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복음’의 허튼 신앙
‘내가복음’의 허튼 신앙
  • 강만원
  • 승인 2015.06.21 05:2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강만원 ⓒ <뉴스 M>

이른바 구복 신앙에 찌든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에 대해서 매우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한다. 하나님을 감동시킬 만큼 간절하게 기도하고 끈질기게 매달리면 반드시 기도한 대로 응답받는다는 것이다.

열심히 기도만 하면 고질병도 고치고, 돈도 벌고, 시집 장가 잘 가고, 자식들이 출세하고... 만사형통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기도 응답의 비밀이 이미 성경에 자세히, 그리고 반복해서 제시됐다고 자신만만하게 소리친다.

예를 들면,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에서 보듯이 과부의 끈질긴 간청을 마다하지 못하고 마침내 한을 풀어주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간절히 기도하는 자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그뿐이 아니다. ‘축복의 언약’인 구약까지 굳이 들먹일 필요 없이 신약에서도 그런 식의 응답의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구절을 들자면, 거의 모든 교인들이 즐거이 애독하고 암송하는 마태복음 7장 7-8절이 아닐까?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눈여겨 읽어보면 이에 반하는 구절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지만, 이에 대해서 한국 교회는 의미 있는 해석을 하려들지 않는다. 이미 기도와 응답의 상관관계가 종교적인 도식으로 단단히 설정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나는 구절은 예외적인 경우로 간단히 얼버무린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자의적인 성경 해석이 그리스도 신앙의 바른 의미와 가치를 훼손시키며, 사랑이 요체인 기독교 신앙을 이기적인 신앙으로, 자기 축복을 위한 구복 신앙으로 타락시킨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천박한 맘모니즘의 신당神堂으로 전락한 것은 기독교 신앙의 왜곡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며 결코 우연이 아니다. 본문은 “아버지는 자식이 구하는 대로 무엇이든 주신다.”는 허튼 약속이 아니라,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7:11)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며, 여기서 말씀하신 ‘좋은 것’은 세상의 재물, 건강, 명예 같은 육신의 소욕이 아니라 진정 좋은 것으로 성령이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십자가 수욕을 앞두신 예수께서 ‘핏방울이 떨어지듯이’ 진땀을 뚝뚝 흘리시며 처절하게 기도하셨다. 그 땀은 극단의 긴장 상태에서 일어나는 병리적인 증상이며, 몸속에서 스며나는 끈끈한 진땀으로 실제 붉은 핏빛을 띤다고 알려졌다.

‘간절한 기도’에 대해 서술하면서 아마 성경을 통틀어 이만큼 자극적이며 절실하게 묘사한 구절이 없는 것 같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땀이 피처럼 붉게 물들 수 있으며, 얼마나 절박했으면 꼬박 밤을 지새우면서 세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며 극한의 기도를 올리셨을까?

그때 예수께서 “아버지여, 죽음의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기도했던 대로 죽음의 잔은 지나가지 않았다. 기도를 마친 다음 날 새벽 이른 시간부터 예수는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아야 했고, 가시 돋친 채찍을 맞으며 살이 찢기는 끔찍한 고통을 당해야 했으며, 더러운 나무에 매달려 못에 박히고 창에 찔린 채 비참하게 목숨을 잃어야 했다.

예수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가 아니신가? 그런 예수께서 “죽음의 잔이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라며 그토록 처절하게 기도하셨는데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았다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을 잃어버린 ‘사이비 하나님’이라는 말인가?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면 기(리사)독교(그리스도교)는 존재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다. 유일신을 믿는 3대 종교 가운데 기독교는 유대교나 이슬람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완전한 인성과 더불어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으로 믿는 그리스도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기도의 응답, 이를테면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분명한 진리를 깨우쳐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의 진정한 응답은, 우리가 ‘주체’로서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도구’가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시는 것이 기도의 진정한 응답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다만 제게는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셨던 것이다. 요컨대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우상에게 절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떼쓰는 천박한 탐욕의 기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도는 무엇인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바른 해석의 단초는 ‘먼저’라는 부사이다. 즉, 구복 신앙에서 흔히 강조하는 것처럼 세상의 재물이나 건강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가 먼저라는 것이며, 우선순위로 ‘하나님 나라’를 선택한 자는 마음의 소망 자체가 변하기 때문에 더 이상 세상의 가치를 ‘우선순위’로 탐닉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재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세상의 소유를 구하는 탐욕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유’에 마음을 다해서 감사하며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거듭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기도의 응답으로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간단히 말해서 세상에 속한 자가 타락한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로 변화시킨다는 말씀이 아닌가? 세상에 속한 자로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탐욕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로서 성령의 소중한 열매를 맺는 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욕망의 절제가 선행돼야 하며, 육신의 쾌락과 성공을 위한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서 쓰임 받는 영적인 복을 갈망해야 한다.

결국, 나를 위한 욕망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순종의 기도가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도가 돼야 하며, 그 기도는 모름지기 ‘사랑의 기도’가 돼야 한다. 진정한 응답은,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능력과 믿음, 인내와 용기를 주시는 것이다.

목사와 평신도 가릴 것 없이 구복 신앙의 굴레에서 쉴 새 없이 쳇바퀴 돌고 있는 한국 교회가 타락의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보다 구복 신앙의 허튼 욕망을 하루 속히 버리고 성서적 신앙의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구복 신앙은 단지 사실에서 벗어난 일탈의 지엽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목사를 축복의 통로라며 사실상 신적 존재로 추앙하면서 마침내 ‘목사 성직주의’의 신앙적(?) 배경이 되었고, 이로 인해 한국 교회는 전대미문의 타락을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 또한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강만원 / 종교 철학 부분 전문 번역자, 작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calvary4all 2015-06-21 12:19:32
위에 인용하신 누가복음 11장 13절의 말씀 중에 구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은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을 성령 자체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깊이 묵상해 보면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하실 때 이루어지는 모든 성령의 능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내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지혜의 영, 치유의 영, 보호자, 도움을 주시는 분의로서의 성령님께서 내안에 계실 때 모든 것이 나에게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끈질기게 그리고 담대하게 기도하라는 말씀을 또한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것 뿐만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에 관심이 있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결과가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으로 저는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