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개종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개종할 수는 없잖아요!"
  • 최태선
  • 승인 2015.07.06 0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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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천국에서 동생 만나기 위해 좋아도 그럴 순 없다

메르스 돌풍이 일면서 그동안 심심찮게 보도되었던 세월호 관련 기사가 뉴스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한 매체에서 세월호 관련 유족의 인터뷰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다니던 교회 교인들이 함께 슬퍼해주긴 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세월호 진상규명에는 소극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일주기를 맞아 그녀가 다니던 교회에서 여러 대형교회 목사들과 정치인들을 불러놓고 기도회를 열었다는 것을 나중 에 알게 되었는데 그 교회 목사와 정치인이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기가 찼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참사 이후 교회에 빠지지 않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는데 심리적으로도 어려웠지만 교회에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참사 직후의 이야기이고 정확한 언급이 없었지만 지금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 같은 암시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인터뷰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현장에 있을수록 개신교보다는 가톨릭이 돋보였다. 작년 여름, 유가족들이 청운동에서 노숙할 때도 그랬다. 경찰에게 고립되었을 때, 신부와 수녀들이 찾아와 유족들과 함께 길거리 미사를 드렸다.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됐다.

"그래도 제가 뭐 개종할 수는 없잖아요. 동생이 천국에 있으니까. 나중에 꼭 만나야 하니까."

마치 한국 개신교인의 스냅사진을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건 이후 교회의 행동에 실망해 교회를 안 나가게 되었지만 그녀가 그 교회로부터 받았던 '교리'는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그동안 교회로부터 들었던 교리가 여전히 그녀의 행동을 구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주교는 이단이라는 생각, 그렇기 때문에 천주교에 다니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사고가 그녀에게 확고부동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이신칭의' 교리에 얽매여 있는 한국 개신교인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저는 개신교 교리가 틀렸다거나 교리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 아닙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개신교 복음의 왜곡된 모습입니다. 그녀와 같은 믿음에 따르면 복음의 목적이 죽은 후에 천국에 가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또 복음의 목적이 개인의 영혼 구원입니다. 그 모습은 복음에서 하나님 나라가 실종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 나라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개인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전인적으로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 백성 공동체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분명 하나님의 의해 미래에 올 것이지만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그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사는 것이라는 복음의 통전적인 이해가 사라지고, 온전히 이타적이 될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영혼 구원에 만족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믿음이란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믿음을 시험해야 했습니다. 그는 무려 열 차례나 하나님의 시험에 낙방했습니다. 하지만 그 실패는 그의 믿음의 완성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순종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독자 이삭의 시험이 그의 최종 시험이었습니다. 독자 이삭을 죽이는 것은 그의 희망이 사라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인간의 해석으로도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불합리한 명령에 따라 아침 일찍 모든 것을 손수 준비하고 모리아산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이삭을 번제단 위에 묶어놓고 이삭의 목에 칼을 꽂았습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성경에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는 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그리고 순종은 행동입니다. 이신칭의는 믿음에서 행동을 분리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도적이며 절대적인 권한과 역할을 강조하는 것일 뿐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믿음을 자신의 행동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그것이 순종이며,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17-21)

오늘날 개신교 이신칭의 교리의 질못된 이해는 복음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못된 나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실망스런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목사 중심의 개교회가 되고, 교회에 오래 다닐수록 고집 세고 사나운 판단자가 되는 것, 탐욕과 욕망이 무분별하게 이기적 기복주의를 형성하는 것, 신자와 비신자를 구분하여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것, 예수님이 철폐하셨던 모든 사회적 장벽들을 은혜라는 미명하에 다시 공들여 건설하는 것 등등은 모두가 잘못된 복음 혹은 교리 이해가 공들여 맺은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한 교리가 하나님을 인간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가두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예측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지만 그분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착각과 오만함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엄마 품속에 있는 갓난아이는 분명 엄마의 존재를 느끼지만 그 아이가 엄마를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느낄 수 있고, 그 느낌과 경험들을 정리하여 어떤 교리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 교리로 하나님을 측정하거나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어떤 판단과 결정은 오로지 하나님의 몫임을 더더욱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 성을 구원하셨고, 죄악이 관영했던 소돔 성에도 다섯 명의 의인만 있었다면 그 성을 멸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개신교인들의 복음과 믿음에 대한 이해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복음은 영원히 반쪽자리가 되어 사단의 유용한 도구로 전락할 것입니다. 모쪼록 바라기는 인터뷰를 한 자매님이 아픈 상처를 통해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그녀의 마음속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이 스며들어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자신의 구원이 아니라, 동생을 만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복음이 말하는 구원의 통전적인 의미를 세상에 드러내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그런 그녀를 사람들은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부를 것입니다.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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