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 하나님 나라를
헬조선에 하나님 나라를
  • 최태선
  • 승인 2015.11.28 04:0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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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지옥의 속성은 '차별'

어느 산골 마을 이야기가 티브이에 방영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송이 버섯을 채취하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개인별로 송이 버섯을 채취했는데 이제는 마을에 작목반을 만들어 공동으로 채취하고 공동으로 그것을 팔아 마을 사람들 전체에게 공평하게 그것을 배분한다고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송이를 채취할 때는 숨겨놓기도 하고 다툼과 갈등이 있었지만 공동으로 채취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런 다툼이 사라지고 마을의 화합이 이루어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귀농한 한 분이 이장이 되어 추진하고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마을을 공동체로 만들어 사람답게 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표 한 가지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더 이상 노인들이 요양원에 가서 삶을 마감하는 일이 없도록 마을이 노인들을 돌볼 것이라는 목표였습니다. 참으로 귀한 생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답게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먼저 이 이야기를 소개한 것은 지옥의 본질을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오래도록 천국과 지옥에 관한 글들을 읽으며 발견한 것은 서양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해가 매우 대조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특징적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들은 거의가 단테의 신곡이 기조가 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해는 거의가 고래의 전통적인 이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 이들이 정말 천국과 지옥을 보고 다녀왔다면 같거나 표현은 다를지라도 어떤 공통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뇌를 공부하면서 그런 기억들이 착각이나 어떤 뇌의 현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천국과 지옥을 찾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이 없다거나 그저 산자의 상상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서가 말하는 천국과 지옥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더욱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살기 어려워진 현실을 '헬조선'이라는 말에 담아 표현합니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현실이 각박해지고 살기 어려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의 체념어린 표현에서 지옥의 본질을 발견하고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천국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혼탁해지고 쇠락하는 기독교를 쇄신하고 복음의 복음됨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설교 중에 성도들에게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 본적이 없는 질문이어서 잠시 동안은 아무 대답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대답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대답들은 모두가 좋은 대답들뿐이었습니다. 한국사람 특유의 '정답 말하기'. 혹은 '방송용' 코멘트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질문하기 전에 제 마음속에 있던 답은 좀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한 것은 적의 목을 발로 밟고 까불 테냐고 물을 때'라고 그 답을 밝히자 성도들의 반응은 '설마 그럴 리가'였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저의 설명에 성도들은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그런 존재입니다. 오늘날 '갑질'이라는 표현이 일상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사회를 생각해보면 그것이 사실이며, 자신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비즈니스나 일등석 항공탑승권을 가지고 줄을 서지 않고 먼저 들어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복잡한 주차장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좋은 차를 타고 무료 발레파킹 서비스를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VIP 고객이 되어 향기로운 고급 커피를 마시며 편히 앉아서 일을 처리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을 그냥 혼자서만 즐길 수 있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얼마 전 땅콩 회항 사건이나 백화점 주차장 사건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것이 불특정한 다른 사람들을 향해 자연스럽게 표출되기 시작하면 그곳에 지옥이 건설되기 시작합니다. 갑의 입장에 선 사람에게는 분명 당연하고 품격 있어 보이는 일이지만 을의 입장에 있는 상대방에게는 굴욕이며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지옥의 본질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 차별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사람 차별은 인간의 존엄을 사라지게 하고 불평등과 불의와 힘의 대결을 일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사람이 죽지 못해 사는 곳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지 못해 사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렇다면 지옥의 본질이 사람 차별이라는 지적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처음에 소개한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누구나 지옥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바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그것을 조금 성서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창조의 모습대로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인간의 존엄이 살아나는 곳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 천국이 건설되고 있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바로 이러한 천국을 이 땅에 건설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느날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천국에서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마18:1) 다른 복음서의 병행기사를 보면 이 일로 제자들이 다투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다툰 이유는 천국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천국은 평화로운 정의의 나라라기보다 높은 자리, 힘과 권력 그리고 부와 명예를 보장해주는 자리였습니다. 