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보는 목사들……
야동보는 목사들……
  • 조경윤 목사
  • 승인 2015.12.12 01:3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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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조경윤 목사 ⓒ <뉴스 M>

한국 횟집 스시바에서 일하면서 번듯한 사업을 운영하는 40대, 50대의 아저씨들이 음란 동영상을 카카오 톡으로 주고 받으면서 노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신학교, 교회, 집을 중심으로 순진하게만 살던 나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세상은 요지경 그 자체였다. 그들은 지식인들이었고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들이었다. 야동은 주로 10대나 20대의 피끓는 청춘들이 보는 것으로 알았는데 가정을 가지고 있고 부부생활을 하는 어른들이 보는 것이었다.

스시맨들과 친해진 분들이 스마트폰으로 영상들을 보내오곤 했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8년째 쓰고 있는 구형 전화기를 가지고 있는 내게는 보낼 수가 없었다. 어느날인가 스시맨 중에 하나가 “조형 이것좀 봐봐” 해서 봤더니 너무나도 예쁜 금발의 미녀가 남성의 성기를 달고 있었다. 더럽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사단은 그렇게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며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었다. 교회 안에만 있던 나는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내가 경험한 세상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대도 담대하게 코를 베어가는 곳이었다. 살벌한 전쟁터였다.

제목이 충격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본인이 충격적이라고 느끼는 것 만큼 목사에 대한 착각과 오해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제목에 끌려서 클릭을 했다면 인터넷 상에서 활동하는 21세기 버전의 수많은 보디발의 아내들과 데릴라들에게 본인이 유혹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했다고 보아야 한다. 어쩌면 이미 유혹의 늪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목사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시험이 없고, 상처가 없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일정부분 목사를 신령한 도인으로 전설에 나오는 산신령과 비슷한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신령한 목사라 하면 하나님의 뜻을 모두 다 알고 직통으로 계시를 받고 예언을 하는 줄 안다. 아니다. 목사도 평신도와 똑같은 사람일뿐이다. 다만 사명받은 종으로 사역이 다를뿐이다.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에 힘겨워 할 수 있고, 실수 할 수 있고, 실패도 할 수 있다. 오히려 안쓰럽게 여기며 기도해 주어야 한다.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있을 때, 시험을 이기고, 유혹을 물리치며,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다.

연약한 존재이지 결코 전능한 존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 자신이 전능한 존재인 것처럼 영적으로 대단한 능력을 가져서 성적인 문제를 초월했다고 하면 이 자가 위험한 인물이다. 두고 보라 언젠가 크게 사고를 치게 될 것이다. 이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어떤 면이든 교만은 절대 금물이다.

모든 인간은 자연스런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배고프면 먹고 싶고, 졸리면 잠자고 싶고, 성적인 욕구가 일면 성적인 행위를 하고 싶다. 먹지 않고, 잠자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이 없는 것처럼 성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도 없다.

왜 목사는 야동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는가? 목사 역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죄성을 가득히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다. 말씀충만하고 성령충만하면 육체의 정욕을 이길 수 있지만 100번이면 100번 다 시험과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죄성은 강하다. 로마서 7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절규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는 한 번 넘어질 수도 있고, 그 보다 더 많이 좌절할 수도 있지만 100번 중에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을 수는 없다.

이래서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오직 예수님 밖에는 없다. 시간마다, 분마다, 초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 목사라 하여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목사가 사고치면 더 큰 사고가 된다.

목사들의 불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 백, 수 천 명의 목사들이 이 유혹을 못이겨서 7계명을 범하고 넘어졌다. 최근에는 목사들이 여성의 특정 부위를 몰래 촬영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 자체가 복음의 걸림돌로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차세대 기독교 지도자로 출판하는 책마다 베스트 셀러를 기록했던 삼일교회의 전병욱 목사도, 뉴욕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웠던 뉴욕장로교회의 이영희 목사도 모두 범죄하였다. 특별히 더 충격적인 것은 두 사람 모두 수 년 간에 걸쳐서 여러 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스님도 예외는 못 된다. 스님의 아들로 태어나서 불교계의 큰 스님으로 대한불교 정토종 포교국장과 교육국장을 역임했던 김성화씨가 저술한 <극락의 불나비>에 의하면 스님들의 타락상이 잘 나타나 있다. 삼 천 번제하러 온 여신도들이 향에 취하게 되면 비몽사몽간에 겁탈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의 은덕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팔도 강산에 넘쳐 난다는 것이다. 스님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케톨릭의 신부들은 어떠한가? 프란시스코 교황은 성추행, 성폭행, 게이가 된 사제들 수 백 명을 파문했다. 지금까지 징계를 받은 수를 모두 합친다면 아마도 수 천 명은 될 것이다. 바티칸 회의에 제출된 리포트에 의하면 수녀를 상대로 한 사제들의 성폭행이 심각하고, 카톨릭 신부들의 AIDS 사망률은 일반인의 4배라고 한다.

