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상과 '통'하였느냐?
기독교, 세상과 '통'하였느냐?
  • 지성수
  • 승인 2016.03.14 04: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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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교회 안 나가는 목사 이야기 (3)

팔자가 사나워서 나는 어려서부터 가정적 요소가 결핍된 체 자라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가정 밖의 세계가 남보다 일찍 넓게 발달 되었다. 성격도 적극적, 긍정적이다 보니 평생 수많은 조직과 모임에 관계하며 살아왔다. 팔자가 그래서 그런지 남들은 3년 동안 한 자리에서 하는 군대 생활도 여섯 군데를 돌아다니며 근무했다. 

인간관계도 별로 원만하지 않아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갈등도 많이 빚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지만 관계를 청산하고, 살아서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내가 먼저 죽어도 장례식에 참석을 사절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살아 있을 때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장례식에 찾아오면 곤란한 일이기 때문에 미리 명단을 작성해서 '장례식에 참가를 삼가 달라'고 통보할 생각이다. 물론 농담이다.

이런 내 찬란한 인간관계 경험으로 보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소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수가 언어 장애인을 고칠 때 귀를 만져 주시면서 "열려라"고 한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농아는 발음 기관이 고장 나서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입력할 수 없으니까 출력이 되지 않으므로 일단 귀가 열려야 말을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입이 열려라'고 하지 않고 '귀가 열려라'고 한 것이다.

▲ 기독교에 대한 다른 설명과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진 자료만 가지고 언제 어디서나 '개독'만 외치는 안티들을 보면 '자폐증' 생각이 난다. 자폐증은 외부로부터 새로운 정보가 전혀 입력되지 않아서 자신이 집중하는 것 외에는 돌아보지 않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

자폐아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방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격이 온순해서가 아니다. 외부로부터 새로운 정보가 전혀 입력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지 좋아하는지를 분별하지 못해서 방어를 못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기가 가지고 놀고 있는 장난감을 다른 아이가 빼앗아도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처럼 그냥 잊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바꾼다. 

그런가 하면 전혀 반대의 경우도 나타날 수가 있다. 가령 다른 아이가 열심히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도 일단 자기가 가지고 놀고 싶으면 마치 주인 없는 물건을 가져가는 식으로 전혀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그냥 가져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현상은 외부와 정보가 서로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일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기독교에 대한 다른 설명과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진 자료만 가지고 언제 어디서나 '개독'만 외치는 안티들을 보면 '자폐증' 생각이 난다. 그래서 자기들이 가졌던 질문에 대하여 답을 던져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앵무새처럼 '개독, 개독'만 개구리처럼 외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일반적으로 보수 기독교인들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역사적 인물 가운데 가장 자폐적 증상이 심한 인물이 히틀러였단다. 끝임 없이 자기 안에 있는 것만 주장할 줄 알았지 남의 것을 받아드릴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실상 육체적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보통 사람들 가운데도 인격적으로는 부분적으로 자폐적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신이 아니고서는 무한히 열린 존재는 없다. 사람의 인격적 성숙도는 얼마나 열려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본다.

주변에서 부부관계를 포함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보면 모두가 소통에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한쪽이 닫혀 있거나 양쪽이 모두 닫혀 있기 때문이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닫힌 마음으로 말이 많은 것은 듣는 이에게는 고통스러 소음일 뿐이다.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말이 많은 사람이 일으키는 소음 공해는 심각한 일이다.

살다가 보면 원만한 성품을 가져서 때로는 무척 부럽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항상 둥글둥글 하고 웬만큼 분통이 터지는 일을 당해도 절대로 흥분하는 일이 없고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참을성 있게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남의 이야기를 나쁘게 하지 않고 누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도 상대방이 기분 상하게 이야기하지 않을 정도로 항상 여유가 있다. 그러나 성격이 원만한 사람이라고 해서 열려 있는 것도 아니다. 확고한 자기 생각이 없어서 혹은 우유부단해서 원만할 수도 있다.

▲ 육체적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보통 사람들 가운데도 인격적으로는 부분적으로 자폐적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끝임 없이 자기 안에 있는 것만 주장할 줄 알았지 남의 것을 받아드릴 줄 모른다. 일반적으로 보수 기독교인들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개인의 성격이 원만한 것이 조직 안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원만해서 아무도 나무랄 줄을 모르는 자세가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살아야 하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입지만 생각해서 누구를 탓하지 않는 것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점잖고 훌륭한 태도가 문제의 초점을 흐리게 하거나 심지어는 문제의 본질마저 변질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축구 경기 심판이 원만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심판은 칼 같아야 하는 법이다. 마땅히 판단해야 할 사람이 판단하지 못하면 전체가 골치 아파지는 것이다. 조직을 운영하는 일에는 원만함보다 정확한 판단과 실천이 더 중요하다. 최선의 삶의 방식은 주변의 인간관계에서 성실과 애정으로 관계를 맺고 주변의 사물과 사건에 대하여 올바른 관찰과 판단으로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인간은 누구나 발가벗겨 놓으면 너무나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래서 옷을 벗고는 살 수 없지만, 인격적으로는 벋고 살 수는 있다. 내가 벋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벋은 모습을 보는 눈도 중요하다. 진정한 소통은 위선과 가면을 벗은 상태에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

1986년도에 처음 하와이에 갔더니 하와이는 10년 전만 해도 문을 잠그지 않고 다녔다고 하는 말을 들었었다. 어디에 가나 상점의 진열장 밖에는 철창으로 되어 있는 미국의 다른 곳과는 달리 흑인들도 없고 범죄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문이 한 번 닫히기 시작하면 다시 열릴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서 한 번 닫히면 가장 열리기 어려운 문은 마음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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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은 2016-03-14 05:40:23
의미 있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지탄을 받는 이유가 불필요한 고집과 아집에
장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심판은 칼 같이 정확해야 한다는 것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