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버려야한다!
'권력'을 버려야한다!
  • 강만원
  • 승인 2015.12.31 0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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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만약에 목회를 하시면서 교인들이 한 2000명쯤 되도 지금처럼 말씀하실 수 있겠어요?"

"솔직히 이런 말씀 드려도 되나요? 지금은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말씀은 이렇게 하시지만, 솔직히 다른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권위적이신 것 같아요."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선생님 인상을 보면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요."

 

▲ 강만원 ⓒ <뉴스 M>

이구동성이다. 아마 내가 목회자가 된다면 다른 어떤 목사들보다 권위적인 목회를 할 것 같은가 보다. 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목회자가 된다면 어떤 목회를 할 것인가...?

맞는 말이다. 목사들의 거짓과 교만을 험하게 비난하는 내가 목회를 해도 '권위'를 버리지 않을 것 같다. 언행일치가 되지 않아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 없는 목회자는 제대로 목회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교인들을 돌보는 자가 최소한의 권위가 없다면 어떻게 맡은 중책을 감당할 수 있는가? 진실을 말한다면, 나는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과 차원이 다른, 훨씬 강한 권위를 지니고 싶을 것 같다.

다만 그 권위는 지금 목사들처럼 돈과 권력과 명예를 지니고 교인들 위에서 군림하는 권위는 분명히 아니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그런 권위는 속된 권위로서 모래 위에 세워진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명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비판적인 말을 하고 글을 쓰면서 단 한 번도 목사들의 권위를 부정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분명히 말하건대 목사는 당연히 권위가 있어야 한다. 다만 진정한 권위가 있기 위해서는 '권력'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목사가 교회에서 재정, 인사, 행정의 전권을 장악해서 과연 권위를 지녔다고 생각하는가? 단언컨대, 아니다! 나는 목사들이 그런 허탄한 권력에 연연하기 때문에 진정한 권위를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영적인 질서에는 반드시 반비례의 법칙이 작용한다. "너희는 ... 높아지려거든 낮아져야 한다"는 말씀의 바른 해석이 이에 적용된다. 즉, 물리적인 권력에 연연하는 만큼 영적인 권위는 작고 초라해진다. 다시 말해 목사가 돈이나 만지작거리면서 교인들을 탐색하고, 자기 사람들 세우려고 인사에 매달리고, 자기 욕망에 따라 교회를 운영하려고 행정에 연연하는 순간, 진정한 권위는 사라질 뿐이다.

목사의 권위는 교인들의 사랑과 존경에 의한 신뢰가 전제가 돼야 하며, 사랑과 존경은 교회의 제반권력을 가차 없이 버린 자의 담대한 겸손에서 비롯된다.

말씀에만, 오직 말씀에만 전념하는 목사는 허탄한 것들을 바라보지 않는다. 주를 바라보며, 주의 계명을 가슴에 새기며,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교회의 가난한 형제들, 상처 입은 형제들, 소외된 형제들, 남몰래 눈물 흘리는 형제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이 바로 세상에 오신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헐벗은 자, 목마른 자, 병든 자, 굶주린 자, 감옥에 갇힌 자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다"는 말씀은 성경책의 글자들을 채우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를 가르는 심판의 근거이며 구원의 증거라는, 실로 준엄한 말씀이다.

교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나약한 형제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걷히고 그 자리에 밝은 웃음꽃이 피는 그 만큼,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깃든... 진정한 교회이며 구원의 은혜를 입은 교회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새해는 온 몸을 던져 실천하는 한 해가 돼야 할 것 같다...

강만원 / <아르케 처치> 대표,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저자, <루나의 예언> 역자, 종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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