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이 달려보는 목회를 하고 싶다
후회없이 달려보는 목회를 하고 싶다
  • 양재영
  • 승인 2015.08.01 04: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2015 멘토링 컨퍼런스] 첫째날 송병주 목사 주제강의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가 주최하고 ‘LA 기윤실’과 ‘풀러신학교’, ‘미주한인교회 정화운동협의회’가 공동후원한 2015년 신학생·목회자 멘토링 컨퍼런스가 80여명이 참가한 2박 3일간의 일정을 성황리에 마쳤다.

첫째날 저녁 LA기윤실 박상진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나의 목회이야기’에서 송병주, 허현, 김성환 목사는 멘토로서 멘티들과 함께 자신의 목회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본지는 첫째날 ‘목회이야기’ 전에 진행된 송병주 목사의 주제강연이다. - 편집자 주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고민은 교회 성장을 위한 방법론이 아닌,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대답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의 시작은 ‘예수가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간단히 말해, 교회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즉,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신앙고백을 빼면 교회가 아니다’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신앙고백을 점검하고,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교회론의 출발은 신앙고백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송병주 목사 ©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에클레시아와 바실리카”

우리는 이민교회를 말할 때 흔히들 ‘디아스포라’라고 말해왔고, 이 용어를 좋은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디아스포라와 반대 개념으로 생각하는 ‘에클레시아’(Ekklesia)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에클레시아’는 ‘모으는 교회’, ‘디아스포라’는 ‘흩어지는 교회’로 생각하며, 교회의 가치는 디아스포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원적인 면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에클레시아’와 범주상 대립되는 개념은 ‘바실리카’(Basilica)였습니다. ‘바실리카’는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를 기독교로 국교화시킨 후, 수많은 신전(神殿)들을 어디에 사용할까 고민하다 교회로 바꾸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후 교회는 건물의 개념으로 자리 잡았으며, ‘바실리카’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바실리카’는 후에 독일어로는 'Kirche', 영어로는 'Church'로 발전합니다. 영어의 Church는 건물로서의 교회인 ‘바실리카’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차라리 건물로서의 교회, 즉 예배당으로서만 인식했으면 좋았는데, 이걸 교회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교회가 건물로서 인식되다 보니 크고 웅장해야 했으며, 집회용으로 좋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개념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바실리카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에클레시아는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입니다. 에클레시아 교회는 우리의 삶의 현장 어디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중심으로 모이면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생명력이 있었고, 생명을 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틴 대제가 바실리카로서의 교회를 장악하고 난 다음부터는 교회는 내 삶의 현장과 신앙 고백의 현장으로서 모이는 곳이 아닌, 건물에 들어가야만 교회라고 하는 인식이 생겨났고, 서구 교회론의 기본적인 개념이 되었습니다.

‘디아스포라’ 역시 유대인들이 자기들끼리 모이는 구별된 곳이었습니다. 이방지역에 와서 다른 이방인 없이 자기들끼리만 신앙생활하려고 모인 곳이 디아스포라 회당이었습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디아스포라는 유대식의 바실리카였습니다. 과거의 이스라엘 땅에 있던 산당과 성전의 이미지가 투영되었을 뿐이지, 삶의 현장 속에서 모인다는 ‘에클레시아’적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민자로서 그 개념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부여해줄 뿐이지, 디아스포라는 ‘유대주의적 바실리카’의 성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모달리티와 소달리티”

그럼, 우리는 ‘바실리카 교회’를 포기하고 ‘에클레시아’의 특징을 담은 무형교회로 가야만 할까요?

저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교회를 일시에 개혁하려는 시도는 분쟁만 야기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로 본다면 다양한 연령층의 필요와 욕구를 커버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도들의 영적인 상황과 고민을 염두에 두지 않을 체 바로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면 성도들은 등 돌리게 됩니다.

전 연령대의 욕구를 맞춰주되, 분명한 사역적인 목적과 이유를 가진 생명을 만들고, 생명을 걸고 이 세상 속에서 복음 운동을 펼쳐갈 에클레시아 운동을 만들어갈 소달리티를 잉태해 내야 된다는 것이다. 즉, 바실리카라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에클레시아를 품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달리티(제도적 교회)에 기반으로한 소달리티(선교적 교회)를 잉태해내는 운동을 해야겠습니다.

제 인생의 마지막 하나 해보고 싶은 소원이 소달리티교회 입니다. 저는 교회를 마치고 나서 ‘평화센터’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갈등과 분쟁의 지역에 들어가서 평화운동을 펼치는 NGO 단체를 만드는 사역을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 멘토링 컨퍼런스 첫째날 송병주 목사 주제강의 후 멘토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얼음이 녹으면...”

한 선생님이 “얼음이 녹으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면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대답이고, “물이 나옵니다”하면 과학적 사고에서 나온 당연한 답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한 여학생이 웃으면서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똑같은 현실에 대해서 어떤 소양을 가지고 답을 할 것인가?’가 목회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한청지기교회’에 와서 첫 6년을 ‘천국 한 모퉁이’라는 용어로 정의 내렸고, 다음 6년을 ‘세상 한 모퉁이’라는 용어로 비전을 표현했습니다.

‘천국 한 모퉁이’는 당신이 우리 교회에 와서 천국 한 모퉁이라도 맛을 보고 가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세상 한 모퉁이’는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에 왔으면 세상 한 모퉁이라도 바꾸고 삽시다라는 비전을 표현한 것입니다..

‘천국 한 모퉁이’, ‘세상 한 모퉁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그 순간, 신학적 개념, 학문적 논의, 막연한 사회 참여 등의 의미 속에 갇혀버립니다.

저는 지난 6년을 ‘개혁주의 정치원리는 신본주의적 민주주의다’라는 박윤선 박사의 말을 따라 철저한 민주적 교회 운영, 재정 투명성, 목회와 재정 분리 등을 통해 따뜻함이 회복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교회 사역과 관련한 모든 것들의 용어를 새롭게 정리하면서 보냈으며, 감사하게도 교회가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져가며 나아갔는데어느 정도 성장하는 은혜까지 누렸습니다.

지금은 ‘어떻게하면 소달리티를 품어내는 에클레시아적 교회가 될까?’라는 고민을 갖고 2기 사역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말처럼 목사가 아무리 잘해도 20%의 적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필요를 맞추어줄 수는 없습니다. 기왕 지나갈 세월, 눈치보고 사역하는 것보다, 확고하게 존중하고 모달리티의 특징은 받아들이고, 소통에 최선을 다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잡아가면서 후회 없이 달려보는 목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재영 기자 /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