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욱목사 판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다
전병욱목사 판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다
  • 지유석
  • 승인 2016.02.0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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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자정 능력 잃은 한국 교회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성추행 논란은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현안입니다. 이 문제를 꺼내면 '아직도 전 목사 이야기냐?' 하고 묻는 독자들이 많으리라 봅니다. 전 목사 사건이 불거진 지 햇수로만 6년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아마 그 어느 누구도 이 사건이 이토록 오래 시간을 끌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결이 지지부진한 근본 이유는 전 목사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아래 예장합동) 평양노회가 가해자를 엄중 징계하기보다 감싸는 데 급급해서였습니다.

▲ 예장합동 평양노회가 전병욱 목사 성추행 사건을 심리한 뒤 2일 교단지인 <기독신문>에 실었다.ⓒ 지유석

마지못해 꾸려진 재판국, 그마저도... 

전 목사 사건이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시점은 2010년 9월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양노회는 2014년 8월까지 전 목사 사건을 아예 입에 올리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그러다가 전 목사의 성추행 행각을 고발한 책 <숨바꼭질>이 세상에 나오고, 이어 여론의 관심이 쏠리자 마지못해 재판국이 꾸려졌습니다. 

여기서 심리가 제대로 이뤄졌으면 모르겠습니다. 재판국은 3번의 모임을 가졌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이 와중에 재판국원 한 명이 중도 사퇴했고, 관할 노회는 둘로 쪼개졌습니다. 삼일교회 측은 재차 재판국 구성을 촉구했고 마침내 올해 1월 다시 심리가 시작됐습니다. 

재판국은 3차례의 심리를 가졌고, 이 결과를 2일 교단 신문인 <기독신문>에 발표했습니다. 재판국은 전 목사에게 공직정지 2년과 해당 기간 중 강도권(설교 정지) 2개월 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선 "2009년 11월 13일 오전 삼일교회 B관 5층 집무실에서 전OO와 부적절한 대화와 처신을 한 것이 인정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얼핏 이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은 마침내 전 목사에 대해 징계가 내려졌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재판국의 심리 과정을 지켜본 저로서는 재판국이 전 목사를 감쌌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재판국에 참여했던 목사와 장로들은 성추행 사건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성범죄는 워낙 은밀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행위이고, '물증'을 확보하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피해자의 진술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 목사 심리를 맡은 재판국원들은 줄곧 '물증'을 제시하라고 삼일교회 측을 다그쳤습니다. 심지어 피해자의 신원을 캐묻는가 하면, 재판국에 출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국원들의 언행은 더욱 경악스럽습니다. 한 재판국원은 피해자들을 '이 양반들'이라고 지칭하며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면 나오지 못할 이유가 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말로만 이런 것이 아닙니다. 정식으로 공문을 작성해 '피해 당사자 전원'의 출석을 요구하는가 하면, 피고(전 목사)와 대질심문도 시사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편집진들이 <숨바꼭질>을 펴내기 위해 전 목사가 저지른 성추행 사건을 수집했습니다. 그랬더니 일관된 방식이 도출됐습니다. 교회 밖 사회의 법정에서도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수법이 동일하면 증거능력을 인정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전 목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에 알려진 사건기록만 잘 검토해도 굳이 피해자를 출석하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재판국은 피해자 출석을 고집했으니, 혹시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지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결과

