전장치(범퍼)가 있다. 그러면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던진 공이 이쪽 저쪽 부딪히다가 결국에는 핀 몇 개라도 쓰러뜨리게 된다. 메이슨이 자꾸 공이 홈에 빠지자 범퍼를 올려달라고 아빠에게 짜증을 냈을 때 아빠가 한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인생이 빗나갔을 때 그를 지켜 주고 다시 원 궤도로 돌려 놓을 장치는 없다는 말이다. 그냥 빠지면 빠진 대로, 핀을 쓰러뜨리면 쓰러뜨린 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철없는 아빠는 즐겁게 터득해간다. 

안정을 찾는 사람은 계속 헤매고,  헤매던 사람은 안정을 찾고

엄마는 뒤늦게 대학공부를 하면서 교수와 재혼을 한다. 둘의 알콩달콩한  연애 장면은 없다. 엄마는 안정이, 역시  두 아이를 양육하고 있던 두 번째 남편은 가족이 필요했을 뿐이다.  남매와 남매가 만나  자녀가 4명이 되었어도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은 사이 좋게 잘 지낸다. 반면 부부 사이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특별한 갈등요소는 없지만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  이미 교수인 두 번째 남편에게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새 아내가 항상 부족해 보였고, 교수인 그에게 아이들은  성장을 거부하는 철부지로 보였을 터, 결국은 알코올을 동반한 폭력이 행사되고 엄마는 두 번 째 이혼을 한다.  

가끔씩  만나는 아이들의 생부는 항상 철이 없다.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한답시고 과년한 딸이 부끄러워 해도 개의치 않고 떠들어 댄다. 딸 사만다 역을 맡은 로렐라이 링클라이터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딸이다. 극중 아빠의 낯뜨거운 성교육에 사만다가 부끄러워 하는 장면이 매우 자연스러운데 실제 아빠인 감독이 지켜 보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설정이 부끄러운 사춘기 소녀의 연기가 아닌 진솔한 표정이다..

이러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성장한다. 대학에 시간 강사 자리를 얻은 엄마는 이번에는 교수가 아니라 퇴역군인인 학생과 세 번 째 결혼을 한다.   열등의식이 많던 이 남자도 결국은 세 식구와 헤어진다. 세 번 째 남편의 자긍심은 자신 소유의 집으로부터 온 것이었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집값이 폭락하자 그는 자긍심을 잃는다.

반면 평생 철없을 것 같던 친아버지는 새 연인과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다. 새롭게 메이슨의 외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사람들은  16살 생일을 맞이하여 성경과, 사냥용 엽총을 선물 받는다.  텍사스 다운 장면이다.

12년 동안 찍으면서 브라운관  TV와 시대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과 게임들, 이라크 전쟁과 대통령 선거 장면 등이 그 때 그 때 나온다. 영화를 위해 당시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건들이 일어날 때 직접 찍은 것이다.  부시 이후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스마트 폰이 나오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배우들은 살아가던 당시의 사건들 속에서 시대의 산물들과 교류한다.

▲ 메이슨은 머리를 깎으라는 의붓 아버지의 간섭이 못 마땅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메이슨은 대학에 진학해서 친구들과 떠난 여행지에서 영화는 끝난다. 함께 여행간 여자 친구에게 왜 어른들이 우리 삶에 개입하는지 알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잡으라고 하는데 오히려 순간이 우리를 잡고 있다고 말한다. 살아가는 그 순간은 성장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순간은 그 시간으로서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다.

소년의 성장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소년의 성장영화가 아니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성장기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신들이 다 성장했다고 믿고 아이들의 삶에 개입하려 한다.  자신들은 되는 대로 살아가면서 아이들에게는 모범이 라고 착각한다.

싱글맘이라는 자책감에 아이들에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엄마는 생활이 안정되어 가면서 아이들을 향한  잔소리를 늘인다.  뭔가 이루었다고 하는 성취감이 스스로를 모델 역할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진학하자 자신의 삶에서 이제 남은 건 장례식뿐이라고 한탄하는 장면처럼 엄마에게 인생의 목표는 안정과 성취였지만 다 이루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는 앞으로 다가올 외로움이 두렵다.  

안정에의 희구도 성취욕망도 없는 아빠에게는 오히려 안정이 찾아오는 장면은 인생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신비라고 우리들을 설득한다. 교수였던 두 번 째 남편은 규범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것이  자신은 물론 다른 이들에게는 독이 되었다.  성실한 교도소 간수로 열심히 집을 장만한 세 번 째 남편은 경제 위기로 모든 것을 잃는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메이슨은 아버지에게 "지금까지의 그 모든 게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거에요?"라고 묻지만 아직도 성장 중인  아버지인들 답을 알리 없다. 또한 영화 속 다른 대사처럼 인생이란  예정 되어 있는 데로 굴러가는 지루한 일일 뿐이다. 이처럼 인생이란 목적 없이 지루함과 지루함이 만나다.  그 순간 순간이 목적이고 순간과 사건은 서로 횡단하며 의미를 짓는다. 그것이 신학 용어의 옷을 입으면 예정이 된다.  

인생이란 끝까지 부분이 모여 전체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어린아이만 성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끝까지 성장하다가 죽어간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13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집니다.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부분과 희미한 거울, 어린 아이가 같은 짝이라면 마주봄과 온전함과 어른이 한 짝이다.  어른이 되어야  온전한 전체를 알 수 있는데 그 날은 언제 일지 알지 못한다.  성장과정을 통하여 조금씩 터득해 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경험되는 부분도 결국은 전체의 일부이므로 순간의 삶이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그의 책 <사도 바울>(새물결, 2008년)에서 '모든 차이들은 그들에게 은총처럼 도래한 보편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차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모두 은총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차이들은 이처럼 전체를 이룬다.  알랭 바디우는 사도 바울에게서 이러한 철학을 찾아내며 다음 구절을 인용한다.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이 없는 악기도, 각각 음색이 다른 소리를 내지 않으면, 피리를 부는 것인지, 수금을 타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 전서 14:7)

어른인 채, 모두 터득한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직 어리다는 것의 반증이다. 범퍼 없이 이리 저리 일탈하며 사는 삶 가운데도 항상 신비는 있어왔고,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사는 삶에도 상실은 찾아온다. 화려한 일상이든 추레한 순간이든 진솔한 사랑이 순간을 영원과 연결시켜주는 고리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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