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교회를 구원하리라!
'질문'이 교회를 구원하리라!
  • 홍신해만
  • 승인 2016.01.19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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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홍신해만 ⓒ <뉴스 M>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할때였다. 출석 교인이 100명 정도 되는 교회로, 조그만 주일학교의 분위기는 아기자기했다. 처음 몇달은 주로 어린이부에서 일했고, 그 뒤론 고등부에서 일했다. 영어가 짧아 초등학생들의 빠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외국인 신학생을 위한 목사님의 배려였다. 덕분에 난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수 있었다.

어린이부나 고등부나 공부 방법은 비슷했다. 지식을 가르치거나 주입하는 교사는 따로 없었다. 모두가 학생인 동시에 교사였다. 우린 매주 성경본문이나 신학책을 읽고 질문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함께 질문을 나눈뒤 대답을 만들어갔다. “예수는 백인인가?” “예수의 기적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가?” “이브는 왜 선악과를 먹었나?”

교회 입교식이 있던 날, 주일학교 학생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신앙 고백문을 한장씩 써서 발표했다. 난 지금도 애나라고 하는 친구가 발표한 신앙고백문의 일부를 기억한다.

예수님이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일으켰다고 믿지는 않아요. 하지만 예수님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 싸운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제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에요.

이들의 신앙고백은 어떠한 신학적 기준으로 재단되거나 심판받지 않았다. 어떤 신앙고백문에 담긴 질문과 답변들은 교회가 오랫동안 믿고 따라온 전통과 권위에 위협이 되는 도발적인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교인들은 “솔직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용기에 감명받았다. 많이 배웠다” 며 박수로 환영했고, 신앙 여정의 동반자로 함께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기 위해 기도했다.

우머니스트 신학자이자 기독교 교육학자인 낸시 린 웨스트필드는 질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흑인 여성 학생들은 아마 이렇게 질문할 겁니다. “남자가 가정과 교회의 지도자가 될수 있는가?” 아마 백인 학생들은 이렇게 질문할 겁니다, “흑인 민권운동은 ‘흑인’들만의 운동인가?” 그들은 이렇게 질문할 겁니다. “어째서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성서와 신학에 대해 더 알려고 하지 않는가?” … 전 학생들이 질문하도록 가르치는 것이야 말로 해방적인 행위라고 믿습니다. 이는 자유를 실천하는 가르침입니다.

- Nancy Lynne Westfield, “Mama Why …?” A Womanist Epistemology of Hope.중에서.

언제부터 인가 교회엔 질문이 사라졌다. 교리와 목사의 설교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믿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 결과 사유와 비판 대신, 맹신이 자리하게 되었다. 질문은 공동체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굴러가게 끔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질문이 사라진 곳엔 소통도 비판도 없다. 일방적인 선포와 독선만이 강요될 뿐이다.

난 지금도 주일학교에서 일하며 나누었던 질문들을 꺼내들고 다시 묻고 또 묻는다. “어째서 예수님은 남자의 몸으로 오신걸까?” “왜 말콤은 무슬림이 되었는가?” “죄는 무엇인가?” “구원은 무엇인가?”

질문은 사람을 사유하게 한다. 잘못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게 한다. “목사의 설교는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가?” “성서는 모든 해답을 담고 있는가?” “맹목적인 믿음이 신앙의 본질인가?” 질문은 저항이다. 난 질문이 교회를 구원하리라 믿는다.

홍신해만 / 미국에서 유학 중인 신학생. 현재 연합그리스도교회(UCC·United Church of Christ)에서 인턴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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