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으로 흥한 교회들, 이제 사양산업(?)
심판으로 흥한 교회들, 이제 사양산업(?)
  • 이욱종
  • 승인 2015.08.14 2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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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비즈니스 감각 뛰어난 제익스 목사의 미묘한 입장 변화

“공산주의는 마귀의 사상이며 마귀의 사상인 공산주의를 대적하고 음행과 부도덕을 회개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주저하거나 침묵하는 죄를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소련의 핵무기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과학기술의 지옥불과 유황으로 멸하실 것이다. 첫 번째는 뉴욕, 두 번째는 시카고, 세 번째는 로스앤젤레스를 겨냥하고 있다!”

당시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소식과 함께 냉전의 위기가 극에 달하던 194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시에서, 삼십대 초반의 키가 크고 잘생긴 카우보이를 연상시키는 남부출신의 앳된 부흥사 빌리 그래이엄의 단호한 선지자적 경고가 선포된다(내용면으로만 보자면 지금의 홍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을 들은 보수주의 언론재벌이자 세기의 걸작 영화 “시민 케인”의 실질적 모델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전국에 있는 자신의 언론사들에게 전보를 친다. “그래이엄을 띄워라! (puff Graham!)” 남부 시골마을 출신의 젊은 목사 그래이엄은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었다는 말처럼 하룻밤 사이에 전 국민이 주목하는 스타 목사가 되었고 당시 보수 기독교계 최고 리더였던 해롤드 오켄가 목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교계 지도자가 되었고 백악관을 수시로 드나드는 최고의 로비스트이자 역대 대통령들의 가장 영향력 있는 상담자가 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미국 역사가들에게 매우 유명한 일화로서 그래이엄 목사의 급부상은 미국 보수주의 기독교 세력의 막강한 연대와 파워가 어디서부터 탄생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반공주의 (anti-communism), 반낙태 (anti-abortion), 반진화론 (anti-evolution), 그리고 반동성결혼 (against same-sex marriage) 까지, 반대에 기반한 전국구 연대를 통해 성장한 것이 오늘날 미국의 보수 기독교, 복음주의, 근본주의 연대 세력이다.

이제 97번째 생일을 맞는 빌리 그래이엄은 역설적으로 공산주의 덕분에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지옥불 예언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 도시 주민들은 음행과 부도덕과 친 공산주의를 철저히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소련의 핵무기로 벌하지 않으셨다. 분명 그래이엄의 예언은 빗나갔고 엄밀히 말하면 거짓 예언자로 비난받아야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의 예언은 로스앤젤레스도, 하나님도, 반공주의자도 아닌 이젠 세계적 종교지도자가 된 그래이엄 자신과 그와 함께한 보수 기독교연대에 가장 큰 유익을 가져다 주었다.

청교도들의 개척시절부터 죄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공포 (포비아), 그리고 반기독교적 가치에 대한 혐오를 극대화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온 것은 미국 보수 기독교의 가장 오래된 전통이다. 매춘과 선술집 때문에 하나님은 미국원주민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16세기 수사(레토릭)부터 가톨릭을 사단의 세력으로 혐오하던 타종교 혐오주의는 반이슬람으로, 노아의 아들 함의 저주로 노예가 되었다는 흑인들에 대한 혐오와 복수에 대한 공포는 인종주의로 뿌리깊이 발전해 간다.

▲ T.D Jakes 목사의 사택으로 5백만 달러를 상회한다

20세기 초에는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면 아이들이 급속도로 무신론자가 되고 미국의 기독교 전통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전국적 보수 기독교 연대가 형성되었고 강력한 정치적 비토세력으로 정치선거, 교육, 비즈니스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진화론이 대세가 되자 이번엔 낙태 반대운동을 전개하여 낙태를 합법화하는 것이 곧 사단이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을 깨는 일이라며 다시 전국구 영향력을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진화론은 더 이상 부인하면 비상식이 되었고 낙태는 임신12주 이전으로 허용하여 정치적으로 더 이상 큰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진화론을 알아도 그렇게 무신론자가 되지 못했고 낙태를 허용해도 가정이 사회적으로 위태해지지도 않고 있다. 하늘에서 당장 불이 떨어질 것 같은 심판도 유보된 상태로 보인다. 이쯤 되니 미국의 일반인들은 보수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어느 정도 간파하는 듯 하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할 것 같았던 예전과 달리, 동성결혼 이슈는 이제 힐러리의 이메일보다도 크게 선거에도 영향을 주지 못하는 듯 보수 기독교연대들도 선거운동에서 크게 이슈를 만들지 못하고 잠잠해 가는 듯 하다.

