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얻은 것은?
[시론]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얻은 것은?
  • 김기대
  • 승인 2015.08.25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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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2005년 북측의 유감 표명과 이번 '무박 4일' 회담의 비교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한국 시간으로 25일 오전 2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지난 22일 오후부터 이날 0시55분까지 진행된 남북 고위급 접촉 결과 및 6개항으로 이뤄진 합의문을 발표했다.이로써 지난 4일 일어났던 지뢰폭발사건 이후 대치국면을 지속해온 남북관계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남북 고위 당국자 6개 합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남과 북은 남북관계 개선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과 평양서 빠른 시일내 개최

2) 북측은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유감 표명

3)남측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25일 12시부터 중단

4)북측은 ‘준전시상태’ 해제

5)남북은 올 추석을 계기로 이산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하기로. 9월초 적십자실무접촉

6) 남북은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 활성화

 

합의문 발표 이후 모든 언론은 박근혜 정부의 승부수가 통했다고 추켜세우고 있으나 내면을 들어다 보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손익에 있어서 남북 어느 쪽이 더 많은 것을 얻고 잃었는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남북관계에서 서로 이기는 윈윈(Win-Win)이 이상적인 관계임은 틀림없지만 남북 양측이 지난 20여일간 벌인 치킨게임의 결과가 겨우 이 정도라는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이 중  1) 5) 6)항은 남측의 통일 전문가들이나 북측도 꾸준히 주장해 온 것으로 이번 위기 상황 없이도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었다. 문제는 2) 3) 4)항인데 먼저 2항을 보면 지뢰 사건에 대해 유감의 주체가 모호하다. 우리 측은 회담에 들어가기 전에 주체가 확실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북한측은 유감만을 표현했다. 우리 측에서는 재발방지를 요구했으나 합의문에서 재발방지는 빠졌다. 물론 우리측에서는 북한이 잘못을 인정했다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젊은이의 희생에 대해서 누구든지 유감을 표할 수 있다. 합의 이면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지 모르겠으나 북측은 자신들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유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선전할 가능성도 있다. 

남측은 지뢰 매설이 북에 의해 매설된 것이라고 보아왔다. 증거는 없지만 남측이 묻지 않았기 때문에 북의 소행일 것이라는 논리 전개였다. 이 때문에 11년만에 대북 선전 방송을 재개했고 북한은 확성기 타격 위협으로 대응했다. 그래서 3항이 합의되었고 2,3항의 결과인 4항도 타결되었다.

북측이 남측에 유감을 표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5년 9월  임진강 하류의 남측 어민들이 임진강 물 수위 상승으로 재산피해를 입은 것과 관련해서 유감을 표명한 적이 있다. 당시 북측은 전통문에서 임진강 상류에 있는 (북측)댐들은 “모두 무넘이언제(저수지에 있는 물을 둑위로 넘기기 위한 구조물)들이므로 이번 건은 폭우에 의한 자연적인 방류에 기인된 것으로 본다”고 해명했다. 북측이 일부러 방류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남측의 피해로 나타났으므로 '유감'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당시 정황을 조금 더 살펴보면 노무현 정부시절이던 2005년 9월 2일 낮 임진강 남쪽 중.하류 일대의 수위가 갑작스럽게 상승, 파주시와 연천군 등지 어민들이 통발과 어망 등 적잖은 재산피해를 입었었다. 당시 임진강 상류에 위치한 북한 ’4월5일댐’의 의도적 방류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설이 많았으나 북한 측이 6일만에 고의적인 방류가 아니라 자연 방류였다고 밝힌 것이다. 남북관계가 우호적이었던 당시와 위기상황 속에서 유감을 받아내려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과 비교된다.  

최근 20일 동안 이어진 한반도 위기상황이 해소되었다는 점에서는 두 손들어 환영할 일이지만 겨우 이것 얻자고 그렇게까지 했나 라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추측을 해보면 먼저 박근혜 정부나 미국의 오판 가능성이 먼저 떠 오른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내년에 통일이 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나 발언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내 대북 강경파의 메시지나 매파 학자들의 자문에만 의존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북한의 1번 어뢰'의 공격으로 수 십명이 목숨을 잃은 천안함 사건때도 대북방송을 재개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북을 몰아 부치면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는 대북 강경파에서 나온 모종의 잘못된 정보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강경한 북의 저항에 부딪히자 오히려 우리 측에서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군사훈련이 중단 재개를 반복한 것도 그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두 번째로는 북한에 대한 변함없는 오판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과 어떤 이면 합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북한의 직접적인 사과를 받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북한이 지뢰사건의 주체로서 사과하려면 '재발방지' 약속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다. 예전에 북풍, 총풍(북한에게 돈을 주고 남쪽에 총을 쏘아 달라는 부탁) 사건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 당시 안전기획부(지금의 국정원) 차장이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 이병기씨다. '원조를 받아내기 위한 북한의 몽니'라고 우리 쪽에서는 본 것 같은데 경제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북한이 이번에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증거도 불충분한 지뢰사건을 북한소행으로 몰고 감으로써 얻고자 했던 우리 측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 갔다고 보는 것이 맞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상승이라는 열매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지지율은 언제든지 등락을 반복할 수 있는 것, 당장 위기를 넘긴 박대통령에게 호감을 가졌던 여론들도 이번 합의를 찬찬히 복기해 볼 시간을 가지게 되면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반도 위기 상황이 양측의 합의로 끝난 것은 다행이지만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평화를 유지하려는 양측의 노력이 요구된다. 나아가서 위기에 편승하는 지도자보다 평화를 유지하는 지도자의 정치력을 존중해 주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두 체제 모두 한반도 평화라는 중대한 문제를 정권안보를 위한 승부수로 생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손자 병법 3항은 싸우지 않고 이기라는 것이다. 이번 회담은 불필요한 싸움을 벌여 놓고 결국은 조금 이긴(어느 쪽이 이긴 것인지 조차 모호한) 결과라는 점에서 남북의 국민만 피해를 입은 것 같아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한겨레 만평 바로보기 http://www.hani.co.kr/arti/cartoon/hanicartoon/705833.html?_fr=mt3

 

김기대, 편집장 / <NEWS M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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