그들은 그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경쟁해야 하고 비교해야 하고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들에게 천국은 여전히 명예와 권력과 부와 욕망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바로 그런 명예, 권력, 부, 욕망과 같은 현재의 추구가 멈추는 곳입니다. 천국은 명예와 권력, 부와 욕망을 향한 다툼이 멈춘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이란 혹은 믿음의 여정이란 바로 천국을 향한 여정이며 동시에 천국에 합당한 존재로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구원이란 바로 그 여정에 들어서기 위한 준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기 위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행위를 강조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으로 희생하여 그동안 옛 사람의 특징이었던 적의를 말살한다면 명예와 권력, 부와 욕망을 위한 다툼과 사활을 건 치열한 경쟁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그 과정에서 새 사람이 천국에 합당한 존재로 존재의 변화를 이루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옥의 본질은 차별에 있습니다. 구원은 바로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선한 일에 참여함으로써 세상을 특징짓는 차별을 철폐하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헬조선을 구원하는 길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을 정작 그리스도인들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주변에 지옥을 짓고 있는 모습은 단순하게 아이러니하다고 표현할 수 없는 가장 큰 비극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그런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볼 수 있습니다. 부자는 날마다 즐기며 살았습니다. 좋은 것을 먹으며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누렸습니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누구이건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거지 나사로입니다. 그는 부자가 먹는 식탁 밑에서 부자가 흘리는 음식을 주워 먹었습니다. 부자는 너그럽게 그것을 허락해주었습니다. 부자는 가끔씩 일부러 부스러기를 던져주면서 그것을 율법에서 말하는 자선을 베푸는 일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행동을 성서는 개만도 못하다고 평가합니다. 개가 와서 나사로의 헌데를 핥았습니다. 개가 핥는 행위는 치료였고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부자는 개만도 못하게 행동하면서도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만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었고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게 되어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자의 이야기를 들었으면서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 부자의 근본적인 잘못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부자는 사람을 차별하였습니다. 그는 나사로를 식탁에 앉히고 함께 먹어야 했습니다. 자신이 건널 수 없는 큰 구렁텅이를 자신과 나사로 사이에 공들여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짧지만 강렬하게 지옥을 보여주는 성서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부를 만큼 삶이 팍팍해졌습니다. 삶이 풍요로워진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졌습니다. 청소년들은 입시 지옥에 시달리다 못해 가출과 자살로 내몰리고, 청년들은 3포세대, 5포세대, 7포 세대가 되고, 장년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실직과 자식과 부모 모두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의 세대가 되었고, 노인들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인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들이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간증하기를 지속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복음의 왜곡 정도가 아니라 복음의 사망 선언입니다. 더구나 복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서두에서 이야기한 산골 마을과 같이 믿는 사람들보다 더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일을 여기저기서 실천하기 시작한다면 복음은  그야말로 터 자체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헬조선은 다름 아닌 어둠입니다. 복음이 빛으로 대조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의 복음 됨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곳곳에 '산 위의 동네'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희망의 등불이 되는 교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존엄이 살아나고 생명이 역사하는 평화의 나라가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땅에 건설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품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평화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싶습니다!!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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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Kim 2015-12-08 22:58:15
어지니 교회를 서치해도 찾을 수가 없군. 교회 홈 페이지나 주소를 게시해주면 좋겠는데. 혹 없는 교회인가?

David Kim 2015-12-08 22:47:24
천국과 지옥에 장소와 공간의 개념이 없다면 불교와 차이가 무얼까? 최태선 목사의 설명을 듣고 싶군.

David Kim 2015-12-08 08:56:45
결국 성경적인 지옥의 본질은 비참한 인간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라는 것이 최태선 목사의 성경관이군요. 결국 잘 살고 행복하면 천국이다라는 것이군요. 장소와 공간의 개념은 없다는 것이군요.

이강진 2015-12-02 11:05:31
감사하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