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생활을 즐기는 은퇴 목사
평신도 생활을 즐기는 은퇴 목사
  • 이계선
  • 승인 2016.01.22 0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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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주일 예배 후, 목사님이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50명쯤 모이는 시골 교회입니다. 양복에 넥타이를 맨 50대 신사 부부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목사님이나 장로님이 아니신지요?"

"어휴, 천만에요. 김 아무개라고 하는 말석 집사입니다. 서울에서 작은 공장을 하는데 심신이 피곤하여 일 년쯤 쉬려고 공기 좋은 시골을 찾아 왔습니다."

서울 김 집사 부부는 꼬박꼬박 새벽기도에 나왔습니다. 수요예배도 물론이고요. 사람이 귀한 시골 교회라서 제직 일을 보던 분이 이사 오면 무조건 제직으로 인정했습니다. 정기 제직회가 열렸습니다. 그 교회는 제직회만 열면 두 패로 나뉘어 싸웠습니다. 이날 제직회도 난장판입니다.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목사님이 서울 집사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사양하던 김 집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토론하는 건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토론은 싸움이 아닙니다. 자기 의견을 상대가 이해하도록 부드럽고 친절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상대 공격 위주로 하면 싸움이 돼버리니까요. 의견을 다 듣고 나서 투표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투표도 양쪽이 하자고 할 때 해야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안 됩니다."

아멘과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제직회만 열면 인민군 공개재판처럼 살벌했던 제직회가 영국 국회처럼 신사적이 됐습니다.

교회에 낡은 풍금이 있는데 단음으로 반주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여자 집사님이 학생들에게 풍금을 가르쳤습니다. 주일 예배, 주일 밤, 수요일 밤에 부를 곡목을 미리 받아서 세 학생에게 나눠주어 연습시켰습니다. 6개월이 지나자 4부로 반주하는 세 명의 반주자가 탄생했습니다. 남학생들을 뽑아 보컬을 만들어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를 부르게 해봤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4중창에 교인들은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불르벨스4중창단의 '즐거운 잔칫날'처럼 멋지다."

"불르벨스가 뭐야? ‘콰이강의 다리’를 부르는 미찌밀러합창단이지!"

그래서 남녀 젊은이들을 모아 성가대를 만들었습니다. 싸움이 사라지고 풍금 소리 합창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조금씩 달라져 갔습니다. 한해가 다 가고 성탄절이 오자 서울 집사는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일 년 동안 행복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저희는 서울로 돌아가야 합니다. 일 년 동안의 안식년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서울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였습니다. 시골에서 안식년을 보낸 것입니다.70년대 초 내가 초년 목회를 할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멋진 목회자로구나. 나도 평신도 생활을 즐기는 안식년을 가져야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40년 목회를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안식년을 누리려면 1000명 출석 교회가 되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안식년을 지키고 싶으면 무조건 1년간 목회를 쉬면 됩니다. 교회를 떠나 다른 일을 하면서 먹고 살다가 일 년 후에 복귀하는 거지요. 도박입니다. 교회는 더 어려워지고 옥좌(玉座)를 찬탈당할 위험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목회 은퇴 후에 평신도 생활을 즐기리라. 그런데 은퇴하고 보니 그것도 어렵습니다. 뉴욕 바닥이 좁은 데다, 악명 유명으로 얼굴이 알려져서 금방 들통이 나버립니다. 그래서 미국 교회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미국사람들도 내가 목사인 걸 귀신같이 알아요. 어느 날 수석 장로가 다가왔습니다.

"우리들은 선생님이 목사님인 걸 압니다. 예배드리는 자세, 얼굴 모습을 보면 금방 알지요. 목사님이 한번 설교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40년간 주일 예배, 주일 밤, 수요일 밤, 새벽 기도 설교는 물론 부흥회 설교까지 하고 다녔습니다. 실컷 설교했으니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아요. 목회하면서 평신도 생활해 보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미국교회로 나온 겁니다."

그런데 평신도 생활도 불가능합니다. 집사 장로 권사 같은 제직 연령이 65세 정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는 75세, 72세로 초과 연령입니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평교인 생활을 합시다. 집사 장로 같은 제직이 될 수 있는 걸 평신도라고 하고 직분 없는 교인을 평교인이라고 하지요. 평교인이야말로 진짜 평신도요. 백의종군처럼..."

우리는 러셀교회 5년째 평교인입니다. 주일 예배만 참석합니다. 5년 동안 빠진 적이 없습니다. 추수감사절 주보에 담임 목사님에게 50센트씩 헌금해 달라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성탄절에 담임 윌리엄스 목사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습니다.

"We like twenty minutes preaching pastor MARIA WILLIAMS"

100달러와 함께. 미국 여자 목사는 산타클로스에게 선물 받은 소녀처럼 좋아 합니다. 미국 교인들은 개인별로 목사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합니다. 나는 미국 목사님보다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나는 많은 선물을 받았는데 그때 보다도 더 기분이 좋았으니까요. 많은 걸 받을 때보다 적은 걸 줄 때가 더 기쁘다는 걸 알았습니다. 평교인 생활이 즐겁습니다.

영어 찬송, 영어 기도, 영어 설교가 어렵지만 감동입니다. 태어나 처음 걸어보는 아기 걸음마처럼, 옹알거리며 배우는 아기의 말재주처럼 신기하고 즐겁습니다. 150명 교인 가운데 동양인은 우리 부부뿐입니다. 전 교인이 달려들어 볼을 비비며 안아 줍니다.

나는 파킨슨 치료를 위해 주일마다 한 시간을 걸어갑니다. 그래도 20분이 남아있습니다. 카페테리아에 들려 블랙커피와 쿠키를 들고 교회 뒤뜰로 나갑니다.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조경 회사가 디자인한 3에이커 가든. 아름드리 전나무로 가득했는데 50년 전에 베어버려 지금은 잔디공원입니다.

그런데 신기합니다. 베어버린 나무를 버리지 않고 길게 토막 내어 50년째 쌓아두고 있어요. 버려진 토막 난 나무 위에 걸터앉아 커피를 들고 있으면 세상이 태평합니다. 다람쥐, 족제비, 들쥐들이 들락거리면서 장난을 걸어옵니다. 나는 그들과 장난치다가 10분 후에 교회로 들어가지요. 그런데 오늘따라 나도 모르게 자부송(自負松)이 흘러나왔습니다. 박태보가 불렀던 자부송.

"청산(靑山)의 자부송(自負松)아 네 어이 누었는다 
광풍(狂風)을 못 이기어 불휘져저 누었노라
가다가 양공(良工)을 만나거든 날 옛더라 하고려"

나도 피곤한가봅니다.

▲ 커피를 들고 자부송을 노래하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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