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여론조사
예수의 여론조사
  • 지성수
  • 승인 2016.04.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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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교회 안 나가는 목사 이야기 (9)

예수가 그의 활동을 거의 다 마쳐 갈 무렵 하루는 제자들을 물러놓고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질문의 첫 문항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는 것이었다. 제자들이 그 동안 들었던 이런 소문 저런 소문들을 늘어놓자, 예수는 두 번째 문항을 제시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베드로는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베드로의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오자 예수는 "절대로 천기를 누설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셨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가 제자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서 함부로 떠벌리지 말아라."고 주의를 준 진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사람들은 자기들을 고통 가운데서 구원해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종파마다 생각하는 메시아에 대한 이해가 달랐다.

율법을 완전무결하게 실천하는 일에 비중을 두고 있는 바리새인들은 율법적으로 완전무결한 존재인 메시아의 모습을 기대했다. 그런가 하면 대다수 민중들은 자기들을 괴롭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한 칼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예수를 에워싸고 온갖 문제들을 들고 와서 귀찮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당장 부딪히고 있는 현실적 욕구를 해결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는 고통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실상 예수는 유대인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더 고통당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가득했을 것이다.
 
예수는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칠 때마다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인간들이 시끄럽게 말로 떠들어댄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예수는 십자가를 향한 자기의 걸음을 방해받지 않고 걷고 싶었으리라.

예수의 메시아됨은 말로써 증명될 일이 아니고 예수의 삶을 통해서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예수가 진정으로 메시아의 길을 걷는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 준 길을 끝까지 가느냐, 가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이 정해 놓은 순서를 따라 로봇처럼 고민도 없이 확신에 찬 걸음걸이를 걸어간 것이 아니라 메시아의 길을 끝까지 걷기까지 끊임없이 한 인간으로 고민하고 갈등하고 두려워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십자가의 결단을 앞두고 죽음과 싸워야 했다.

자, 그렇다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던졌던 질문은 제자들이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정확히 잘 알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직 자기 자신조차도 확신하지 못해서 묻는 물음이었을까? 예수가 확신이 없었다니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실제로 복음서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십자가를 앞에 놓고 고뇌하는 모습에서 예수가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자. 이제는 다 틀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를 따라 가고 있지 않습니까?(요12:19)
 

군중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한 예수의 행렬을 본 집권층의 겁에 질린 외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원 전 1,000년경에 예루살렘이 세워진 이래 최대 인파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군중들이 외친 ‘호산나’라는 구호는 ‘우리를 해방시키라’는 의미가 담긴 정치적이고 선동적 구호가 아닌가? 

군중들이 흔들고 있는 종려나무잎은 자기들의 왕을 환영하는 뜻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이것은 로마점령의 예루살렘에서는 화염병보다 더 위험한 것이 아닌가? 더욱이 예수가 말을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오는 것은 강력한 무력으로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는 로마군을 비난하는 비폭력의 상징이 아닌가?

이러한 예수의 도발적인 행동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은 기득권층에게는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혹시라도 대규모의 군중이 모이는 유월절에 민중들이 동요를 일으켜 공권력에 도전해 오지나 않을까 하는 것을 염려하고 있는 당국자들에게는 예수의 행동은 마치 선전포고와도 같이 위험한 행동으로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면 불안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자기들이 모으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싫어한다.

예수가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은 못 본 척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와 같이 공개적인 예수의 행동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대 집권층에게는 군중들의 이러한 소동이 외세에 의한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정치적인 소요로 보였다. 

여하튼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정국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아닐 수가 없다. 잘못하면 로마의 주둔군이 무력을 동원해서 진압을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몇 해 전의 반란 때처럼 예루살렘이 또 한 번 피비린내로 넘칠 것이다.
 
그러나 유대 집권층들의 눈으로 볼 때 이번 사태는 공권력으로써 진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비밀공작을 통해서 예수 ‘한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로마군이 출동하는 비상사태를 예방하기로 결의를 하고 드디어 극비 공작에 들어갔다. 마침 적당한 하수인이 걸려들었다. 예수의 조직에 잠입했다가 노선의 차이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는 젊은이가 정보망에 이미 포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계획은 산헤드린 의회에서 심야에 날치기로 통과되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로마의 총독이 사건의 성격이 정치적 문제인가, 종교적 문제인가 하는 판단의 혼선을 빚어 잠시 작전이 지연되었지만 결론은 정치적 문제로 판결이 났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예수사건을 정치적인 사건으로 판단하기까지에는 예수에 대한 정치적 의도가 담긴 밀고가 있었던 것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당시의 정치적 관행으로 볼 때 유대인들끼리의 종교문제에는 엄정 중립을 지켰던 로마 총독이 직접 예수를 심문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예수의 사건이 민중의 반란이나 혁명, 혹은 폭동 등처럼 중요한 사건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사건이 발생했었다면 상세하기로 유명한 로마 역사에 전혀 기록이 되지 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체포사건은 로마의 역사에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로마인들 편에서 볼 때는 아마 로마제국의 변방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건에 지나지 않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사자인 예수의 입장에서 보면 제자들과 더불어 피신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 부딪치게 되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만일에 오늘 같은 시대에 예수가 활동을 한다면 어떻게 할까? 제자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웹 사이트를 만들고 달라이 라마처럼 호텔에서 순회강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예수의 사이트는 정보통신 당국에 의해서 사회질서를 혼란시킬 우려가 있다고 폐쇄 당할 것이고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중국의 파룬궁 신도들처럼 모진 박해를 받을 것이며 예수는 기성 종교 세력으로 대표되는 로마 교황청과 오늘날의 로마쯤 되는 미국의 정치 세력에 의해서 전기의자에서 처형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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