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재산의 사유화, 대안을 찾아서
교회 재산의 사유화, 대안을 찾아서
  • 박득훈
  • 승인 2007.02.03 0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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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교회 재산이 사유화되고 있다는 비판을 듣게 된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00년 서울의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가 담임목사직을 아들에게 세습한 사건이었다. 몇 해 후 서울의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는 변칙적으로 세습을 했다. 수도권에 그 교회의 담임목사의 아들이 시무할 수 있도록 대형교회를 건축하는데, 소망교회 재정에서 80억 원을 지원키로 결정했다. 문제는 그렇게 공식적으로 결정되었을 땐 이미 그 돈이 지출된 다음이었다는 점이다. 담임목사와 재정담당 장로 등 최측근의 결정으로 실행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기독교 신문 기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소망교회 당회 서기 장로는 당시 문제를 제기한 교회개혁실천연대 측에 해명하는 과정에서, 자기 교회 예산 지출 항목의 약 40%까지 예비비로 잡혀 있다고 시인했다. 이는 교회 재정의 수입과 지출이란 것이 워낙 불확실하다 보니 불가피한 것이라고 설명 아닌 설명을 하였다. 사실상 예비비는 담임목사와 그 측근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공적인 교회 재정이 몇몇 사람의 손에 의해 사유화될 때 대형 비리 사건은 터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의 또 다른 초대형교회인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31억 원의 교회 재정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750만 원을 선고받은 것이 작년 4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사건이다. 그는 측근들과 결탁하여 방송사 로비 자금, 업무상 배임 및 위증 혐의 관련 변호사 비용, 감독회장 선거 비용, 신문 광고 및 변호사 선임 비용, 불륜 의혹 관련 합의금 등을 교회 재정에서 지출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 목사는 그러한 재정 지출이 해당 교회의 절차상 하자가 없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정은 교인 전체의 사전 결의 절차를 밟았다고 볼 수 없으며, 그 지출이 교회 본래의 목적과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적법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한편 담임목사의 명예는 교회의 명예와 별개의 것이기 때문에 교회 재정으로 담임목사의 명예훼손과 관련한 재판에 드는 비용을 교회가 부담한 것도 명백히 불법이라고 판정하였다. 교회와 교회 재정은 결코 사유화돼선 안 된다는 점을 일반 법정이 밝힌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는 대오각성하여 하루빨리 이런 불명예스러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한 열망을 가슴에 품고 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병폐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의 공유

교회 재산의 사유화를 척결하려면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다 함께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병폐인가를 뼈저리게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병을 고치려면 우선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암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말기에 이르기까진 자각증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정말 심각한 위기는 병을 앓고 있다는 점보다는 아직도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의 심각성에 대하여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병을 원천적으로 치료하려고 하기보다는 적당히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에서 멈추려고 한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진통제를 복용함으로 잠시 고통을 덜어보려고 하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일반인들은 교회 재산의 사유화에 대하여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로 말미암아 교회의 명예와 권위는 형편없이 추락해왔다. 그런데 교회는 여전히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 물론 한국 개신 교회는 드디어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는 작년 통계청의 종교 인구 조사 발표에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 원인을 깊이 파헤치고 정면으로 직면하여 고쳐보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대로 31억 원 횡령 등의 범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목사는 자기 교회의 대부분의 교인들로부터 여전히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 교회가 속해 있는 교단의 헌법에 의하면 해당 교회를 감독하는 회의의 장은 사회 법정에서 실형을 받은 목사를 교회 재판 기구에 기소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관련 목사로부터 짤막하고 형식적인 사과문을 받았다는 것을 근거로 그에 대하여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그가 해당 교단의 발전에 미친 공과를 참조하였다고 밝혔다. 반면에 여전도사와의 불륜으로 실형을 받은 목사는 형이 더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기소하였다. 한국 교계 지도자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해당 교회가 속해 있는 교단의 신학대학교와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이에 항의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 외에 극소수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인터넷 교계 신문들을 통해 항변의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교회 재정 80억 원을 성도들 모르게 아들 목사를 위해 지출케 한 아버지 목사는 무사했을 뿐 아니라 그 사건 이후 해당 교단 총회에서 공로상을 받고 그 교회의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이것이 한국 교계의 슬픈 자화상이다. 한국 교회가 교회 재산의 사유화라는 깊은 병폐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 재산의 사유화가 얼마나 무서운 범죄행위인가를 마음 깊이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만물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사와 찬양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린 재물로 형성된 교회 재산은 더더군다나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처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오만 방자한 심각한 범죄이다. 그 심각성을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성경의 교훈을 보자

이스라엘에 왕정이 시작되기 직전에 엘리라고 하는 노제사장이 있었다. 그가 나이 들어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제사장직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불량배요 망나니였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몰랐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성껏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 고기를 삶을 때, 시종을 보내 삼지창으로 찍어내 자기 것으로 삼았다. 그것도 모자라 고기를 구어 먹고 싶은 생각이 들면 아예 기름도 태우기 전의 생고기를 강제로 갈취했다. 그런가 하면 제사 드리는 천막 입구에서 일을 돕고 있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하였다. 하나님의 집에 있는 고기든 여자든 다 사유화한 것이다.

아버지 엘리는 아들들을 불러 나름대로 책망한다. 하지만 아들들은 들은 척 만 척이다. 이에 하나님은 사자를 엘리에게 보내 그의 아들들이 범한 죄가 어떤 죄인지, 아들들의 범죄를 단호하게 다루지 못하고 결국 용인한 엘리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분명하게 지적한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나의 처소에서 나에게 바치라고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멸시하느냐? 어찌하여 너는 나보다 네 자식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나에게 바친 모든 제물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다가, 스스로 살찌도록 하느냐?’

결국 두 아들과 엘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두 아들은 같은 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하나님의 법궤는 그만 빼앗긴다. 아버지는 그 비보를 접하는 순간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는다(삼상 2:12-36; 4:1-18). 한 가문이 통째로 몰락하는 비참한 순간이다.

신약에도 이런 전통은 그대로 이어진다. 그렇게 온유하신 예수님이 가장 격렬하게 분노하신 곳은 역설적으로 바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였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외치셨다(요 2:16). 또한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고 꾸짖으셨다(마 21:13).

이는 사실상 예루살렘 성전 지도자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제물로 바칠 짐승의 매매와 성전세를 드리는데 필요한 동전의 환전업을 허용한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제도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성전 예배를 빙자한 사적 이익을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돈에 눈이 먼 장사치와 강도의 짓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성전을 사유화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교회 재산을 사유화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인류 역사가 발전되어오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범죄를 다루시는 방법이 더 은혜로워진 것이 사실이다(요 1:14-18). 마침내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궁극적으로 처리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셔서 대신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게 하신다.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시기 위함이시다. 그렇다고 죄 자체가 죄 아닌 다른 것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죽으심은 역설적으로 죄의 심각성을 우리에게 깨우쳐주시는 사건이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모든 죄를 용서해주심으로 우리가 진실로 회개하고 죄에서 단호하게 돌이키길 원하시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올해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 뜻 깊은 사건을 의미 있게 회상하고 기념하는 길은 대대적인 대중 집회를 열어 교회의 단합을 내외에 과시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골방에서 교계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각자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는 심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회개해야 할 큰 죄목 중에 하나가 바로 교회 재산의 사유화와 그 사유화를 용인한 죄이다. 진실한 회개야말로 한국 교회가 다시 일어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박득훈 / 언덕교회 목사·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이 글은 한국에서 발간되는 <공동선>에 실린 것으로, 저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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