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목사의 건강한 삶
병든 목사의 건강한 삶
  • 이계선
  • 승인 2015.11.09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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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등촌 이계선 목사 ⓒ <뉴스 M>

“돌섬통신을 읽어보면 건강하게 사시는 목사님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파킨스씨병이 다 나으신 모양이지요? 축하드립니다”

독자가 보낸 메일. 한국에서 전화를 받은 누님은 내목소리를 듣고 좋아서 난리다.

“아유, 동생목소리가 2년전 병 생기기 전보다도 더 힘차고 또렷하고 생기가 넘쳐나네. 완전이 건강을 회복한 거지? 그렇지?”

의사양반도 내가 파킨슨 걸음이 아니란다.

“파킨슨 환자는 김대중대통령처럼 단장을 짚고 오물오물 종종걸음으로 걸어요. 목사님은 넓이 뛰기 육상선수처럼 보폭이 큼직큼직 합니다. 건강한 걸음입니다”

이분들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답변은 이렇다.

“낫다니요? 시간이 지날수록 병이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병들기 전보다 더 행복하고 즐겁게 지낸답니다. 2년간 병과 싸우면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병과 친해졌기 때문입니다. 병을 받아드리는 거죠”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다. 의사가 파킨슨진단을 내렸을때 난 파킨슨병을 쫒아내 보려고 전의를 불태웠다.

‘나는 절대로 그 병에 걸릴 리가 없다‘

‘나는 곧 완쾌 될 것이다‘

나는 7남매중 제일 건강했다. 채식체질이라서 피도 맑고 소화기능도 좋다. 눈만 감으면 곯아떨어지는 낙천주의다.

“그런데도 목사님은 파킨슨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난 나을 것 같았다. 고치면 된다. 부흥회를 다니면서 중풍병자를 고친적이 있지 않은가? 누워있는 중풍병자에게 안수기도를 하자 향기가 진동했다. 그러자 일어났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성령이 기름 붓듯하면서 일어나는 신유역사다. ‘내 기도 듣고 중풍환자를 고쳐 주셨으니 나의 중풍병인 파킨슨을 하나님이 고쳐주시겠지?’

그러나 낫기는 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악화되어갔다. 피곤에 젖어 하루종일 눈을 감고 지내야 했다. 손이 저려와 타자치기가 힘들었다.

‘이러다가 얼마 안가서 돌섬통신이 폐간 되겠구나‘

우울증이 찾아왔다. 죽음을 편안한 도피처로 그리워하는 우울증. 난 홍타시에게 항복하는 조선왕 선조처럼 파킨슨에게 무릅을 꿇고 두손을 들었다.

“나는 파킨슨씨병에 걸렸다. 이병은 고칠수 없는 불치병이다”

좌절(?)해 버리고 나니 되래 마음이 편해졌다. 좌절의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마음을 고쳐먹었다.

“불치병 이라면 병과 친하게 지내자. 병든 목사이지만 생활만은 건강하게 살자”

내가 병과 친하려고 하는건 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고치지 못하는 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기 때문이다. 살인맹수 사자도 친하면 어린애친구가 된다. 병도 친해놓으면 무섭지 않겠지?

병을 받아드렸다. 그러자 병이 내몸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피곤도 떨림도 자연스럽게 받아드렸다. 병들었다는 생각이 거의 안 든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을 생산하는 뇌기관 “흑질”이 망가지는 병이다. 나는 1년반 동안 흑질을 살려내는 “아지랙트”만 복용했다. 힘들었다. 얼마 전부터 카비도파/레바도파를 첨가했다. 뇌에 도파민을 직접 넣어주는 도파민 약이다. 많이 좋아졌다.

우울증도 긍정적으로 받아드렸다. 그러자 나는 예술가처럼 감성이 예민하고 섬세해졌다. 삼라만상 우수마발이 아름답다. 매일 바닷가와 숲속을 걷는다. 내 평생 요즘처럼 행복한적이 없다. 세상이 아름답고 나는 행복하다.

샤워를 하는데 문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타올을 두르고 나가보니 배달부아가씨가 웃고 서있었다. 날 007영화의 숀코네리로 보는 모양이다. 숀 코네리도 몸에 타올만 걸친체 뛰어나와 격투를 하고 사랑을 나눴으니까. 그녀가 주고 간 상자를 열어보니 감(홍시) 배 대추가 가득 차 있다. 중부뉴저지 전원타운에 사는 이호영장노가 보내준 농산물이다. 형님 형님 하고 따르는 고향중학교 후배다. 영농일지가 재미있다. 30년전 고국에 가서 고향의 감나무 배나무 대추나무묘목을 가져와 뒤뜰에 심었단다. 대추가 몸에 좋은걸 어떻게 알았는지 다람쥐들이 대추에게만 달려들어 따 먹는다. 끈끈이를 부치고 그물울 쳐놔도 소용없다. 대추나무밑에 고양이 밥을 수북하게 쌓아놓았더니 들고양이가 달려왔다. 그러나 고양이가 한 마리뿐인걸 안 열 마리 다람쥐들은 겁없이 대추서리를 즐겼다.

“새끼를 낳아 고양이 식구를 늘리자”

이듬해 봄이 되자 5마리를 낳았다. 금방 자라나 사방으로 설쳐대자 다람쥐들은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 버렸다. 재미있는 사실. 여름이 되어 새끼들이 장성하자 어미고양이는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다자란 새끼들이 다람쥐들의 대추서리를 잘 막아줬다. 다음해 봄이 오자 어미고양이가 돌아와 새끼를 낳았다. 어미는 지난해에 낳은 자식들을 쫓아내 버린다. 녀석들은 멀리숲속으로 이사하여 뿔뿔히 독립해 나갔다. 가을이 되자 어미는 다자란 새끼들에게 대추나무를 맡기고 다시 멀리 떠나버렸다. 내년 봄이 되면 어미는 또 올것이다. 지난해와 똑같이 새끼를 낳을것이다. 그리고 해마다 반복할것이다...

“형님, 미물들의 모정도 엄마찾아 삼만리처럼 아름답고 슬퍼요. 고향의 과일나무를옮겨다 심으면서 먼저가신 어머니 아버지를 많이 생각합니다"

소꿉장난처럼 취미로 가꾼 것인데도 맛있다. 난 그가 보내준 배 감(홍시) 대추를 먹으면서 미당서정주를 생각했다. 미당은 대구에 사는 제자가 감을 보내오자 너무 맛있어 일필휘지로 이렇게 썼다. “徐芝月이의 紅柿”

“大邱의 詩人 徐芝月이가/ "자셔보이소"하며/ 저희집에서 딴 紅柿들을 가져왔기에

보니 거기엔/ 山까치가/ 그 부리로 쪼아먹은/ 흔적이 있는 것도 보여서/ 나는 그걸 골라 먹으며/ 이런 논아먹음이/ 너무나 좋아/ 웃어자치고 있었다.“

지월이가 미당에게 보낸 홍시가 호영이가 등촌에게 보낸 홍시만 할라구!

등촌, 이계선 목사 / 제1회 광양 신인문학상 소설 등단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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