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 사회
팔꿈치 사회
  • 박지용
  • 승인 2015.07.11 0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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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나만 아니면 돼!'의 비정함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일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 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밥은 대책이 없다는 말이 맞다. 때 되면 먹어야 한다. 한 두끼 먹고 끝날 일이 아니다. 죽는 날까지 먹어야 산다. 먹고 또 먹고... 먹기 위해서 밥벌이는 계속 되어야 한다. 정말 대책이 없다.

밥벌이는 단순히 밥을 얻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러기에 치열하다. 많은 사람들이 몸이 아스러지도록 일을 한다. 자고 일어나서 일터로 나가 종일 일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자고 일어나 일터로 나간다. 매일 반복된다. 일터가 말이 일터이지 경쟁터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경쟁은 필수인 것처럼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상대를 이기든지, 상대가 스스로 쓰러져서 내가 이기게 되든지, 적대적 경쟁을 한다.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여유는 꿈도 못 꾼다. 여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일찌감치 포기한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간다. 어쩜 당연한 것처럼...

독일 말에서 '팔꿈치 사회'라는 말이 있다. 주변 사람을 밀쳐내야지만 나의 생존이 일시적으로나마 보장되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빗댄 말이다. '일중독' '극도의 피로감'으로 몸과 마음이 견딜 수 없어도 쉼을 가질 여유가 없다. 병들어 누워야 할 지경에도 쉼은 사치로 여겨진다. 경쟁에서의 낙오는 곧 실패와 파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면화된 경쟁에 내몰린 채로 어느새 폭력적인 근성에 지배된다.

망령의 부활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흑인교회인 사우스 캐롤라이나 찰스턴 중심가에 있는 ‘임마누엘 흑인 감리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위해 모인 성도들에게 백인 청년이 총격을 가해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비극은 우리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인종혐오주의' '백인우월주의'에 빠져 유색인종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고문했던 KKK단의 망령이 부활한 듯 해서 더욱 놀라게 한다. 1960년대 시작된 인권운동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은 별로 진전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차이가 진지하게 다뤄지지 안으면 질서는 사라지고 불의가 발생하고 조화가 깨진다. 차이를 없애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동일성과 단일성은 창조적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아직 공허한 외침으로 들린다.

적대적 경쟁을 하는 자들에게는 '우리'가 없다. '우리'라는 단어는 '우리끼리' '우리만'으로 사용되는 정도이다. '우리'와 '그들'로 분리하여 배타성을 드러내는 것은 진정한 '우리'가 아니다. 우리와 적만 있을 뿐이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 했다. 나의 '나됨'은 '우리됨'에서 찾아진다. '우리'가 없으면 '나'가 있을 리 없다. 요 며칠 사이, 개인주의에 물든 세상에서 자신을 중심집단으로 여기며 '우리'를 잊은 슬픈 자화상을 다시 보게 되어 서글프다. 고국의 인기 TV 리얼리티 쇼인 1박 2일에서 외치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비정함처럼 사회의 불행 앞에서도 자신만 피할 수 있다면 괜찮다는 비정함이 우리 안에 깊이 들어와 있는 듯하다. 

 

아름다운 조화

기독교 초기에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 즉 낮고 천한 사람으로 여기지는 사람들을 예수님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부른 것은 무엇보다 위대한 일이었다. 계층과 계급으로 구분된 사회에서 '우리'가 되어 하나님의 가족임을 확인하고 서로에 대해 '그들'이 아닌 '우리'로 부르며 공존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실천이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together) (엡1;10) 살아가는 생태계 조화는 시급한 과제이다. '차이'는 다름이다. '차이'가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다른 것들이 모여 이루는 조화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것이 '우리'이다.

 

박지용 목사 / 온맘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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