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정민철 부장을 위한 변명
송곳 정민철 부장을 위한 변명
  • 김기대
  • 승인 2015.11.17 04: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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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우리 모두는 시시한 죄인일 뿐이다

최규석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jtbc의 드라마 송곳이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공중파가 아닌 종편 채널이라고 해도 그리 높지 않은 시청율인 1% 후반대를 기록하는 드라마가 이처럼 모든 언론, 네티즌들에게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정부의 ‘쉬운 해고 정책’, 양극화 등이 오늘의 상황을 잘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배경은 노무현 정부때다). 특히 배우들이 쏟아내는 명대사가 주는 깊은 울림도 적지 않다.

드라마는 대형마트의 과장인 이수인(지현우 분)과 부진 노동상담소 소장인 구고신(안내상분)을 두축으로 전개된다. 노동상담소의 이름이 재미있다. 원작 웹툰에서는 어떠한 연유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으나 노동 조합에 적대적인 삼성계열에 속한 jtbc에서 이런 노동 드라마를 방영하는 것도 의아한데 노동상담소의 이름은 삼성가의 후계자 중 한명의 이름인 (이)부진이다.

이수인은 딱히 정의롭다고는 할 수 없으나 부조리한 것을 못 견뎌하는 성격이다. 그래도 군대라는 곳이 가장 부조리가 적은 곳 같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지만 군대내 부조리를 견디다 못해 대위로 제대해 대형마트에 취직했다. 그는 윈리원칙을 강조해 마트 직원들에게도 인기가 없다. 그러던 어느날 구조 조정을 위해 해고할 직원을 솎아내라는 상급자의 지시를 거부하고 관리직 사원의 신분이면서도노동 조합 결성에 앞장 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이과장을 위해 근처의 노동 상담소 소장인 구고신이 개입한다. 그는 유쾌하게 노동운동을 돕지만 실제로는 아픔이 많은 사람이다.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고문끝에 친구들의 이름을 대고 풀려난 아픈 과거가 있다. 고문 후유증으로 생긴 신부전증이 배신의 훈장처럼 그를 따라 다닌다.

노동조합을 결성함으로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수인은 자신이 대신 싸워주고 있는 마트 직원들의 지질함에 실망한다. 이 장면에서 구고신의 명대사가 등장한다.

 

시시한 사람들을 향한 공감

“이보시오 이과장, 지금 당신은 선한 약자들을 위해 악한 강자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오. 시시한 약자들을 위해 시시한 강자들과 싸우고 있는 것을 아시오”

이 말이 이수인의 뒤통수를 때린다. 내가 하는 일이 선하기 때문에 나에게 혜택을 받는 사람들도 선해야 한다는 논리는 노동운동을 포함한 어떤 형태의 운동에서 실패를 향한 지름길이다. 그들은 사회의 평등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투사들이 아니라 월급 좀 오르면 좋아하고 손해는 덜 보면서 열매는 평등하게 공유하고 싶어하는 그저 그런 사람들이다.

실제로 구고신 역을 맡은 배우 안내상은 신학을 전공한 학생 운동권 출신이다. 최근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실제 자신의 운동은 실패했고 극중 구고신의 운동은 성공했다고 말했다. 무슨 뜻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극중 이 대사같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노동 운동에 뛰어 들었을 때 함께 하던 노동자들은 틈만나면 술과 여자 이야기만 했는데 여기에 환멸을 느꼈었기에 실패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운동에 투신했는데 그들에게서 평등 정의같은 선한 말만을 기대했지만 그들은 그냥 자신의 삶이 조금 나아지기를 바란 사람들일 뿐이었다. 젊은 안내상은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실패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예수로 인해 구원받는 죄인들은 ’선한 약자’가 아니라 지질한 죄인들이 아니던가?  우리에게 ‘선함’이라는 작은 공로라도 있다면 기도할 때마다 왜 그리 ‘아무 공로 없는 죄인’이라고 외치는가?  이처럼 송곳의 대사 중에는 현대인을 위한 ‘복음’같은 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불쌍한 정민철 부장

