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중력과 은총
다시 중력과 은총
  • 박총
  • 승인 2015.12.31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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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아니 벌써!"

박총 ⓒ <NEWS M/미주뉴스앤조이>

세모인 이맘이면 누구나 내뱉는 한마디가 내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그래. 올해도 하루치의 꼬리만 남았고 내일이면 나도 마흔하고 여섯, 어느새 40대 후반이다.

평소 어려 보인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가게에서 나보다 어린 주인에게 반말을 듣기 일쑤다. 강의하러 가면 은근히 무시하는 눈길도 예사다. 하지만 동안이면 뭐하나. 뱃살은 늘어나고 턱은 처지고 어깨는 내려앉는다. 그렇게 처지고 늘어지는 내 몸이 가끔 끔찍할 때도 있다. 세월의 청부를 받은 중력은 몸을 사정없이 아래로 잡아당긴다. 소싯적 위로 솟구치던 체액과 기력은 중력에 굴복, 하강을 거듭한다.

이십대, 아니 삼십대 중반만 해도 중력이 이렇게 성가시진 않았다. 내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발은 땅에서 떨어져 우주유영을 하는 우주인처럼 들떠 있었다. 보통 결혼하고 자식이 생기면 달라질 거라는데 나는 애비가 되어서도 인생의 무게감을 못 느꼈다. 유학 시절엔 네 아이의 아빠에, 풀타임 학생에, 교회 사역에, 책 저술도 모자라 가족 부양을 위한 파트타임 일을 세 개나 하면서도 가정과 학업과 사역과 집필에서 두루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철(Fe)이 덜 들었는지 현실이라는 자기장 안에서도 처지라는 N극이나 상황이라는 S극에 끌려 다니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 내 발은 땅에 질질 끌릴 정도로 무겁고 그 위 얹힌 몸뚱이는 날로 버겁다. 내 몸이 중력에 저항할 기력을 뺏기면서 내 발목까지 땅에 잠긴 것 같다. 그렇게 점점 땅속으로 스미다가 머리끝까지 잠기면 흙으로 돌아가는 거겠지. 그럼에도 지긋지긋한 중력에게 감사한다. 나를 고단하고 비참하게 했지만 생생한 삶의 자리로 내려오게 한 중력에게 경의를 보낸다.

 

중력 덕에 밥벌이의 고단함을 안다. 낮은 포복으로 사는 이웃들의 고단함을 안다. 날마다 내 인격과 체력의 바닥을 보게 하는 네 아이를 몸으로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안다. 영성의 길은 왕의 길(via regina)이 아닌 노동의 길(via laborosa)임을 안다. 우리 어머니와 안해가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알게 된 건 덤이다.

중력 덕에 한계를 안다. 꿈이 이뤄지지 않음을 받아들일 줄 안다. 이제 더는 '자유혼'으로 살지 못함을 안다. 인생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도 받아들일 줄 안다. 우울증과 관절염에 걸린 몸을 탓하지 않고 보듬을 줄 안다. 산행을 다녀오면 절뚝이며 나이티를 내는 무릎을 한하지 않고 주무르는 내 모습이 아름답다.

중력 덕에 나됨을 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하는 나를 정죄하지 않는다. 내 안에 눈물과 분노가 살아있음을 귀히 여긴다. 종교인으로서 강박적인 이타성을 따르기보다 내 감정을 먼저 챙겨야 함을 안다. 루미가 말했듯 "당신이 지금 스스로에게 충실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끔찍한 해를 끼치고 있는 것"임을 안다. 이제 더는 소명이나 비전이란 명분하에 커다란 성취를 이루려 하거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려 하지 않는다. 그저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사역이자 가족과 이웃에 대한 가장 큰 기여임을 안다.

중력 덕에 남은 생이 짧음을 안다. 고통스러울수록 사랑하는 이들과 더 재미지게 살아야 함을 안다. 레싱이 왜 "모든 것을 게을리 하세. 사랑하는 일과 한 잔 하는 일을 빼놓고서."라고 했는지 안다. 이 땅에 더 밀착되면서 먹을거리를 비롯한 의식주가 영성의 고갱이임을 안다. 이 땅에 더 천착하면서 불의에 더 치열하게 맞서 싸워야 함을 안다.

중력 덕에 하느님을 안다. 스스로 자신을 제한하여 우리와 더불어 중력의 무게를 온 몸으로 받아 내리고 결단하는 신만이 내가 사랑하는 신이며, 내가 감히 닮으려는 신임을 안다. 하여 신은 구름 위가 아닌 이 낮은 땅 위에서 치열하게 서식함을 안다.

끝으로 은총은 중력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사이좋은 반려자임을 안다. ‘저 높은 곳’을 우러르는 고상함 대신 때 묻히고 살내 풍기며 몸뚱이를 가진 놈답게 사는 것이 더 사람다워지는 길이며 신의 길벗이 되는 길임을 슬쩍 훔쳐본다.

그래, 다시 중력과 은총이다.

박총 | 도심 속 수도원 '신비와저항' 원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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