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敎會) 교회(僑會) 교회(交會)
교회(敎會) 교회(僑會) 교회(交會)
  • 김기대
  • 승인 2016.01.14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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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차라리 교회(交會)가 되어보면 어떨까?

교회를 한자로 풀어쓰자면 가르침을 주는 모임이다. 다시 말해 진리와 삶에 대한 가르침이 이루어지는 곳이 교회다. 그러나 이 가르침이 일방통행이 되면 목회자들의 독선이 될 수 있고, 배우는 입장에서 제대로 듣지 않으면 무지가 된다. 오늘날 한인 교회의 모습이다. 목회자들은 묻지 않은 질문에 답하는 생뚱맞은 선포를 한다.

삶의 진지한 고민에 대한 해답을 듣고 싶어온 사람들에게 고작 ‘성공하는 사람들의 몇 가지 습관’ ‘긍정적 사고’ 같은 류의 처세술 강의가 이루어진다. 교회 밖에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그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반대로 인생의 고민과 역사의 방향에 대한 가르침을 얻고자 온 소수들은 답을 얻지 못하고 교회를 떠난다. 다른 곳에서도 들을 수 있는 소리를 굳이 교회에서 듣고자 하는 사람과 묻지 않은 질문에 답하는 소통 부재의 희극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소통 부재의 공간을 교민들의 모임인 교회(僑會)로 만들면서 나름대로의 소통의 공간으로 삼는다. 이민자를 뜻하는 교(僑)는 타향살이라는 의미다. 이 말은 본디 중국 진(晉)나라가 419년 멸망하면서 장강(長江) 이남으로 이주한 진출신의 엘리트 그룹에게 붙여진 글자였다. 이들은 진의 수도였던 낙양(洛陽)의 고급문화를 장강 이남에 전파하면서 신유가(新儒家)라고 하는 유교의 새 학파를 형성하며 그들의 이주 문화를 만들어내었다. 이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에게도 ‘僑’(교)자를 붙이기 시작했다.

중국 내에서만 이주를 경험하던 ‘僑’(교)들은 청나라 이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오늘날의 화교(華僑) 집단을 형성했다. 전 세계 화교들이 중국의 자산이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미주 교민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60년대 이후 초기 이민자들은 엘리트 그룹에 속한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교회에 모여 타향살이 설움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고국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고, 건전한 비판보다는 검증되지 않은 소문들이 교회를 통해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교회는 진리의 전당이 아니라 소문의 생산처가 되어 버렸다. 또한 교민으로서의 외로움과 불안감을 이념 지향적으로 표출하면서 교회는 보수 이념의 현장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화교와 같은 영향력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본국의 지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소통 부재의 공간인 교회의 과잉이 그 원인이 아닐까 하는 괜한 ‘음해’를 해본다.

교회가 교민들의 그저 그런 이야기의 생산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처세술과 복음을 구별 못하는 기독교인이 많은 판에 진정한 교회를 요구하는 것부터가 처음부터 무리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차라리 교회(交會)가 되어보면 어떨까? 여기서 ‘교’는 심부름을 하기 위해 뛰어가는 아이를 형상화한 글자이다. 교민 교회가 진리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이웃들을 위해 열심히 심부름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소외된 이들에게 사랑의 심부름을 하고 배고픈 이들에게 밥 심부름을 하는 교회, 인종, 계층, 지연, 학연을 넘어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교회(交會)라면 차라리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욕이라도 덜 먹을 것이다.

어쩌면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무지한 우리들에게 교회(敎會)를 요구하지 않으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분은 식사도 함께하시고, 잠도 함께 주무시면서 우리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셨나보다.

김기대 / 평화의교회
* 이 글은 LA 기윤실 호루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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