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7관왕’인가?
목사는 ‘7관왕’인가?
  • 강만원
  • 승인 2015.06.2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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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강만원 ⓒ <뉴스 M>

심각한 중병에 걸려서 열이 나는 사람에게 해열제를 복용시킨다고 병이 낫는 것이 아니다. 암에 걸려서 살이 빠진 사람에게 기름진 음식을 먹여서 살을 찌우는 것은 보양이 아니라 극약 처방이다. 대증요법으로는 병을 고치지 못하며,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소중한 생명을 잃고 만다.

전병욱의 성추행에 대해서 더럽고 추하다며 비난하고, 오정현의 비리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한국 교회의 타락한 목사들에게 욕설을 거칠게 퍼붓는 것은 나름대로 불의를 고발한다는 자긍심으로 심리적인 자기 위안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결코 불의를 척결하는 근본 대책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니 지금 이 시간에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제2, 제3의 전병욱과 오정현이 한국교회에서 버젓이 활개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타락시키는 비리 목사들을 척결하기 위해서 법적 공방이나 윤리 제고가 그런대로 유용한 대증 요법이 될 수 있겠지만, 사실상 한국 교회에 만연한 비리 목사들을 생각하면 그런 처방은 시쳇말로 ‘언 땅에 오줌 누기’에 지나지 않는다.

샘물의 근원이 심각하게 오염됐는데 보기에 괜찮다고 세균이 득실대는 샘물을 마실 수 있는가? 이미 더럽게 오염된 샘물을 허구한 날 정수해서 마시겠는가? 정수한들 오염수가 깨끗해진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정수하는 것은 쓸 데 없는 낭비일 뿐이다. 더러운 샘을 완전히 봉쇄하고 맑은 샘을 다시 찾아야 한다.

▲ 근원이 맑아야 깨끗한 샘물이 나온다.목사는 샘물의 근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를 타락시킨 비리 목사를 척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근본을 뿌리부터 제거하는 것이며, 그것은 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목사의 절대 권력을 타파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볼 일이 있어서 오늘 몇 교회의 정관들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개(별)교회의 회의가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 운영위원회의, 선교위원회의, 재정회의, 인사위원회의를 포함해서 어림잡아 예닐곱 되는데, 모든 회의의 의장은 예외 없이 담임목사다.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장악한 유신 독재를 넘어서 이른바 절대왕정의 전권 독재라는 말이다.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헛헛했다.

지금이 도대체 어느 때인데, 절대왕정 시대의 구습을 교회에서 그대로 답습하는지 한 마디로 어이 상실이며 망연자실이다. 이러면서 무슨 개혁을 입에 담고, 갱신을 감히 주장하는가? 비리의 근원을 그대로 뇌둔 채 무슨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것이며, 언감생심 주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떠드는가?

어설픈 말장난이나 화려한 언어유희로 교회가 간단히 개혁이 될 것 같았으면 교회는 이미 수백, 수천 번 개혁됐을 테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매 순간 개혁이 이뤄지면서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참담한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단언컨대 목사의 절대 권력을 배격하지 않는 한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로 오롯이 회복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오직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고 재정(영접)에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던 이유는, 사도들이 교회의 재정, 인사, 행정의 제반 사역을 주도하는 한 교회는 타락할 수밖에 없으며 그리스도의 교회, 이를테면 성도의 교회로서 본질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들만큼 목회에 자질이 없고 권세가 없어서 마지못해 교회권력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하는가? 예수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함께 살면서 온 몸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배웠던 사도들은 자기 생명을 바쳐서 교회를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권력’을 배설물처럼 여겼던 것이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영세 교회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그럴 만한 규모가 되지 않는 교회가 허다한 데 그런 주장이 일반론이 될 수 있느냐며 수많은 사람들이 반론을 펼친다. 그건, 논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우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만한 규모가 되지 않는 미자립 교회에 무슨 권력이 있어서 분산이나 포기를 말하겠는가.

가난한 영세 교회에서 목사가 애써 사역하는 것은 권력 행사가 아니라 헌신이며 봉사다. 그들이 목회에 전념하는 것을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격려하고 힘을 북돋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목사 한 사람이 어려운 살림에서 전세금 빼고 여기저기 빚을 내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 밝히고 싶다. 

자칫 ‘돈 내고 돈 먹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자립 가능성은 1% 미만이라지만 어쨌든 교회가 부흥하면 로또 당첨 되듯이 단번에 대박이 나고 수년 동안 교인이 없으면 빚에 몰려 쪽박 차는 구조로는 결코 ‘목사 의존 신앙’을 타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재산을 들여 투기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지분을 달라는 데 사실상 교회를 창업하면서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던 교인들 입장에서 솔직히 무슨 근거로 그런 요구를 제지할 수 있는가.

이제 교회 개척의 패러다임도 근본부터 달라져야 한다. 목사가 사기업처럼 교회를 창업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힘을 합쳐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 ‘목사 일인 체제’에서 벗어나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목사 독재는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며, 사이비 교회인 ‘목사교회’의 1인 목회일 뿐이다.

교회 개혁의 진정한 출발은 목사의 역할을 분명히 자리매김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목사는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말씀 사역자이며, 교회의 지배자가 아니다. 교회는 성도의 은사에 따라서 역할이 고루 분담돼야 하며, 반드시 성도가 교회를 다스리는(봉사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국 교회는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으며, 질병의 근원은 목사의 절대 권력이다.

개혁 진영에 많은 목사들이 있지만, 요즘 정*진 목사와 기타 수많은 개혁 진영의 목사들에서 보듯이 목사는 간단히 목사 우월주의를 버리지 못한다. 목사 우월주의라는 것이 결국 목사 성직주의이며, 목사 성직주의는 사제 성직주의와 마찬가지로 목사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하는 추악한 오류일 뿐이다.

당연히 말씀 사역자로서 목사의 소중한 역할을 부정하지 않지만, 목사는 평신도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지체로서 동등한 형제이며 성도다. 목사와 평신도가 ‘거룩한 성도’로 하나 되어 교회를 일으키는 것만이 한국교회를 살리는 유일한 처방이다. 더 이상 목사에게, 신학자에게, 종교주의자에게 개혁의 주도적인 역할을 맡길 때가 아니라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가 힘차게 일어나서 한국 교회를 올곧게 일으켜야 한다.

 

강만원 / 종교 철학 부분 전문 번역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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