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카드
크리스마스 카드
  • 이계선 목사
  • 승인 2015.12.05 0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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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이계선 목사 ⓒ <뉴스 M>

“아빠, 12월이 됐는데 왜 아빠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안보내고 있어요? 전 같으면 11월에 발송하여 지금쯤 받고 있을텐데.... 금년에도 보내세요. 아빠의 크리스마스카드를 기다리는 분들을 생각하셔야지요. 아빠의 성탄카드는 단순한 카드가 아니에요. 시와 그림으로 쓴 단구(短句)가 들어있는 아름다운 작품이에요. 아빠가 쓴 소설이나 칼럼만큼 멋진 작품이란 말이에요”

둘째 딸 은범이가 재촉이다.

4년전 여름, 어머니를 뵈러 한국에 갔었다. 어머니방 경대앞에 철 지난 크리스마스카드가 놓여있었다.

“어머니, 크리스마스 지난지가 반년이 넘었어요. 유통기간이 지났으니 이제 버려요”

“아니야, 오는 성탄절 까지 그대로 둬야해. 둘째아들목사가 미국에서 보낸 저 카드를 보고 있으면 난 맨날 성탄절인걸.”

말을 끝내고 카드를 열어보시더니 미소를 지으신다. 98세가 되신 어머니는 성탄선물을 받은 소녀처럼 행복한 모습이다. 카드속에 무슨 보물지도가 숨겨있기에 저러실까? 슬쩍 훔쳐보니 굵은 매직으로 쓴 이런 글귀가 보였다.

“어머니, 둘째입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걸 읽고 그렇게 좋아하시셨다. 왈칵! 슬픔인지 기쁨인지 알수 없는 뜨거움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꿀꺽 삼키려 하니 목이 메어버렸다. 목이 매여서 난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더욱 정성스레 성탄카드를 보내드려야지!’

그런데 지난해 어머니가 101세를 살고 돌아가셨다. 금년에는 7남매의 막내 완이가 죽었다. 졸지에 내 성탄카드의 고객을 잃은 셈이다. 그래서 카드보내기를 그만두기로 한것이다.

내가 언제부터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기 시작한지 잘 모른다. 분명한건 시작 후 난 평생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한해도 거른 적이 없다.

▲ 그동안 보냈던 크리스마스카드중 기억나는 것 한 두개.

“아빠가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지 않으면 많은 분들이 아빠가 돌아가신줄 생각할지도 몰라요”

둘째딸의 회유에 마음을 돌렸다. 금년에도 보내자.

미술을 전공한 딸들이 멋진 수제품카드를 만들어 주겠단다. 대통령처럼 싸인만 하면 된다나?

“아니다. 난 청와대에서 새마을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식의 성탄카드는 질색이다. ‘근하신년(謹賀新年),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하는 입에 발린 인사는 허세(虛勢)요 위선(僞善)이요 요식(要式)이야. 내 필체로 내 마음을 담은 카드를 보내야지”

카드 100장을 사서 주소를 썼다. 컴퓨터에 입력된 주소를 카피하여 가위로 오려낸다. 봉투마다 일일이 주소를 풀로 붙였다. 신식과 구식 반반인 셈이다. 레버메이커 만은 못하지만 볼펜으로 쓰는것 보다는 훨씬 빨랐다. 이제 카드안만 채우면 된다.

파킨슨을 앓고 있어서 손으로 하는 일이 힘들다. 겨우 주소만 붙였는데 몇시간이 걸렸다. 몸이 무겁고 피곤하여 꼼짝을 못하겠다. 그래도 해외카드는 얼른 보내야지. 한국으로 가는 카드를 열었다. 피곤한 머리라 인사문구가 안 떠오른다. 꽃가지에 매달려 피어있는 매화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단구(短句)를 넣어야 하는데!

가만히 이름을 불러본다.

이름마다 그리움은 아름답게 밀려오는데 형상이 안 된다. 한글자 쓰기도 힘들다. 억지로 써 보지만 맘에 차지 않는다. 그래도 13장을 써서 한국으로 보냈다. 못하겠다.

“은범아, 네가 아빠 대신 성탄멧세지를 써 넣어줘야겠다. 넌 누구보다도 아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아빠하고 저하고 우리 둘이 써요. 그럼 힘이 반밖에 안 들 테니까”

은범이는 거실에 앉은뱅이 밥상을 펴놓고 카드를 쓰기 시작했다. 한 웅큼을 들고 서재로 들어왔지만 착상(着想)이 안 된다. 자꾸만 이름을 불러본다. 이름에 가장 아름다운 단구(短句)나 단시(短詩)가 떠오를 때 까지...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죽을 이름이여”

초혼(招魂)에 실패한 무녀(巫女)처럼 참담한 마음이다. 포기하고 있는데 계시처럼 떠 오르는 발상(發想).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상(詩想)은 바로 그 이름 자체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난 굵은 매직펜을 들었다. 매직(Magic)은 이름 그대로 요술을 부리는 서양 붓이다. 그림처럼 글씨를 쓸수 있기 때문이다. 난 뒤늦게 언문을 깨우친 바보처럼 카드에 신나게 이름을 써넣기 시작 했다. 그 넓은 카드여백을 이름 석자로 채우는 것이다. 신기하다. 크게 써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좁쌀 글씨로 점을 찍어놨는데 여백을 가득 채우는 이름도 있다.

어느 이름은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단번에 갈겨썼는데 관운장의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처럼 풍운조화를 일으킬 듯 웅장무비(雄壯無比) 명필무쌍(名筆無雙)이다. 어느 이름은 왕희지의 필법으로 열 번을 고쳐 썼는데도 여전졸필(如前拙筆)이고.

아하! 그래서 이름을 명성(名聲)이라고 하는구나. 100명의 이름을 다 쓰고 나니 난 갑자기 100명의 호걸들을 얻은 양산박 두령이라도 된 기분이다. 금년 돌섬성탄절이 메리크리스마스가 될것 같다. 돌섬통신 독자들에게도 메리크리스마스를!

등촌, 이계선 목사 / 제1회 광양 신인문학상 소설 등단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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