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잡이 목사는 왜 칼을 잡았나
칼잡이 목사는 왜 칼을 잡았나
  • 김기대
  • 승인 2015.10.28 0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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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건달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배신과 복수의 심리학

'목사끼리 칼 휘둘러' 라는 제목으로 모든 뉴스에 실려 한국 교회 신뢰추락에 일조한 황규철 목사와 박석구 목사의 칼부림 사건. 두 명 모두 지금은 탈퇴한 상태이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평동노회 소속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황 목사는 2011년 9월부터 2014년 9월까지 예장합동 총무로 지내며 가스총을 비롯한 온갖 추한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22일 황목사는 박목사의 예복교회로 찾아가 박목사에게 칼을 휘둘러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을 정도의 중상을 입혔다. 황목사 측에 따르면 황목사도 간과 횡경막, 손가락 등에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뉴스앤조이>가 입수한 사고 당일 녹취록에 따르면 "우리 죽자"라면서 황규철 목사가 먼저 박목사를 공격하고 자해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황규철 목사가 2011년 9월 총무로 당선되던 당시 박석구 목사가 참모 역할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박목사는 후에 금권선거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금권선거의 대행자였던 박목사가 자신의 얼굴에도 침이 튈만한 일을 폭로한 것은 황목사로부터 선거운동의 보상으로 약속 받은 각종 이권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다 이번 사건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그 과정에는 항상 돈이 있었고 다른 교회와 관계된 '정치'가 있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47살의 박목사는 68살의 황목사를 형님이라고 호칭한다. 한국 호칭 문화에 비추어 볼 때 21살 차이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조폭 세계에서도 함부로 '형님'이라고 불렀다가 뺨따귀를 맞는 장면이 한국 영화에 많다. 그들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사장','실장' 등의 공식 직함을 선호한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녹취록에 따르면 그냥 '양아치' 스러운 관계다. '형님', '같이 죽자'와 달리 '너는 살고 나는 죽어야 해'라는 대화에서는 자신이 책임을 지는 듯한 보스의 면모가 살짝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칼끝은 상대방을 향하고 있었다. 조직의 보스는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데 한 때 보스 행세를 하던 황목사가 칼을 직접 든 것은 그가 지금 외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의 반증이다.그의 헛된 위상을 보여주는 것은 사고 이후부터 예복 교회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황목사의 벤츠 승용차 뿐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 황목사가 박목사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복수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한 강연에서 배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흔한 대사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배신이라는 말이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우리가 배신이라고 말하는 것들 중에는 무늬만 배신, 즉 ‘유사 배신’이 많다. 배신당했다, 뒤통수 맞았다는 말을 하기 전에 그것이 진짜 배신인지 분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태까지 내 행동은 동기부터, 남의 행동은 현상부터 보아왔다면 내 행동은 현상부터, 남의 행동은 동기부터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배신의 과잉을 해결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인간관계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인용문을 황목사에게 적용할 수 있다면 '심리적 퍽치기'라는 용어는 박목사에게 적용할 수 있다.

정박사에 따르면 "배신을 범죄로 비유하면 ‘퍽치기’에 가깝다. 퍽치기는 일말의 타협의 여지도 없는 범죄다. 사람들은 이러한 일방향적인 관계에서 심한 공포감을 느낀다. 이런 점에서 배신은 ‘심리적인 퍽치기’라고 말할 수 있다."

박목사는 상대방(황목사)이 믿고 있는 사이에 퍽치기를 당한 것이다. 게다가 배신은 나와 타인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데 부터 잉태한다. 황목사는 박목사를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했지만 박목사는 황목사의 분신이 되어 주지 않았다. 이것이 황목사의 복수심을 불러 일으켰다.

심리학자 데니스 라이너는 "배신을 경험한다는 것은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 죽음을 느끼는 것과 같은 배신감이 황목사의 "나는 죽고' 라는 말에 투영되어 있다.

마이클 맥컬러프에 따르면 인간에게 "복수심은 복수심이라는 허기를 채워주는 욕망의 산물로  복수를 함으로써 생기는 쾌감과 희열감을 잊을 수 없기에 복수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치명적인 욕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가해자에게 공감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뻔한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뻔한 결론조차 적용하기 쉽지 않은 것이 이번 사건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뒷골목의 파렴치한 범죄의 공모자로서 누가 누구를 배신하고 누가 누구에게 복수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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