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원하는 것"
"신이 원하는 것"
  • 강남순
  • 승인 2015.12.13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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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강남순 교수 ⓒ <NEWS M/미주뉴스앤조이>

오늘 어떤 분이 나의 대학 이메일계정으로 긴 이메일을 보내셨다. 내가 한국일보 칼럼에 쓴 "성소수자 혐오는 인간에 대한 범죄"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서 대학 웹사이트를 찾아서 내게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성소수자 혐오는 인간에 대한 범죄")

그 분은 내가 그러한 글을 쓸 때, "하나님은 교수님께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든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성령을 받아서 "학문으로만이 아니라 신앙으로" "교수님 주변에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이 교수님께 원하시고 계신 것을 통해 은혜 받고 계신것을 공유할 수 있길 기도"한다며, 마지막에 "성령의 인도하심과 miracle touch"를 경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긴 이메일을 마쳤다.

나는 그 분의 염려를 충분히 이해 한다. 그리고 내게 '용기내어' 이메일까지 보낸 그 마음도 이해할 것 같다. 왜냐하면 성소수자들에 대한 극도의 부정적 이해, 그리고 그들을 반대하는 것이 신을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회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배워오고 이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이메일의 내용을 페북에 나누는 이유는, 그 이메일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신문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쓴 글에 대한 반응이고, 또한 그 분만이 아니라 무수한 다른 분들도 이러한 생각들을 하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종교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

그 분이 묻고 있는 물음, "신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내게는 분명하다. 자기 주변의 다양한 "타자들"을 사랑하고 포용하지 못하는 이들은 '신을 알 수 없다'는 것, 신이 원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을 보면, 이 '사랑'이란 정의, 평등, 평화와 함께 연계되어 있는 의미의 '사랑'임이 더욱 확연해 진다.

성서란 무엇인가에 대한 복합적 이해를 하게 되면, 성서가 역사속에서 왜 두가지 상충적인 역할, 즉 억압적 역할과 해방적 역할을 해 왔는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동일한 성서가 여성억압과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는데 쓰여져 오기도 하고, 여성평등과 노예제도 폐지의 근거로도 쓰여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서에는 갖가지 "상충적"인 메시지가 공존하고 있으며, 지금 시대와의 상황적 차이를 이해해야 성서속의 시대를 초월하는 불변의 절대적 진리 (사랑)와 시대에 제한된 이해들 (일부다처제, 여성차별, 신분차별, 이방인차별 등등)이 공존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존 카푸토는 그래서 "종교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 (for lovers)"이며 "비종교적인 사람이란 사랑없는 사람 (loveless)"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에서 '사랑'이란 낭만화된 개념이 아니라, 치열하게 정치적이고 역사화된 개념이다. 즉 구체적인 현실세계에서 '사랑'의 의미가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사회문화적으로 수용되는 의미의 개념이다.

성소수자들을 그토록 '혐오'하는 이들이 인용하곤 하는 그 성서에, 다음과 같은 "신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명증한 "진리"가 있음을 알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이 진정으로 "신-사랑"의 의미는 결국 "타자-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종교인/신앙인의 모습을 지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는 이들은 신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 . . .

신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이들은 신 안에 있고,
신도 사랑하는 이들 안에 존재한다. (요한1서 4: 8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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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성서 번역이 이 귀절의 심오한 의미를 잘 담아내지 않는 것 같아서, 영어 성서에서 번역했다. 기존의 성서번역본을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풀어서 쓴이유는 성서를 “낯설게” 하기 위함이다. 익숙하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텍스트일수록 그러한 “익숙함”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의미들을 발견하는 데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점이 내가 나의 글에서 사용하는 성서 본문을 기존의 한글 번역 성서를 사용하지 않고, 영어 성서를 의역하여 종종 사용하는 이유이다. 내가 사용하는 영어 성서는 주로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Bible> 그리고 <The Inclusive Bible: The First Egalitarian Translation> 이다.

강남순 교수 / Texas Christian University, Brite Divinity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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