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드린 고(故) 윤장호 병장 추모 예배
뉴욕에서 드린 고(故) 윤장호 병장 추모 예배
  • 박지호
  • 승인 2007.03.05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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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3월 4일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참사랑교회에서 고 윤장호 병장의 추모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문영길 목사는 "이번 일을 통해 우리 역시 전쟁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며, "장호의 죽음이 이 땅에 평화를 이루어가는 일에 작은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지호)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 기지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 테러로 사망한 고(故) 윤장호 병장의 추모식이 뉴욕에서도 열렸다. 윤 병장이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던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참사랑교회에서 3월 4일 주일예배 이후 열린 추모식에는 이 교회 교인들을 비롯해 윤 병장의 교회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참석해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예배당에 모인 100여 명의 교인들은 윤 병장의 사진들을 보며 그를 기렸다. 또 윤 병장을 잃은 유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윤 병장은 13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참사랑교회에 다녔다. 사춘기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힘든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한글을 모르는 한인 2세를 위해 한글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윤 병장이 가르쳤던 학생들도 참석해 눈물을 흘렸다. 

▲ 군대 가기 전 200페이지가 넘는 시집을 손수 복사하고 그림까지 그려서 친구들에게 선물했던 윤 병장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친구 유한상 씨. (박지호)
교회 친구 유한상 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목사님’으로 통했던 윤 병장을 회상하며, 그의 죽음이 아직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이 많고 따뜻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철저했던 친구”라고 말하면서, 나이답지 않게 검소했던 윤 병장의 일면을 소개했다.

“장호는 나랑 키가 비슷한데 밖에 나가면 나보다 컸어요. 알고 봤더니 신발 때문이더라고요. 같은 신발을 6년 동안 신으면서 굽만 계속 갈다 보니까 굽이 높아져서 키가 커진 거예요. 나이답지 않게 검소한 친구였죠.”

참사랑교회 문영길 목사는 ‘냉동 시설이 있다면 집에 설치해놓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들 얼굴을 보고 싶다’는 장호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미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비극이 우리와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하고, '또 누군가가 죽었나' 하고 넘어가는데, 우리가 사랑하던 그 아이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아이가 죽었다는 것이 우리 역시 전쟁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또 이 땅에 전쟁이 사라지고, 속히 평화가 임하기를 바란다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땅에 끊이지 않는 전쟁과 그 일들을 멈추는 일에 장호의 죽음이 작은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이라며 “서로가 반목하고 테러를 가하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평화를 위해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몫을 찾아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윤장호 병장의 영정 앞에 헌화하는 교인들. (박지호)
윤 병장은 인디애나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가 군 입대를 결심하고 2005년 5월 귀국해 같은 해 6월 입대했다. 이후 아프간 파병을 자원해 다산부대 8진으로 지난해 9월 파견됐다.

이번 사고는 2월 27일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북쪽 바그람 미군 공군기지 정문 밖에서 일어났다.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을 노린 것으로 알려진 이번 테러로 윤 병장을 포함해 아프간인 군속과 아프간 군인, 미군 등 19명이 죽고 11명이 부상했다. 윤 병장은 제대 4개월을 앞두고 참변을 당해 주위를 더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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