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언제까지 문화와 담을 쌓을 것인가
교회는 언제까지 문화와 담을 쌓을 것인가
  • 김기대
  • 승인 2015.10.13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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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상가에게 배울 것

1940년 9월 26일 스페인에 인접한 프랑스 포트보우 마을의 한  호텔에서 40대 후반의 남자가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다. 유태계 독일인으로 마르크스 주의자이자 문예비평가인 발터 벤야민은 나치를  피해 그를 미국까지 망명시켜줄 사람을 만나기 위해 스페인 국경마을까지 왔으나 국경을 넘지 못하고 체포되고 말았다. 누군가의 밀고로 호텔에 감금된 벤야민은 25일 밤 다량의 극약을 먹고 자살한다.

벤야민이 이미 미국에 망명 중인 아도르노에게 전하려 했던 마지막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내게는 지금 끝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여기는 아무도 내 삶이 끝나는 걸 알지 못하는 피레네 산맥에 처한 작은 마을입니다. 부탁컨데, 내 친구 아도르노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쓰고 싶었던 것들을 다 쓰기엔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지 않군요

이 천재 사상가는 살아서 당할 독일의 야만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등의 사상 속에  벤야민은 이미 깊숙이 들어가 있다. 벤야민에 대한 이런 관심은 철학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2008~2011년 한국의 국문학계가 가장 많이 인용한 외국 이론가는 발터 벤야민이었다. 100여년전에 활동하던 독일 사상가를 국문학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할 정도로 그는 거장인 동시에 거의 모든 분야에 손을 대었다. 오히려 신학계에서 벤야민을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벤야민의 깊은 사상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가 뭘 말하려고 했는지는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왜 다시 벤야민인가?

벤야민이 왕성한 활동을 하던 20세기 초반도 위기의 시대였지만 21세기의 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벤야민은 이성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시대를 걱정했고, 지금은 '탈이성(포스트모더니티)'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다.  차이가 있다면 이성의 시대는 옛 것과 단절하려 했고, 탈 이성의 시대의 한계를 발견한 이들은 옛 것을 회복하려 한다. 옛 것과 단절하지 말라고 가르쳤던 벤야민이 다시 읽히고 있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과거를 복고적으로 회고해서는 안된다. 마르크스 주의자인 벤야민은 과거와 미래를 '지금 여기'로 끌고 왔다.

사실 철학이나 사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단순한가?  이성 아니면 탈이성, 혹은 종교가 서로 교집합적으로 만나면서 사상은 발전해 왔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말기에 더 이상 기댈 것이 없었다. 일부는 계몽주의로의 회귀를 기획했고,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곳곳에서 기승을 부렸다. 새로운 담론 발굴에 한계를 느낀 탈이성주의자들은 이성과 믿음 사이에서 방황했다. 그때 이성과 비이성, 종교를 종횡무진하는 벤야민은 구원의 소리였다.   

그는 마르크스 주의자이면서 하부 결정론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인간의 의식과 철학, 문화, 가치관(상부구조) 등은 모두 하부구조(경제, 물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인데 벤야민은 전통적인 문화의 요소를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파리와 모스크바를 거닐며 그 문화가 가진 고유성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유대인인 그의 문화 종교적 배경이 되었다. 게다가 그의 삶의 배경이었던 유대교까지 그의 의식 한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저 유명한 장기두는 난쟁이의 비유가 벤야민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옛 유럽의 장터에는 장기두는 인형이 있다. 장터에 나온 농부들은 돈을 걸고 내기 장기에 나서지만 번번히 돈을 잃는다. 비결은 인형 안에 숨겨둔 난쟁이다. 난쟁이는 보이지 않게 숨어서 게임을 항상 승리로 이끈다.  인형은 마르크스주의의 ‘사적 유물론’인데 그는 역사 속에서 늘 승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기려면 신학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근대에 들어 별볼일 없어진 신학은 자신을 들켜서는 안 되는 난쟁이가 되어야 한다.

벤야민에게 마르크스주의는 당시 세계를 구원할 '진리'였다. 그런데 그 진리는 전통적인 문화와 단절하려고만 해서 벽에 부딪혔다. 그러므로 유물론이 세계를 끌고 나가는 사상이 되기 위해서는 신학을 받아 들여야 한다. 다만 표시나지 않게.

벤야민은 이 일을 위해 구원이라는 개념을 신학으로부터 차용한다. 구원은 미래에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순간이다.  구원이 완성되는 종말을 기다리는 것보다 그 시간을 지금 이 순간으로 가져오는 것이 곧 구원이다. 구원의 공간과 시간은 도달해야 할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사회를 구성하고 변혁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약한 메시아 주의는 구원이 군주적인 메시아에게 있는 전통적 메시아 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또한 구원이 세상 끝에 온다는 종말론도 아니다. 약한 메시아주의는 시간상으로 구원을 미래의 메시아에게서가 아니라 오늘 여기 즉 역사 안에서 찾는다.이 맥락에서 약한 메시아주의는 외양상의 종교적 이름에도 불구하고 맑시즘처럼 역사성을 강조한다. 또한 약한 메시아주의는 구원의 실현이 위대한 메시아라는 강한 인물이 아니라 사소하고 미약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역사 안에서 전개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약한 메시아 주의는 혁명의 주체가 프롤레타리아라는 맑시즘 견해를 독특한 종교적 색채로 보여준다. (신명아, '발터 벤야민의 정치신학과 약한 메시아 주의')

 

벤야민은 약한 메시아주의에 기초해서 지금 여기를 강조하면서 지금 여기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주목한다. 곳곳을 여행하면서 ‘쓸모없는 것들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려 했다. 가치 없어 보이는 것들은 모든 적극적이고 생동감있는 것들의 밑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세상에 버려진 것들, 사소한 것들이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이 유대교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왔던 데 영향받아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조르조 아감벤 등이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데 사도 바울을 소환했다. 물론 이들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거짓된 마음으로 하든지 참된 마음으로 하든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 (빌립보 1:18)처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마가복음 9:40)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그 동안 교회가 경험하지 못한 낯선 것들이 세상에 널려 있다. 교회는 아직도 크리스텐덤(Christendom)의 시대라고 착각하고 모든 것이 교회의 가치관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투정한다. 하지만 벤야민은 사소한 것들을 자기 기준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들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파리를 배회하면서 그는 파리의 거리, 유행, 광고, 매음, 수집가, 거리산보자(flâneur), 노름 등에서 상부 문화의 특징을 발견해 내었다.

갈릴리 촌사람들과 함께 시작한 '예수교'가 21세기에는 기득권을 대변하기에 여념 없는 종교가 되어 버렸다. 그들의 신앙은 형이상학적 사유가 아니라 철저하게 물질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침내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은(그러나 사실은 본래적이었던) '저급한' 문화, '타락한'문화에 대한 저주를 서슴없이 퍼붓는다.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예수를 따르던 자들의 삶의 자리였던 저급한 문화에 대한 통찰이 없는 한 21세기 '기독종교'는 도리어 사소한 것이 되어 잊혀져  갈 것이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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