남자 선생님이 십 대의 여학생과 성관계를 맺고, 여자 선생님이 남학생과 교내에서 성관계를 갖은 이야기는 이제는 흔한 이야기이다. 심지어는 나이가 지긋하신 교장 선생님도 성추행과 성폭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뉴욕주 검찰총장 출신으로 미국 금융계의 부정비리를 엄단하면서 월가에서 공포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엘리엇 스피처 뉴욕 주지사는 성매매 스캔들로 인해서 모든 공직에서 물너났다. 한국에서도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성기를 노출한 채 거리를 배외하면서 자위행위를 해서 공연음란죄로 처벌을 받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능력있는 대통령으로 인식되는 빌 클린턴 대통령은 주지사 시절부터 성추문이 끊이지 않더니 끝내는 르윈스키 섹스 스캔들로 온 세계를 뒤 흔들어 놓았다.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도 안마 시술소에서 성관계를 맺은 연유로 이혼을 당했다. 특별히 클린턴 저격수들로 맹렬한 비난을 퍼붓던 강경 보수파 공화당 의원들이 모두 스캔들로 망신살이 뻗친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마크 샌퍼드 주지사는 내연녀와 주고 받은 노골적인 이메일 내용이 공개되어 여론의 비난 속에서 물러나야 했고, 존 엔자인 연방 상원의원은 보좌관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서 정계를 은퇴해야 했고, 폴리 연방 하원의원은 10대 미성년자와 섹스 채팅을 한 것이 발각되어 미 정계를 뒤흔들었고, 리빙스턴 차기 하원의장은 불륜으로, 헨리 하이드 법사위원장은 섹스 스캔들로, 봅 바 의원은 혼외정사 사실과 완고한 낙태 반대론자이면서도 전처에게 낙태를 강요시켜 이중성이 드러남으로써 의원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여자도 예외는 아니다. 온라인 상에서 19금 영상을 주로 구입하는 관객층은 여성이 남성보다 앞도적으로 많고,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이 성인용품의 최대고객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을 벌하라는 군중들을 향해서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셨다. 아무도 감히 돌을 던질 수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떠나고 예수님과 여자만이 남게 되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한 것과 똑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인간의 기준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과연 이 세상에서 마음으로 음욕을 품지 않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없을 것이다. 단언코 없을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야동은 야한 동영상을 포함하여 신문, 방송, 문화, 예술, 인터넷 상에 퍼져 있는 모든 섹시한 영상과 사진, 그림 등과 인간의 음욕을 분출하는 상상으로 그려지는 모든 영상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 칼럼의 본래의 제목은 <야동보는 목사들, 스님들, 신부들, 정치인들,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다. 목사를 절대적인 능력자로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쯤에 있는 존재로 생각하면 안 된다. 목사는 전능자가 아니다. 절대자도 아니다. 지극히 연약한 존재요, 나약한 존재이다. 언제든 넘어지고, 얼마든지 실수 할 수 있는 평신도와 똑같은 사람이다. 왜 목사에게 시험받고, 상처를 받는가?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결코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그가 누구이든 사랑과 용서의 대상일뿐 믿음의 대상일 수 없다.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전병욱 목사는 단기선교에서 수고하신 목사를 위해서 여성 신도가 어깨를 안마해 주는 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무너졌다. 상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안마는 사모님이 해 주었어야 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주위에 사람들이 없는 상태에서 상담을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사단이 틈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혼인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가정이라는 보금자리 속에서 아름다운 성생활을 할 때 시험을 이기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찌 범죄할 수 있겠습니까?” 고백했던 요셉처럼 보디발 아내의 집요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거룩한 성도,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스시 만드는 목사 조경윤 <생명나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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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 2015-12-16 15:10:27
음란이란 모든 종교가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음란해야 아기를 만들수 있다. 음란의 대상이 결혼한 부부사이에 한정되면 얼나나 좋을것이며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사방팔방으로 향하는데 문제가 있다. 호르몬의 영향인가 유전의 영향인가 원죄인가. 돌물같이 중성화 수술을 하면 좋으련만. 평양노회에서 면죄부를 주었다는데 왜 이리 다윗은 많고 요셉은 없는걸까.

어이 없음 2015-12-15 13:30:30
전병욱 목사는 단기선교에서 수고하신 목사를 위해서 여성 신도가 어깨를 안마해 주는 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무너졌다... 이 글은 전병욱씨 죄를 희석시킬 우려가 있다.. 안마라니..본인은 원치 않했는데,, 안마를 해 줘서 받고 보니...성폭행까지 갔다는 말인가? 대체 예수가 어떻게 해 준다는 것인가? 결론은 예수만 찾으면 된다는 식의 설교는 허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