재판국 심리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도 불거졌습니다. 재판국에 출석한 삼일교회 박아무개 장로가 전 목사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것입니다. 박 장로는 전 목사가 '상습적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 '성중독자도 아니다', '(삼일교회와) 2년 내 수도권 개척 금지를 약속한 적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심리를 진행하다 보면 이해 당사자들은 증언 하나에 일희일비합니다. 백보양보해서 박 장로가 삼일교회에 불리한 증언을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재판국의 태도입니다. 삼일교회 측 이아무개 장로와 나아무개 장로는 재판국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박 장로의 증언을 반박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도 제시했습니다. '삼일교회 치유와 회복을 위한 TF팀' 역시 "박OO 장로의 인터뷰는 거룩한 교회의 치리와 결의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대단히 적절하지 못한 발언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피해자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행동"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국은 이 같은 증거자료를 배척했습니다. 이어 박 장로의 증언에 무게를 실어줬습니다. 재판국이 발표한 판결문 중 일부는 재판국의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1)사임 후 2년 내 개척금지 약속이나, (2)수도권 개척 금지 약속, (3)1억 원의 성 중독 치료비 지금에 대한 건은 사실무근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사실은 최근에 현재 삼일교회 시무장로로 사역하는 박OO 장로가 양심고백을 하였고, 전 목사와 장로들을 포함한 교회 관계자들 사이에는 그런 약속을 한 어떤 증거도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심리가 진행되기 전부터 재판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교회 조직은 교회가 모여 노회를 이루고, 소속 교회의 목사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징계를 내리도록 짜여 있습니다. 전 목사가 개척한 홍대새교회는 평양노회 소속이고, 그래서 평양노회가 전 목사 사건의 심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평양노회장인 김진하 목사는 홍대새교회 예배를 통해 이렇게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홍대새교회를 공격하고 전병욱 목사를 공격하지만 우리 평양노회는 보호할 것입니다. 지킬 것입니다. 이 홍대새교회가 앞으로 한국의 청년문화를 새로 끌어가는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써가는 귀한 교회가 되도록 힘껏 밀어 줄 것입니다."

당시는 재판국 구성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김 목사는 노회장입니다. 그런 사람이 곧 재판에 피고 신분으로 출석할 전 목사의 교회를 찾아 지키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분이 재판국원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지난해 8월 정종섭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이 집권 여당이 마련한 연찬회장에서 건배사로 "총선 승리!"를 외쳤던 일을 기억하시나요? 선거를 주관하는 주무부처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언론은 이 발언을 앞다투어 보도했고, 야당은 정 장관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습니다. 결국 정 장관은 백기를 들고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일반 사회도 이처럼 규칙을 엄격하게 요구하는데,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평양노회 김진하 노회장은 '전 목사와 홍대새교회를 지키겠다'는 발언을, 그것도 노회장 자격으로 당당하게 했습니다. 이어 전 목사 사건을 심리할 재판국의 일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쯤 되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 삼일교회 시무당시 새벽기도회에서 안수기도를 해주던 전병욱 목사.ⓒ 지유석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전 목사는 한때 한국교회의 차세대를 이끌어갈 목회자로 교회는 물론 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성추행 논란은 교회와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줬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재판은 교회와 사회에 큰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재판국원들은 이 같은 심각성조차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재판국은 판결문 말미에 이런 바람을 남겨 놓았습니다.

"이 문제로 더 이상 한국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우리 교단 총회에 상처를 주고 고귀한 영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전 목사의 성추행이 6년 넘게 '고귀한 영적 에너지'를 낭비하게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그에 대한 적절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아서였습니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면 풍경도 달리 보일까요? 재판국에 들어간 목사와 장로들은 그냥 적당히 덮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죄는 얽히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브가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 아담에게까지 권했다는 창세기의 기록은 그 속성을 잘 드러내 줍니다. 전 목사의 성추행은 처음엔 한 사람의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평양노회까지 그 죄가 확장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가르쳤는데, 교회는 빛과 소금은커녕 사회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했습니다.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이제 글을 끝맺으려 합니다. 이번 예장합동 평양노회의 판결문은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의 윤리, 도덕의식 부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문서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파장은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평양노회 재판국이 보여준 일련의 행태는, 성도는 물론 일반 사회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는 자정을 기대할 수 없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전 목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도의 심경고백을 녹취록을 통해 들었었습니다. 피해자는 전 목사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회개하기만을 바랐습니다. 반면 전 목사는 뉘우침 보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을 때 미칠 파장에만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재판국은 피해자의 간절한 바람을 무참히 외면했습니다.  

불행하지만, 만에 하나 교회 안에서 목회자나 다른 임원들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면 목사들의 회개와 뉘우침을 바라선 안 될 것입니다. 서울대 수학과 강아무개 교수의 제자 성추행 사건처럼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사회법정에 피해를 알리고, 외부의 도움을 호소하고 가해자 처벌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푸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봅니다. 

지유석 기자 / <숨바꼭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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