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목사의 낙인'
'거짓 목사의 낙인'
  • 강만원
  • 승인 2015.12.24 01: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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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목사의 우월감'을 포기하지 못하는 겸손
▲ 강만원 ⓒ <뉴스 M>

여러 목사들을 만나면서 느낀 공통점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 '나쁜 목사'가 아니며, 모두 '타락한 목사'도 아니다. 사실 목사들을 만나 보면 '돈'에 대해서 유난히 깨끗한 목사들도 있고, '성'에 남달리 조심하는 목사들이 있다. 물론 사회의 불의에 치열하게 저항하는 목사들도 결코 적지 않다.

설령 가족들이 생활하기에 많이 부족해도 교회에서 사례비로 주는 '공적인 돈'이 아니면 더 이상 탐하지 않고, 심방이나 상담 때문에 여신도와 만나야 하는 일이면 어떤 경우에도 1 : 1의 만남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목사도 있다. 부지불식간에 '유혹의 수렁'에 빠지지 않으려는 분명한 의지의 표현이다.

돈과 성, 그리고 세속적인 권력과 분명히 거리를 두는 목사들의 경건한 모습을 보면서 '역시!'하며 감동과 동시에 조용히 머리를 숙이게 된다. 그들의 분별력있는 행동이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며, '나라면?'이라고 자문하는 순간, 그런 결정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도덕적인 의식과 행동만 분명했어도 한국교회는 이처럼 타락하지 않았고, 지금처럼 혹독한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목사들의 '배부른 짓'일 수 있겠지만, 소수일망정 그들의 타락한 행동이 결국 한국교회와 목사들을 '대표해서' 욕 먹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목사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가만히 따져보면, 나름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목회하는 목사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심지어 분노가 치미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바른 목사의 기본적인 자질은?"

하지만, 나는 그런 목사들을 보면서도 끝내 미덥지 못한 속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윤라와 도덕... 목회자로서 물론 중요한 덕목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른 목사'의 기본적인 자질은 그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윤리와 도덕, 그리고 열정과 헌신을 넘어서, 아니 그 이전에 바른 목사라면 반드시 지녀야 하는 전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목회자에게 윤리와 도덕, 열정과 헌신을 앞서는 근본적인 자질은 과연 무엇인가?

사실은 목사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역자'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인 동시에 의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그것은, 사역자라면 주의 제자로서 '제자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며, 제자도의 근본은 '겸손'이라는 것이다. 자유를 그토록 강조하시는 주께서 유일하게 제자들에게 '멍에를 매라'고 명령하신 것이 바로 '온유와 겸손'의 멍에다.

온유와 겸손은 언뜻 보기에 두 단어이지만 본질상 하나의 같은 의미를 지닌다. 즉, 낮은 자의 자리에서 '섬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께서 "세상의 집권자들은 사람들을 다스리고 권세를 부리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다"며, '섬기는 자가 되고 낮은 자가 되며 종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많고 많은 가치들 중에서 왜 '겸손'을 그토록 강조하셨을까? 믿는 자의 바른 행실로서 가장 중요한 도덕규범을 제시하신 것인가? 도덕이 지니는 소중한 가치야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믿는 자의 증거라는 성화는 도덕적인 잣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수께서 단순히 도덕적인 관점에서 겸손을 강조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에 도덕이 신앙의 전부, 또는 본질이라면, 그래서 도덕적인 행동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믿음을 제일공리로 내세우는'기독교가 선행을 강조하는 유대교, 또는 중세가톨릭과 본질상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예수께서 겸손을 강조하신 것은, '겸손을 위한 겸손'이 아니다. 다시 말해 도덕제일주의의 사변적 교훈이 아니다. 예수께서 절대계명을 주시면서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계명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그러나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았지만, 제대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극히 드물다.

이유인즉, 사랑하라는 말씀은 들었지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는 사랑의 기준과 방법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감정적인 사랑'에 머물지 않으며, 가족처럼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에 머물지 않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 사랑이며, 십자가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았는가.

예수의 십자가 사랑을 우리는 그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죄인이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욕망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조건 없는 희생과 헌신에 기꺼이 다가서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인정할망정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순종이 있다. 그것은 십자가의 사랑과 정신을 가슴에 새기면서 그것이 신앙의 기본이 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 예수의 사랑은... 신성의 발현 이전에, '자신을 비워 종의 신분이 되며' 자기를 철저히 낮춘, 종의 겸손이었다. 즉, 겸손이 없었다면 예수는 십자가 사랑을 절대로 실천할 수 없었다. 겸손이 사랑의 조건이며 순종의 전제였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겸손에서 비롯되는 사랑이기 때문에 예수는 우리에게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매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인간의 의지 이전에 신앙적인 순종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믿음'과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믿음과 순종, 겸손과 사랑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신앙의 한 축이다.

요컨대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겸손으로 형제를 섬기는 사랑이다. (이 글에서 나는 의도적으로 '섬김'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겸손과 불가분의 일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교회가 세상에서 지탄받는 이유는, 교회가 타락하고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영성을 잃은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교회와 교인들에게 사랑이 없기 때문이며 사랑이 없는 이유는 상대를 '섬기는' 겸손이 없고, 작은 자의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겸손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그리고 교인들이 겸손하려면 무엇보다 교회의 지도자인 목회자들이 겸손해야 한다. 교인들이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솔선해서 겸손의 본을 먼저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본'을 보이기 위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는가.

결론이다. 돈과 성에, 그리고 세속적인 명예에는 분명히 거리를 두는 목사들이 많지만, 나는 엄밀한 의미에서 겸손한 목사는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겸손한 말투, 겸손을 강조하는 설교, 겸손해 보이는 몸짓은 종종 볼 수 있지만, 진정 겸손한 목사를 보기가 너무 힘들다는 말이다.

무슨 뜻인가? 목회자가 오롯이 겸손하려면.... 목사의 어설픈 권위의식을 버려야 하며, 허튼 소명의식을 내세우지 말아야 하고, 스스로 목자인양 교인들을 어리석은 양처럼 대하는 교만을 버려야 하는데, 대부분의 목사들이 다른 것들은 포기할 수 있어도 '목사의 우월감'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소명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한 겸손한 목사일 수 없으며, 겸손하지 못한 목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도 실천할 수도 없다.

물론, 그리스도의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목사는 주의 사역자일 수도 없으며, 10가지 중에서 9가지를 잘한들, '본질'에 해당하는 한 가지를 잘못하면 사실상 전부 잘못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목사들을 주의 종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며, 목사의 허튼 우월감이 바로 거짓 목사의 낙인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강만원 / <아르케 처치> 대표,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저자, <루나의 예언> 역자, 종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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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2015-12-26 09:11:29
이 분은 어릴 때 큰 상처가 있는 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글들이 비판을 위한 비판이네요.뉴스엠에서 이 분의 글을 이제 그만 봤으면 하는 새해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