 

방향 바꾼 제익스 목사의 의도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텔레비전 설교자들 중 한 사람이자 메가처치 담임 목사이고 보수기독교 사업가인 제익스(T. D Jakes) 목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합법화로는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없고 개인의 내면의 변화가 진정한 변화를 낳는다는 것이 예수가 추구했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동성결혼을 개인적으로 지지하지 않지만, 이 나라가 용인하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한다. 나에게 게이들을 향한 흑인교회의 역할에 대해 묻는다면 '진화되고 진화하는 (evolved and evolving)' 39년의 나의 게이 교인들을 향한 접근방식을 권하고 싶다.”

물론 제익스 목사의 애매한 발언은 그가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것처럼 이해되어 큰 이슈가 되었다. 제익스 목사는 구멍가게 교회 (storefront church, 버려진 건물이나 장사가 안 되는 가게를 고쳐서 만든 개척교회) 에서 시작하여 메가처치를 이루고 각종 기독교 방송사, 흑인 연예인 방송, 레코딩 회사 등의 설립자로서 미국 기독교 비즈니스의 상징적 인물로 현재 미국 사회의 기독교 소비층의 기호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비즈니스 감각의 소유자이다.

제익스 목사의 친 동성애자 발언은 그의 말 한마디가 치명적 매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기독교 비즈니스계 현실을 볼 때, 반동성애 코드는 이제 정치적으로도, 기독교 소비층에게도 크게 매력이 없는 상품이 되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남을 혐오해야 서로 연대하고, 불심판의 두려움을 극대화해야 교인들이 떠나지 않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생산해내야 하며, 싸워야 강해지는 종교, 그렇게 탄생하여 성장한 미국 보수기독교 연대가 미국 사회에서 매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국은 마치 하늘에서 불이 떨어질 것처럼 동성결혼에 대한 보수 기독교의 반감과 반대운동의 기세는 여전히 강하다. 동성결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면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신앙의 정체성까지 부여하고 있다. 아무리 미국을 이상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혐오주의와 공포주의를 극대화하여 정치적 이득을 확대해간 미국 보수주의 기독교의 길을 꼭 따라 해야만 하는가? 미국 보수주의 기독교처럼 공산주의, 동성결혼, 낙태를 지지하는 것을 혐오하고 저주해야 정통성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어리석은 현실임을 인지해야 한다.

교회는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유일한 힘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미국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공산주의, 진화론, 낙태, 동성결혼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이중적 태도와 모순이라는 몇 십 년째 변하지 않는 여론조사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특정한 이슈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는 끊임없이 미국 사회에서 “진화되고 진화해온” 정치적 이슈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은 진리를 선포하는데 헌신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연대를 위한 이슈를 만들어 온 것이라고,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불심판의 메시지는 제익스 목사의 말처럼 계속 진화되고, 진화하였다. 사람들은 허구의 메시지에 움직였고 풍운아처럼 빌리 그래이엄은 자신의 정치적 연대를 십분 활용하고 이제 생을 마감하는 가운데 있다. 정치적 영향력을 잃은 공산주의자들을 품었고 외교를 위해 타종교 지도자들을 지지했으며 이제는 자신도 삶으로 증명하지 못한 메시지를 전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힘보다 자극된 사람들의 대중심리의 힘으로 진화되고 진화한 삶을 열심히 살아온 것을 고백할 인지력도 없어 보인다. 

싸워야 살고 혐오해야 의로운 반대운동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이 미국 보수기독교의 교훈이다. 미국과 한국은 종교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나라이다. 기독교 국가건설은 위헌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사역을 통해 이루면 된다. 한국의 전문직종 중에서 성범죄를 제일 많이 저지르는 직업 중에 하나가 목사라고 한다. 대형교회 목사들중 성추문과 공금횡령의 범죄혐의가 없는 사람을 이젠 찾기도 힘들다. 진리를 상실하고 진리를 살아내지 못하는 교회가 선포하는 세속사회에 임할 불심판의 메시지는 정치력과 경제력 모두 상실한 비수기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무엇을 합법화하고 불법화 한다고, 불신의 세속사회에 심판의 불을 떨어뜨려야 세상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삶을 살아내는 내면의 불을 일으켜야 교회가 변하고 사회가 변화한다는 참된 보수주의 기독교를 한국 보수 기독교가 추구해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이욱종 목사 / 현재 클레어몬트 박사 과정에서 미국교회사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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