드라마가 흥미를 유발하려면 악역과의 대립구도가 형성되어야 한다. 송곳에서 악역은 정민철 부장(김희원 분) 이다. 그는 고위 관리직을 대신해 노조를 와해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조폭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장면처럼 그는 ‘넘버 3’정도라고 인식시켜 주면 서슴없이 손에 피를 묻힐 사람이다. 고위 관리직들은 그를 전면에 내세운다. 나는 ‘선한’ 일을 하는 주인공들보다 그에게서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는 아무런 스펙도 없이 바닥부터 올라온 사람이다. 정육부에서 일할 때는 칼질을 하다가 엄지 손가락 힘줄이 끊긴적도 있다. 그 부상 때문에 혹시라도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노심초사하면서  제 때에 치료를 받지 못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지 못하는 장애를 얻었다. 이것이 다른 직원들에게 놀림감이 되어도 그는 앞만 보고 달려 왔다. 육사출신의 이수인처럼 변변한 학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구고신에게는 한때마나 정의를 위해 싸웠다는 화려한 ‘이력’도 있고 지금은 노동상담소의 공간을 무상으로 빌려주고 운영비도 도와주는 부자 친구도 있다. 하지만 정민철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이까지 올라왔다. 홀로 서기에 성공한 정부장 눈에 비친 노조원들은 자신을 희생할 줄 모르고 출세의 방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 극중 정민철 역을 맡은 배우 김희원과 웹툰 속의 정민철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 정책을 펴는 정당에 투표하고 저학력자들일수록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진보정당보다는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 행태, 고엽제의 주범인 미국을 도리어 찬양하며 친미집회를 여는 고엽제 전우회, 노인 수당이 깍여도 복지를 축소하는 자들을 지지하는 노인들을 우리는 냉소적으로 비난만 해왔다. 우리 의식 저변에 ‘그러니까 저들이 무식하고 가난하지’라는 생각을 차마 꺼내지 못했을 뿐 누구나가 가지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시시한 강자들은 정부장 같은 사람이 스스로 ‘넘버 3’는 될 것이라고 착각하게끔 만들어 당근과 채찍으로 그를 관리해 왔다. 반면 ‘선한’ 진보들은 정부장 같은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기 보다는 제 출세를 위해 앞뒤 안가리는 사람으로 비난한다. 따라서 그는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계몽 혹은 배척의 대상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제 정신을 가진 선한 약자’들을 위해 논리를 전개하고 설교를 하는 똑똑한 진보임을 내세우면서 약자 코스프레를 해 왔다. 배우 안내상은 젊은 시절 노동 운동의 현장에서 ‘제 정신을 가진 선한 약자’들만을 만나기 원했던 것이 실패였다고 진솔하게 고백하지만 그런 문제 의식 조차 못느끼는 사람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이른바 진보 신학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설교는 어려우며 고통에 처한 교인들을 향한 공감보다는 이겨내라는 당위적 선포만이 가득하다.  존밀뱅크나 미로슬라브 볼프에게서 전통 교리가 진보적 담론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전통교리를 깍아 내려는 진보들도 많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속죄’교리다.  왜 진보들은 속죄 교리를 애써 폄하하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시시한 약자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강한 약자가 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 시시한 약자(죄인)들이다. 이수인도 그렇고 구고신도 그렇고 정민철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우리 모두가 시시한 존재라는 것을 공감할 때 시시한 이들과 연대할 수 있게 된다.

드라마가 끝나지 않아서 정민철 부장의 운명을 알 수 없지만 그가 신파영화의 한 장면처럼 후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가 그대로 악역으로 남아 ‘사회 구조적 모순’이나 떠들면서 개인에 대한 연민이 부족했던 나같은 얼치기 진보들에게 지속적으로 죄책감을 주는 역할을 계속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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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검 2015-11-21 02:55:17
시시한 약자임을 알고 같이 손을 잡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