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아빠가 좋아졌는데…"
"이제야 아빠가 좋아졌는데…"
  • 박지호
  • 승인 2008.01.23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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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故 이용남 집사 고별예배, '실패한 인생?, 성공한 인생!'

▲ 갑자기 떠나버린 아버지를 향한 아쉬움을 털어놓는 큰아들 명환 씨 옆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이용남 집사의 영정이 보인다.
“아빠가 얘기를 잘 해요. 얘기를 길게, 너무 길게 해서…어렸을 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는데…근데 이제 좀더 듣고 싶은데…(마음이) 아파요. 이제 얘기를 들을 수가 없어요. 기회가 없어요. 화가 나요. 있을 때 더 잘했어야 하는데, 보여주고 싶은 것 많은데, 이렇게 빨리 하나님한테 갔어요. 아빠한테 할 얘기가 너무 많은데…아빠처럼 조그만 일이라도,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이라도 (열심히) 할게요. 이제 교회도 다시 가고, 하나님도 다시 믿고, 그렇게 살려고요. 아빠…이제는 숨지 않고, 열심히 살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떠듬떠듬 어설픈 한국말로 큰아들 명훈 씨(27)는 아버지를 향한 안타까움을 그렇게 쏟아냈다. 이제 막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훌쩍 떠나버린 아버지가 야속하고 그리웠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범벅되어 눈물만 속수무책으로 흘러내렸다. 슈퍼마켓에서 힘들게 일하며 모은 돈으로 아버지에게 선물한 텔레비전만 덩그러니 남았다.

故 이용남 집사가 세상을 떠난 것은 지난 18일 저녁 8시다. 복통을 호소해 뉴저지 마운트홀리병원으로 옮겼으나 호흡 장애를 일으키며 숨졌다. 병원에서는 감염에 의한 쇼크사로 진단했다. 의료사고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유가족은 전했다. 이 집사의 시신은 뉴저지 마운트 홀리에 있는 Evergreen Cemetery에 22일 묻혔다. 1월 21일 뉴저지 뉴호프커뮤니티교회에서 열린 고별예배에는 300여 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고별예배 순서지에 있는 이 집사의 약력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영어와 한글을 번갈아 적어도 작은 지면을 메우지 못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으니 학력은 없고, 고작 안수집사라는 타이틀이 전부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킹덤 중보기도팀과 다민족도시선교회 쿠키드라이버로 봉사했다는 것이 빈자리를 채워줄 뿐이었다. 그의 약력에 계속 되풀이되는 낱말이라곤 세상에서 별로 인기 없는 ‘봉사’, ‘수고’, ‘희생’, ‘섬김’이란 단어였다.

▲ 이용남 집사가 중보기도로 섬겼던 킹덤 컨퍼런스의 간사들이 특송을 하는 모습. 이날 간사들은 보스턴∙워싱턴∙볼티모어∙필라델피아∙뉴저지∙뉴욕 등에서 모였다.
킹덤 컨퍼런스에서 만난 이용남 집사는 교회 청소 일을 도맡아 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재정 관리를 하겠어요? 그렇다고 서류를 만지겠어요? 근데 체력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 한겨울에 신문지 하나 덮고 자도 끄떡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몸으로 섬기자고 작정했죠. 한번은 애들이 ‘왜 교회 청소는 아빠만 해?’ 하고 묻더라고요. 부끄럽고 싫었겠죠.”

그래서 교인들에게 이용남 집사는 산타클로스 집사님, 바비큐 집사님, 아버지 집사님이었다. 주일마다 반갑게 맞아주며 아이들에게 조그만 선물을 건넸고, 야유회 때마다 바비큐 굽는 일은 언제나 이용남 집사의 몫이었다. 연고도 없이 외로운 이민 생활을 하며 티격태격하는 젊은 부부들 뒷바라지도 이용남 집사의 일이었다. 한 젊은 교인은 이용남 집사를 회상하며 “우리가 받은 그 많은 섬김을 어떻게 몇 마디 말로 설명하겠냐”며 흐느꼈다.

이진석 목사는 고별예배 설교에서 “사람이 볼 때 실패한 인생이다. 실패한 이민 생활이다. 하지만 낮은 마음으로 고통 받고 소외당한 사람에게 다가갔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잘나고 똑똑한 사람의 멋진 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낮은 마음이다. 그는 많은 열매를 맺고 갔다”고 말했다. 조문객들 중 절반 이상이 젊은 청년들이었다. 이 집사가 맺은 열매들이 곳곳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서러움을 겪었기에, 사춘기 시절 교복 입고 농땡이 피우는 애들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열등감을 경험했기에, 그 누구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던 거절감을 맛봤기에, 어려운 살림 때문에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처갓집에 얹혀살아야 했기에, 우울증에 빠진 아들 살리려고 발버둥 치던 고통을 알기에, 이 집사는 많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고통을 어루만질 수 있었다. 한국에서 일류대를 졸업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대형교회 중직자도 아들 때문에 겪는 어려움으로 이 집사를 찾았고, 미국 대기업에서 일하는 인텔리 청년들도 영어도 못하는 이 집사에게 속을 터놓고 기도 부탁을 하곤 했다. 이 집사의 사연(기사 보기)이 기사로 나가자 ‘자신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 집사와 연락하고 싶다는 문의전화도 있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사역하는 강대위 목사(남비성화인교회)가 작년 10월 모 교회 집회에서 이 집사의 이야기를 예화로 소개했던 대목이다.

“남부 뉴저지에 이용남 집사님이란 분이 계시는데 벼룩시장에서 장사를 하십니다. 벼룩시장은  주일날 제일 잘 되는데, 집사님은 주일에는 장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변에선 정신 나간 거 아니냐고 비아냥댄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목사님 저는 초등학교도 못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게는 없지만 이렇게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 교회를 섬길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분과 함께 벼룩시장을 걸어 다녔을 때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마치 대형 마켓 사장님과 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집사님에게 진심으로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물질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자나 신분이 높은 자를 가리켜 풍성한 생명을 소유한 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그래서 은혜를 체험하고 그 비밀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 풍성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 이날 조문객 300여 명이 참석해 이용남 집사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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