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복음주의자, 그리고 불편한 진실
트럼프, 복음주의자, 그리고 불편한 진실
  • 경소영
  • 승인 2016.04.21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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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복음주의자인가? 그들은 정말 누구에게 표를 던지는가?
19일 치러진 미국 뉴욕주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60.5%를 득표하며 압승을 거둔 도널드 트럼프가 뉴욕시에서 열린 승리 연설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 경소영 기자]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선두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19일 치러진 뉴욕주 경선에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에게 압승을 거뒀다. 트럼프는 약 60%를 득표해 타 후보를 세 배 가까이 앞질렀다. 남은 경선에서 대의원 과반 확보가 비관적이던 트럼프는 이날 압도적 승리로 불씨를 다시 지필 수 있게 됐다. 기독교인 유권자 사이에서 특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트럼프가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되살아났다.

뉴욕의 높은 득표율에 대해 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다른 주와 달리 트럼프가 아주 보수적인 층에서도 크루즈를 앞섰다"며 "테러 이슈에 민감한 뉴욕 공화당 유권자들이 무슬림 입국을 반대하며 이민 문제에 강한 보수성을 띤 트럼프를 지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실제로 유세 기간에 "뉴욕의 가치는 '9.11 테러'에서 보여준 뉴욕 시민들의 용감함과 열정에 있다"며 테러 불안 심리를 파고들었다.

트럼프는 정치적 보수층에게서만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다. 보수적 기독교인의 대표 격인 복음주의자들의 표심도 그를 향해있다. 각종 언론에서는 트럼프가 복음주의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와 동시에 학계와 언론은 이것을 기현상으로 보고 의문을 던지는 기사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트럼프가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만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전혀 기독교인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유색인종 특히 멕시코인들을 범죄 유발자라고 매도하거나 전국의 무슬림을 색출해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비상식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했다. 성경적 원칙을 고수하고 보수적 신앙을 주장한다는 복음주의자들이 과연 실제로 도날드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복음주의 저술가 에릭 메탁사스(Eric Metaxas)는 "미국 언론들은 선거 때마다 '복음주의자'들의 투표율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가? 여러분은 어떠한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복음주의자를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조사에서, 특별히 정치적인 영역에서 복음주의자는 자아 정체성에 많이 의존돼 있다. 만약 한 개인이 자신을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말하면 그는 복음주의자로 분류된다. 복음주의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잣대로 소속 교단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메탁사스는 "많은 조사가 복음주의자에 포함해야 할 사람들을 빼고, 빼야 할 사람들을 포함한다"고 지적했다.

누가 복음주의자인가? 그들은 정말 누구에게 표를 던지는가?

'복음주의자들은 대통령으로 도날드 트럼프를 지지하는가'에 대해 실제로 교회 안에서 논쟁이 있다. 논쟁은 조금 복잡하다. '복음주의자는 누구인가', '자신이 복음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것일까. 그럼 종교적 열심히 있는 사람이 트럼프를 더욱 지지할까.

예상과 다르게 한 리서치 기관은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트럼프에게 중요하고도 실질적인 반대 세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포스트 이러한 통계를 기반으로 "트럼프의 복음주의자 지지 기반은 어디에 있는가. 교회는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안타깝게도 이 보도는 모든 사실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아래 그래프를 면밀히 살펴보자.

통계를 보면 복음주의자들은 다른 후보들보다 트럼프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다만 교회에 나가는 빈도가 높을수록 트럼프를 지지하는 비율이 점점 낮아질 뿐이다. 

많은 사람은 출구조사에서 "자신이 '회심한 기독교인'인지 '복음주의자'인지 설명하라"고 하는 질문이 너무 광범위하다고 지적한다. 복음주의자는 대체 어떤 사람을 말하는 지 모호하다. 그래서 몇몇 리서치 기관에서는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좀 더 정확한 조사를 계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실시한 출구조사 결과는 새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교회에 헌신도가 높을수록 트럼프에게 투표하는 비율은 낮아진다. 이러한 상관관계는 특별히 북부 지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교회 헌신도가 낮은 지역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비율은 좀 더 높은 경향을 보인다.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교회에 다니는 복음주의자들보다 좀 더 많이 트럼프에게 투표한다. 

이 조사 결과는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두 가지 주장을 모두 부정한다. 우선 '모든 복음주의자가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주일 예배 출석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은 트럼프가 아닌 다른 두 후보를 지지하는 비율이 높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비율은 35%인데 비해, 크루즈와 케이식을 지지하는 비율은 51%가 넘는다.

하지만 이 조사는 '복음주의자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교회를 열심히 나가는지, 나가지 않는지 상관하지 않고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트럼프는 언제나 지지율 1위를 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미국인들의 더 면밀한 출구조사가 이뤄진다면 정치권에서 말하는 복음주의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래야 복음주의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정치권에 휘둘릴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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